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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6월10일> 명동성당 추모집회
게시물ID : panic_988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6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13 11: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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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명동성당 추모집회
 
 

눈이 오려는지 하늘에는 푸른 끼가 하나도 없다. 아직 오후 시간인데도 하늘은 검게 변하고 있다. 오늘 명동성당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살해당한 김영철 열사 추모 집회가 열린다. 수십 대의 전투경찰 수송버스가 명동성당 지역을 에워싸고 있다. 을지로 입구에서 대기중인 최성식 소대원들의 전투경찰 버스 안에 김용수가 앉아있다. 예전에 전투경찰한테 뺏은 워크맨으로 팝송 타잔보이를 듣고 있다가 스톱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원래 소유주인 전경을 부른다.
, 니 거 가져가!”
김용수가 전경에게 워크맨 카세트를 돌려준다. 전경이 자기 물건을 돌려받으며 저 새끼가 웬일이야? 사람 됐네.’라는 표정을 짓는다. 차 안에 부착되어 있는 시국사범 수배전단을 김용수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고 좋아했던 고등학교 친구 이정훈이 범죄자가 되어 김용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정훈아, 밥은 먹고 다니니?’
눈이 붉어진 김용수가 다른 동료들이 볼까봐 버스 밖으로 걸어 나간다. 연말연시 서울 시내 풍경은 화려하고 풍요롭지만, 김용수 마음은 현재 하늘처럼 무겁고 착잡하다. 길 건너 고급식당 건물에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문구가 번쩍번쩍 점등되고 바로 옆 레코드숍에서 크게 틀어놓은 캐럴이 들려온다. 검은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는 건지,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있다. 바로 이 앞을 지나가던 시내 버스 창문이 열리며 학생들이 밖으로 유인물을 뿌린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려간다. 바람에 휘날리며 뿌려진 유인물 한장을 김용수가 수거한다. 그동안 학생들의 유인물을 압수하고 뺏었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인물을 읽어 본다.
애국시민 여러분, 전두환 군사정권이 또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을 뺏어갔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김영철 학생을 물고문으로 살해하고도 뻔뻔스럽게 자기 죄를 덮으려 합니다. 이 천인공노할 전두환 정권에 맞서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합니다······.”
김용수가 유인물을 다 읽고 가슴이 답답한 듯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이 내려앉았다. 김용수 바로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내려오고 있다. 추모집회 시간은 6시다. 이 시간에 맞춰 전국 교회, 성당, 사찰에서 타종하기로 했다. 집회 시간이 가까워지자 학생들,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으로 몰려온다. 고문 치사당한 김영철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이 명동성당 입구에 펼쳐진다. 명동성당 마당에는 그 전날부터 들어와 있던 학생들이 김영철을 추모하며 꽃상여 타고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의 모진 꿈만 꾸다 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 숲 사이로,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에 뿌리며,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노래가 끝나갈 무렵 학생들이 외치는 반정부 구호와 함성이 여기저기서 눈사태처럼 굉음을 내며 명동일대를 슬픔과 분노로 뒤덮는다. 이에 전투경찰 소대장들의 명령이 하달된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사복 체포조들이 사과탄 안전핀을 뽑아 명동성당 쪽으로 다가오는 학생들을 향해 던졌다. 마침내 시위 주동 학생의 메가폰 사이렌이 울리며 시위 시작을 알린다.
살인마 정권에 살해당한 김영철 동지의 피의 대가 쟁취하자!”
시위 주동자의 구호 피의 대가 쟁취하자!’에 맞춰 명동성당 근처 건물들에서 반정부 유인물이 쏟아져 내린다. 이와 동시에 파쇼정권 타도하고 민중공화국 수립하자!’는 현수막을 학생들이 펼쳐들고 스크럼을 짜며 두려움없이 전투경찰들을 향해 다가간다.
파쇼타도! 민중공화국!”
파쇼타도! 민중공화국!’을 외치며 한발 한발 전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전투경찰들의 최루탄 발사기가 위로 올라간다. ‘빠바바방하는 금속성 발사음과 함께 최루탄이 날아와 터지면서 페퍼포그 차량에서 소위 말하는 지랄탄이 발사됐다. 검은 하늘 아래, 하얀색의 최루가스가 퍼져가면서 명동성당 건물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뿌연 거리에 겨울바람이 불어오자 최루가스가 점점 옅어지면서 불꽃들이 분노의 눈동자처럼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전투소조들이 화염병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불붙은 화염병 수십 개가 불꽃을 길게 늘어뜨리며 날아가 전투경찰들 방패에 부딪힌다. 곧이어 전투소조 각목조가 사생결단의 자세로 전투 경찰들의 회색방패를 강타하기 시작한다. 예전 같으면 시위를 구경하다가 최루탄 한 방만 터져도 도망을 가던 시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학생들을 향해 박수를 쳐준다.
물러서지 않는 시위대를 향해 소대장 최성식이 최루탄 직격탄 발사를 명령한다. 전투경찰들이 직격탄을 시위대를 향해 날린다. 그걸 맞고 쓰러지는 시위대, 그러나 도망가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전투경찰들을 향해 걸어간다. 이에 당황한 최성식 등 소대장들이 사복 체포조들에게 시위 주동자 체포를 명령하지만, 김용수를 비롯한 사복 체포조들의 발이 떨어지지 못한다. 지금 그들은 끝모를 분노가 용광로 쇳물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직격탄 최루탄이 터지며 인마살상용 파편이 도로에 나뒹굴자 분노한 시민들이 스스로 보도블록을 깨서 전경들을 향해 던진다. 곧이어 전투소조들이 온 몸으로 전투경찰들의 방패에 부딪히자 전투경찰들의 시위진압 대형이 무너지고 그들은 시위대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때, 명동성당에서 타종을 한다. 저녁 6시다. 김영철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명동성당 근처를 지나가던 차들도 6시에 맞춰 경적을 크게 계속 울려댔다. 이날 9KBS 보도국에서 뉴스 방송을 준비하던 앵커에게 보도국 국장이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국장님 이게 뭐예요?”
앵커의 물음에 보도국장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위에서 내려온 보도지침!”
앵커가 건네받은 종이를 보며 그 내용을 읽는다.
명동성당에서 벌어진 추모집회의 폭력성과 시민들 피해를 부각할 것······. 이거 매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제가 앵무새도 아니고 지금 시민들 분노가 들끓고 있는데, 시민들 피해라니요?”
앵커 그만하고 싶어?!”
보도국장의 이 한마디에 앵커가 말을 못한다. 잠시 후, 9시 뉴스 시그널 음악이 나간다.
오늘 저녁 6, 명동성당에서 발생한 고 김영철 학생 추모집회에서 벌어진 폭력시위에 검찰은 엄정 대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학생 52명과 시민 4명을 긴급 구속했습니다. 경찰은 향후 벌어지는 거리시위 뿐만 아니라 대학가 시위에 대해서도 적극 가담자는 물론 단순 시위 가담자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화염병 제조, 투척자는 실형에 처하겠다고 합니다.”
연말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는 공장 집결지역인 가리봉 오거리도 예외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트리가 장식된 술집과 식당들에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저녁 늦은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들이 많다. 이정훈의 친구 전칠성이 근무하고 있는 태흥전자도 수출 물량 납부 마감일에 쫓겨 잔업을 하고 있다. 전칠성이 지게차로 물품박스를 나르고 있다. 이정훈이 그걸 보고 있다. 안경도 벗고 빵모자를 쓰고 최신 유행하는 점퍼를 입고 있다. 이정훈이 전칠성이 운전하는 지게차를 유심히 본다.
내가 칠성이한테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이정훈이 전칠성이 근무하는 공장 앞에서 그냥 여기를 떠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다.
 

