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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14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8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5
조회수 : 58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7/12 22: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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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물체가 온지 20일이 지났다. 그 시각 현주는 극도로 지쳐가고 있었다. 식량은 아직 충분했지만 외부환경과 단절되어 집 안에만 갇혀 있은 지가 벌써 20일째였다. 컴퓨터를 하거나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며 빈둥거려도 긴 시간이었을 텐데 현주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때문에 현주 입장에서는 20일이 아니라 2개월은 갇혀 있었던 기분이었다.

 

검은 구가 나타난 날 이후로 현주는 집안 불을 켜놓을 수가 없었다. 집안 불을 켜놓는다는 것은 그 곳에 아직 병에 안 걸리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식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병에 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안에 있는 사람이 여자라면 성관계를 해도 병이 옮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이라 현주의 하루는 24시간 중 6시간을 빼면 거의 어둠 속이었다. 그 6시간도 완벽한 밝음은 아니었다. 커튼을 쳐놓아서 낮의 햇빛을 절반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 그 햇빛이 사그라들고 땅거미가 지면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현주는 어둠이 싫었다. 본래 햇빛을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이렇게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오래 있으면 답답해했다.

집 안에 갇혔을 때부터 식량과 함께 빛을 발할 수 있는 물건은 현주에게 중요했다. 양초, 랜턴, 핸드폰, 노트북. 아껴 쓰려고 노력했지만 해가 지고 어둠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럴 땐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양초를 계속 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시간 내내 잠을 잘 수는 없었으니까.

 

현주는 가끔씩 노래를 들었다. 노래에 집중하다보면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노트북 배터리와 핸드폰 배터리를 더 이상 충전할 수 없어 마냥 들을 순 없었다. 정말 아껴 아껴 들었다. 배터리가 줄어들수록 1프로 1프로가 너무 아까웠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면 검은 구 쪽에서 군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쿠구구궁! 꽈광! 충격으로 집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스트레스였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예고 없이 귀를 덮치는 굉음은 예민한 현주를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곧 폭약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은 군인들이 계속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다행으로 생각했다.

 

현주는 해외여행 때 미국에서 사온 망원경으로 검은 구가 있었던 군 통제구역 쪽을 내다보고 싶었다. 군 통제구역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지고 지금 이 생활도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주의 빌라단지와 군 통제구역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고층아파트 단지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고층아파트 단지에서 500미터 쯤 더 가면 통제구역이 시작되는 걸로 현주는 알고 있었다. 그럼 저 고층아파트 사람들은 현재 군 통제구역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을까? 현재 상황은 희망적일까? 아니면 비관적일까? 현주는 고층아파트를 보며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알려주면 좋겠다고.

 

다음날 현주는 창밖에서 사람 기척이 들려서 또 다시 긴장했다. 요즘 들어 창밖으로 사람 기척이 자주 들렸다. 며칠 전만 해도 사람 기척은 아주 드물었는데 요 며칠 간 하루에 세 네 번 정도 사람 기척이 느껴졌다. 현주의 빌라가 면해 있는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이었다. 현주는 처음에는 무서워서 기척이 들릴 때 창가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파~엄마.”

“쉿, 조용히 해.”

젊은 엄마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현주는 반가웠다. 저 조그만 아이도 이 난리 속에서 잘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주는 창가 가까이 가서 골목길을 내려다봤다. 그냥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젊은 엄마가 5살 정도의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젊은 엄마는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녀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현주의 빌라 입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투신자살한 시체였다. 현주와 눈이 마주쳤던.

 

젊은 엄마는 아이가 그쪽을 쳐다보기 전에 눈을 가렸다. 아이가 왜에? 하고 묻자 엄마는 아이의 얼굴이 자기 가슴에 안기도록 끌어안고 서둘러 시체를 지나쳐 뛰었다. 현주는 젊은 엄마의 뒷모습과 그녀의 옆구리로 삐져나온 아이의 작은 발을 빤히 쳐다봤다. 왠지 이 험난한 상황에서 저렇게 조그만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안쓰러워졌다. 계속해서 둘이 저렇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힘든데... 지금 이 곳은...’

 

그 후로 현주는 인기척이 날 때마다 사람 구경을 했다.

나이 든 사람,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 혼자인 아저씨, 아줌마, 아직 중학생인 것 같은 어떤 소년. 여러 사람들이 골목길을 지났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많구나. 현주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수록 힘이 생겼다. 통신이 끊기고 방송이 끊기니 지난 10일 동안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바깥에선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어쩌면 자기 혼자 남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창밖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가니 기뻤다.

