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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 24 <소설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6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51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6/13 13: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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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4. 노동자 학생 연대 시위를 계획하다.
 
 

작열하는 8월 태양 불볕에 지하철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질 듯하다. 지하철 1호선 내부에 설치된 선풍기 몇 대는 시원함이 아니라 무더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정훈과 김영철이 타고 가는 1호선 지하철이 가리봉역(현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멈추고 거기서 그 둘은 내린다. 한국 수출산업의 메카라는 구로공단이 있는 가리봉동이다. 이정훈과 김영철이 일명 가오리’(가리봉 오거리) 라 불리는 쪽으로 걸어가며 얘기를 나눈다.
정훈이 형, 여기가 이 땅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청춘을 다 바친 곳이에요.”
그렇지, 여기 공단에 오니 김남주 시인의 민중이란 시가 떠오른다. 이것은 부당하다 형제들이여, 이 부당성은 뒤엎어져야 한다. 일어나라, 더 이상 놀고먹는 자들의 쾌락을 위해, 고통의 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시처럼 부당함이 뒤엎어져야겠죠
화염이 올라오는 듯한 가리봉 지역 거리를 걸어가며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닭장집이라 불리는 쪽방촌을 보며 둘은 마음이 아팠다. 한여름 무더위에 목을 길게 빼고 더러운 닭장에 갇혀 트럭에 실려 가는 닭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노동자들이 주택이다. 이 장면을 목격하고 이정훈이 비장하게 김영철에게 말한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싸움을 우리는 함께 해야 해, 이제 학생들과 노동자들 간의 노학연대 시위로 학생운동은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시위 모습을 선보일 거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계획 중인 코카콜라 이글의 준비 과정이기도 하고.”
김영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오리 가두시위 전술을 짜기 위해 이정훈이 이 지역을 유심히 살핀다.
아무래도 퇴로는 가리봉 시장이 좋을 거 같은데, 영철아, 가리봉 시장을 이곳 노동자들은 가리베가스라고 부른다.
저도 들었어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빗대어 자신들을 비하하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여기 노동자들은 월급날이 가장 기쁜 날이고 월급날 다음 날이 가장 슬픈 날이라고 한다네.”
시위를 벌일 지역을 답사하고 이정훈과 김영철이 가리봉동에 있는 여관방에서 이번 시위를 주도할 노동자를 만나고 있다. 이정훈이 시위 주동 노동자에게 김영철을 소개한다.
이번 노학연대 투쟁을 함께할 동료입니다. 보안 관계상 이름은 서로 생략하겠습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는 대신 김영철과 시위 주동할 노동자가 꽈악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한다.
학생들이 지금 여름방학이지만 가리봉 오거리를 흔들어보자고요. 동 뜨는 날을 815일로 하는 건 어떨까요?”
이정훈의 제안에 다들 동의한다.
노동자들 퇴근 시간에 맞춰 동이 떠야 하는데 공단지역 퇴근 시간이 보통 몇 시죠?”
잔업, 야근이 없다면 9시 퇴근으로 보면 됩니다.”
“9시면 깜깜해서 유인물, 현수막이 보이지 않겠네요?”
그렇죠.”
잠시 이정훈이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연다.
횃불시위를 합시다.”
횃불시위라뇨?”
저녁 9시 동이 뜰 때 시위대가 솜에 석유를 묻힌 횃불에 불을 붙여서 들자는 겁니다. 여기 가리봉 오거리를 미국 라스베이거스처럼 환하게 밝혀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도 나눠주는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이정훈의 재밌는 비유에 노동자가 자기 무릎을 탁하고 친다.
시위 슬로건은 ‘8시간 노동시간 쟁취하여 노동해방 앞당기자어떻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주장입니다.”
미국은 1886년에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주장했는데 우리는 백 년이 지난 1986년에서야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자고 하네요.”
이정훈 설명에 다들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이정훈이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한잔 들이키고 질문을 한다.
동원 가능한 노동자는 몇 명 정도인가요?”
오십 명 정도입니다.”
거기에 학생 삼백 명 정도 붙으면 큰 함성은 한번 나올 거 같습니다.”
이번엔 시위 주동 노동자가 묻는다.
우리 쪽에서 준비할 건 뭐가 있나요?”
유인물, 현수막은 우리가 다 갖고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이슈 파이팅으로 활력 불어넣는 거니깐 화염병이나 돌은 던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 이슈 파이팅 : 구호를 외치는 것
 

이정훈이 김영철에게 따로 지시한다.
이번 가투는 정보가 사전에 털리면 안 되니 다른 대학 동원하지 말고 *관악 애들만 모으자.”
 

* 관악 애들 :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
 

815일의 가두시위 작전을 다 마치고 김영철은 여관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이정훈과 노동자만 남아있다.
내일 출근이시니깐 주무시죠?”
이정훈이 이부자리를 펴고 노동자는 자리에 눕는다. 눕자마자 피곤한지 잠에 곯아떨어진다. 이정훈은 오늘 봤던 가리봉 오거리 약도를 종이에 그리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있던 이정훈이 인기척에 눈을 뜬다. 노동자가 벌써 일어나서 창밖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의아해서 이정훈이 묻는다.
뭘 보세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방안이 환한 게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환한 게 신기하다니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하나 반지하에서만 살았는데 지상은 이렇게 아침에 해를 볼 수 있네요
노동자가 눈부신 아침 햇살을 얼굴 가득 받아들이고 있다. 노동자의 그런 진실한 모습에 이정훈은 가슴이 아팠다.
, 저랑 마지막으로 점검하시죠?”
이정훈이 어젯밤에 그린 가리봉 오거리 지역 약도를 보여준다. 그걸 본 노동자의 입이 함지박만 해진다.
이걸 직접 그리신 거예요? 화가 하셔도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하철 가리봉역 쪽은 당연히 검문이 심하니까 아예 처음부터 그쪽으로는 학생들이 집결하지 않겠습니다. 버스로 가리봉 오거리에 접근시키겠습니다. 동이 뜨기 직전 900(9)에 일호 알루미늄 공장 옆 건물 옥상에서 학생들이 횃불을 듭니다. 곧바로 가리봉 오거리 육교 위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유인물을 뿌릴 겁니다. 그러면 주동자께서는 부영 전자 옆 호남식당 골목에 계시다가 나오면서 이번 시위를 이끄시면 됩니다. 역 쪽에 배치되어있는 전투경찰 버스가 움직인다 싶으면 바로 해산 명령을 내리세요. 이번 시위는 노동운동에 학생들이 함께 한다는 선전 형태이니깐 구호만 외치시고 유유히 사라지시면 됩니다.”
이렇게 설명만 들어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상상이 되네요. 정말 작전 잘 짜십니다.”
노동자의 진심 어린 칭찬에 이정훈의 고개를 살짝 숙여준다.
앞으로 노학연대 함께 해야 할 게 너무나 많습니다.”
이정훈이 시위 주동자와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한다. 평생을 노동으로 단련된 노동자 손바닥에 박혀있는 굳은살에 이정훈은 노동자 계급의 강한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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