정훈아,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보안이 새는 거잖아?”
가리봉 오거리 다방에 이정훈과 전칠성이 마주보고 있다. 여기도 년말 분위기라 다방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지만 싸구려인지 조명 불빛이 일정하게 반짝거리지 않는다. 전칠성이 내가 하지 않겠다면 보안이 새는거다라는 얘기에 이정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칠성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자기 결심을 밝힌다.
할게!”
그러자 이정훈이 전칠성의 손을 잡는다.
칠성아, 고맙다.”
나는 그거만 맡으면 되는 거지?”
, 그런데 이번 택은 백 퍼센트 전원 구속이 될거야. 칠성이 니 역할이 크기 때문에 실형이 나올 수도 있어.”
그래도 주동자 정훈이 보다는 징역 오래 살지 않겠지?”
전칠성이 환하게 웃는다. 이정훈이 슬픈 표정으로 함께 웃는다.
내가 할 줄 아는 대형 일종 지게차 운전이 민주화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신나는데?”
그러다가 전칠성이 다방에서 켜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말을 멈춘다.
- 다음 주 토요일에 예정된 제2차 고 김영철 학생 추모집회가 열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일대를 전국에서 동원된 경찰병력이 원천봉쇄할 예정입니다. 이날 남영역, 숙대입구역에는 지하철이 서지 않고 그냥 통과하고 검찰은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해 전원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뉴스 앵커의 보도를 들으며 이정훈과 전칠성의 얼굴이 비장해진다. 다방 화분에 걸쳐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일정하지 않은 조명 불빛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쿵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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