 

골목으로 젊은 남자가 지나갈 때 현주는 현민의 생각이 났다. 지금 현주의 집을 지나쳐 지나간 남자는 현민과 비슷한 체격의 남자였다. 앞모습은 아니었지만 뒷모습이 꽤 닮았다. 대리님은 잘 있을까. 현주는 현민의 생각을 하다가 순간 마지막 통화에서 했던 고백이 떠올라 쑥스러워졌다. 갑자기 기분에 취해서 그런 고백을 하다니. 그러나 또 볼 수 없을거란, 만약에 보게 된다고 해도 가까운 시일은 아닐 거란 생각에 그 부끄러운 감정도 곧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우울해졌다. 다시 원래 생활대로 돌아갈 순 없는 거야.

 

젊은 남자는 계속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뒤를 향해 어느새 남자 두 명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남자는 뚱뚱했고 한 남자는 말랐다.

‘뭐야, 저 둘 언제 저렇게 빨리 다가왔지?’

백팩을 맨 젊은 남자가 갑자기 뒤에 출현한 남자 둘을 의식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마른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젊은 남자의 머리를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쳤다. 젊은 남자는 쇠파이프에 맞고 바로 쓰러졌다. 마른 남자는 쓰러진 남자의 백팩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백팩을 뒤지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등에 멨다.

 

젊은 남자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백팩을 뺏어 멘 마른 남자의 발목을 잡았다. 마른 남자가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젊은 남자는 필사적이었다.

옆에 서 있던 뚱뚱한 남자가 마른 남자의 발짓에 킥킥 웃었다. 그러고 나서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더니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쇠파이프로 마구 내리쳤다. 그 충격에 피가 이리저리 튀고 쓰러진 남자의 얼굴이 주저앉았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때릴 수 있을까? 마치 물건을 부수는 것처럼 아무 감정 없이... 현주는 공포에 질려 몸이 굳은 채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마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둘에게 기척을 들킬까봐.

 

쓰러진 남자는 곧 움직임을 멈췄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땅바닥에 큰 타원형을 이뤘다.

“아이씨, 별것도 아닌 놈이... 끝까지...”

뚱뚱한 남자가 투덜거렸다.

마른 남자가 자신의 옷에 튄 핏방울들을 보더니 소리쳤다.

“아이 진짜! 적당히 패야지! 피 튀잖아, 임마! 찝찝하게!”

“감염자는 아니잖아. 딱 보면 모르냐?”

“이런 미친... 잠복기 환자들도 있는 거 모르냐?”

그 말에 뚱뚱한 남자가 잠깐 생각하다가 외쳤다.

“아 몰라! 그런 것 까지 일일이 따지면 어떻게 패고 다녀?”

 

뚱뚱한 남자는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한번 더 발로 찬 다음 고개를 옆으로 왔다갔다하며 목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목을 뒤로 젖히는 순간 뚱뚱한 남자의 시야가 위로 향하게 되었고 4층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현주와 눈이 마주쳤다. 현주는 마치 귀신과 눈이 마주친 듯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래?”

마른 남자가 뚱뚱한 남자에게 물었다.

뚱뚱한 남자는 현주의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사람 있는 거 같은데.”

마른 남자가 뚱뚱한 남자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그냥 가자. 피곤하다. 오늘 소득도 있잖아.”

“여자인 거 같았는데.”

그 말에 마른 남자가 창문을 다시 올려다봤다.

“음... 커튼이... 여자취향인 것도 같고...”

 

마른 남자는 빌라를 살펴보며 입구를 찾았다. 그런데 둘이 빌라 입구 쪽으로 다가갔을 때 그 둘의 눈에 부패해버린 감염자의 시체가 보였다. 마른 남자가 그걸 유심히 보더니 멈춰섰다. 그리고 그쪽으로 향하는 뚱뚱한 남자의 옷자락을 잡고 뒤로 끌었다.

“잠깐만, 이거 감염자가 투신자살한 거 같은데. 가까이 가지 마.”

뚱뚱한 남자는 그래도 그냥 시체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뭐해? 가자니까.”

마른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냥 폴짝 뛰어 넘어가면 안 되나?

뚱뚱한 남자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병 걸려서 뒤지고 싶냐? 조금이라도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빨리 집으로 가자.”

뚱뚱한 남자는 아쉬운지 그대로 서 있었다. 마른 남자가 멀리 떨어져서 손짓했다.

“아, 빨리 오라고!”

“여자인 거 같았는데.”

“너 거기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나 너랑 안 다닌다.”

뚱뚱한 남자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른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 뚱뚱한 남자의 미간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야, 내가 말했잖아. 앞으로 여자 많이 볼 수 있어. 그것도 대피하느라고 식량이랑 물까지 싸가지고 나오는 여자들.”

뚱뚱한 남자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케이. 알았어.”

둘은 발걸음을 옮겼다. 둘의 기척이 멀어지고도 한참 뒤에야 현주는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일어날 수 있었다. 쓰러진 남자의 주저앉은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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