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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6월10일> 유언
게시물ID : panic_989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4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25 09: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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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유언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등학교 시절, 주위 가난한 친구들의 아픔을 함께했던 친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 출세가 보장되었던 대학생, 그러나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이정훈의 몸뚱이가 숯덩이로 변했다. 그의 분신자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시위대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시간도 멈췄다. 사복 체포조 김용수는 경악스런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서 있다. 서울대 법학과 조교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정훈이 외친 마지막 구호 파쇼정권 타도하고 민중공화국 수립하자는 유언이 되었다.
미국대사관 백인 경비원들이 달려 나와 불타고 있는 이정훈 몸 위에 소화기를 뿌린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노여움으로 변한 시위대가 꿈틀거린다. 각목을 든 남학생들이 그대로 미국 대사관 정문으로 달려간다. 그들을 막아서는 전투경찰의 방패를 분노로 타격한다. 어떤 두려움도 없는 눈빛의 대학생들 각목에 전투경찰 방패가 갈라지고 전경들이 뒷걸음질 친다. 사복 체포조들이 곤봉을 빼어들지만, 분노한 시위대는 그들을 향해 달려든다.
길가에 있던 시민들도 폭력을 휘두르는 사복 체포조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전투소조가 떨어뜨리고 간 화염병을 시민들이 주워들어 자기가 라이터 불을 붙여 전투경찰들을 향해 던진다.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가 피울음이 되어 전경과 사복체포조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정훈의 죽음의 긴긴 그림자가 광화문 앞에 드리운다. 이 넓은 광화문 앞을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시위대들이 파쇼정권의 적들인 전투경찰, 사복체포조들을 몰아냈다. 이정훈이 죽음으로 돌파해낸 것이다. 그의 말대로 퇴로가 없는 미국 대사관 점거농성을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퇴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광화문 도로가 해방구가 된 날, 이정훈의 고향에서 숫돌에 낫을 갈던 이정훈의 아버지가 손을 벤다. 낫이 잘 드는지 손가락을 슬쩍 대보다가 손을 벤 것이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정훈의 아버지가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핀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매표소 TV 앞에서 시민들이 KBS 9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 앵커가 이정훈의 분신자살 소식을 전하고 있다.
- 지난 가리봉 오거리 불법 폭력시위 배후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서울대생 이정훈 군이 오늘 미국 대사관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이정훈 군은 평소 가난한 가정 형편을 비관해왔으며 최근에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려 왔다고 합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앵커의 뉴스 보도에 시민들이 술렁거린다.
왜 죄 없는 학생들이 죽어야 하는 거야. 우리 아들, 딸들이 저러고 있는데 우리는 뭘 하는 거야!”
이정훈의 비밀 아지트가 있었던 잠실 연립주택 슈퍼마켓 주인 아저씨도 TV를 통해 미국 대사관 점거 농성 뉴스를 보다가 분신자살한 이정훈의 사진을 본다.
... , 착한 학생이 죽다니······. 세상이 잘못됐어!”
손녀가 TV에 나온 이정훈을 알아보고 훌쩍인다.
할아버지, 무서워······.”
이 시간, 최지혜의 집에서 최지혜 부모들이 오늘 벌어진 미국 대사관 점거 농성 시위를 TV뉴스를 통해 보고 있다. 미국 대사관 건물에서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떨어지는 이정훈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최지혜의 아버지가 쌍욕을 해댄다.
새끼! 저거, 저거······. 근데 지혜가 오늘따라 너무 늦네.”
최지혜의 어머니는 충격적인 사건에 심장이 뛰는지 TV 화면을 더 이상 쳐다보지 못한다.
KBS 저녁 9시뉴스를 마친 앵커가 보도국장실로 들어간다.
국장님
앵커가 국장 앞에 서 있다. 그런 앵커를 별 관심 없다는 듯, 보도국장이 앵커는 쳐다보지도 않고 켜놓은 TV를 보면서 묻는다.
왜에?”
지금 학생들이 죽어가는데 더는 이 짓 못 하겠습니다!”
이 짓이라니? 앵커 그만하고 싶어?!”
이 말에 앵커가 보도국장을 향해 뉴스 원고를 집어던진다. 그리고 보도국장실을 나간다.
미국 대사관 시위로 연행된 학생들이 전투경찰 버스 통로에 무릎 꿇고 있다. 사복 체포조 한 명이 후배 전투경찰들에게 명령한다.
커튼 쳐!”
연행된 학생들을 구타할 때 밖의 시민들이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후배 전경들이 커튼을 치려 하자 김용수가 손을 내어젓는다.
커튼 치지 마!”
동료 사복 체포조가 이 새끼가 왜 이러지?’ 하면서 무릎끓고 있는 학생의 머리를 헬밋으로 내려친다. 김용수가 동료 사복 체포조에게 다가간다.
학생들 때리지마!”
뭔 소리야? 이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뺑이친 걸 생각하면······.”
그러면서 동료 사복체포조가 학생을 또 때린다.
때리지 말라고 했잖아!”
김용수가 동료 사복체포 안면에 주먹을 날린다. 동료가 쓰러진다. 그러자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성식이 고함을 친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김용수가 최성식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전경들에게 말한다.
잡혀 온 학생들 때리지 마!”
이 새끼가 미쳤나······.”
최성식이 김용수의 어깨를 잡아챈다. 뒤돌아선 김용수가 최성식을 노려본다
미친건 바로 너야!”
어쭈? 너는 지금 상관명령 불복종이야! 이 병신같은 새끼가!”
최성식이 김용수를 한 대 치려 하자, 최성식의 팔을 김용수가 꽈악 잡는다.
너는 지금 미안하지도 않냐? 정훈이한테 미안하지도 않냐고?!”
고함을 치는 김용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김용수의 살벌한 눈빛에 겁이 난 최성식이 가만히 있다. 김용수가 버스 문을 발로 박차고 나간다. 뛰기 시작한다. 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뛰어가면서 사복 체포조 상의와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다. 한참을 뛰어가던 김용수가 길거리 레코드숍에서 정수라의 노래 ! 대한민국이 스피커를 통해 나오자 걸음을 멈춘다.
- 원하는 것은 .......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아아~ 우리 대한민국 ...... 사랑하리라~
김용수가 그 스피커를 발로 걷어차 박살낸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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