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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세정빌라-1
게시물ID : panic_990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하설탕
추천 : 6
조회수 : 7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8/10 15: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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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건 내가 지방 모 소도시에 전근 갔을때의 이야기이다.
급하게 반년 정도 모 시의 지사 프로젝트에 차출되어 그 지방으로 내려갈 일이 생겼다. 당연히 아내와 아이들은 고작해야 반년 정도에 이사를 할 수 없으니 나만 단신부임인 셈이다. 그나마 회사에서 프로젝트 기간에 살 원룸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다행인가.
 
출근을 하고 지사의 직원들과 인사를 한 후 그 중 한명과 동행해 숙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 직원은 급하게 구한 것 치고는 자기가 가봤는데 제법 괜찮더라는 말을 주절거리며 했고 실제로 살아야 할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실제로 도착한 숙소는 직원의 말과는 달리 애매했다. 지방도시의 오래된 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원도심이었다. 확실히 쇠퇴한 듯 도로나 가옥 모두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좁고 가로등 적은 골목길은 남자인 나도 꽤 움찔할 정도였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오래된 빌라가 내 숙소였다.
 
그 이름은 '세정빌라'.
 
직원의 안내로 302호의 벨을 누르자 중년의 남자가 런닝 차림과 편해보이는 반바지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면 나왔다. 검게 그을리고 배는 나왔지만 단단한 체구를 한 남자였다. 남자는 서글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아이고, 202호 새로 들어오신 분이죠. 저는 김동호라고 합니다.그냥 김씨라고 불러주세요. 하하"
 
이 명랑한 남자는 이 빌라에서 가장 고참격으로 평소에는 빌라 주인 대신에 관리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의 안내로 한 층 아래인 202호로 내려갔다.
 
"낡았지만 방은 깨끗하고 넓어요."
 
그의 말대로였다. 방 두 개짜리에 부엌과 연결된 거실하나. 베란다겸 다용도실. 오래된 구조이긴 했지만 화장실도 넓고 큼직했고 햇빛도 잘들고 시원시원한 구조였다. 거기다 김씨라고 불리는 관리인이 깨끗하게 청소까지 해놔서 더욱더 싼 가격 치고는 좋은 집으로 보였다.
 
"정말 싼 것 치고는 괜찮네요."
 
직원과 함께 타고온 차 트렁크에 가져온 짐을 내렸고 김씨 역시 도와주었기 때문에 일은 금방 끝났다. 김씨에게 직원과 함께 저녁식사라도 하자 청했지만 김씨는 야간근무가 있다며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고 나는 직원과 함께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제 갈 길을 가려고 차로 향하는데 빌라 안쪽으로 들어가던 김씨가 뒤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저한테 말하시고 가급적 어두워지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누구더러 들어오라고 하지도 말고 말이죠."
 
"네?"
 
"요 부근이 요새 사건사고가 많아서 말이죠."
 
묘한 이야기였다. 부녀자나 아이도 아니고 성인 남성에게 날이 저물면 집 밖에 나가지 말라니. 거기다 누구를 들이 말라고 하다니 정말 기묘한 이야기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에 사건이 많다니 납득했다. 강도가 항상 여성이나 노약자만을 노리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주의하죠."
 
 
 
**
 
 
그 빌라의 월세는 쌌다. 주변 시세에 비해도 쌌다. 왜 그렇게 쌌는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김씨의 묘한 주의의 의미도.
 
 
세정 빌라에서 살게 된 지 닷새가 지나간 뒤였다. 다소 떨어진 마트에서 마감시간 직전 사들인 식료품과 필수적인 생활용품을 봉지에 가득 담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빌라에 도착하게 되었다. 빌라 앞마당에 주차를 하니 어두운 앞마당이 정말로 괴괴했다. 하나 둘 켜진 빌라의 불빛이 아니라면 폐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분위기가 음침했다. 102호의 불빛이 없고 더운 여름 창문이 꽁꽁 닫힌 체 기물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걸보면 102호는 공실인 것 같았다. 내가 사는 202호도 좀 전 까지는 공실이었을 것이고 6가구 밖에 살지 않는 빌라의 1/3이 공실이었던듯 하다. 302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아무튼 짐을 들고 와 202호의 불을 켜고 요깃거리를 작은 냉장고에 넣은 후 생활용품을 정리하고 있는 참이었다.
 
-딩똥.
 
갑자기 있는 둥 마는 둥 낮게 울리는 벨소리가 들렸다. 자정인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둥했다. 그 고장에는 회사 사람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나마 아는 회사사람들 조차 전근한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아 서먹했다. 자정에 갑자기 들이닥칠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혹시 관리인인가? 아까 불켜진 302호를 떠올리고는 현관문 렌즈에 눈을 맞췄다.
 
......아무도 없었다.
 
-딩똥.
 
다시금 벨소리가 울렸다. 존재감을 과시하듯이.
 
-딩똥.딩똥.딩똥
 
나는 순간적으로 멍청하게 서있다 다시 현관문 렌즈를 보았다. 사람은 커녕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조도가 낮은 나트륨등 아래에는 맞은편 201호의 문짝만이 시치미를 떼듯 견고하게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구야!"
 
순간적으로 문을 벌컥 열어졌혔다. 그제야 시끄럽던 벨소리는 그쳤지만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귀를 귀울여도 급하게 내려가는 발소리도 인기척도. 그리고 다른 집의 인기척도,풀벌레 소리 조차.....
 
소름이 쫙 돋았다. 분명히 다른 거주자조차 이 상황에 숨죽이고 있었다. 급하게 문을 닫고 보조잠금장치와 걸쇠를 꼼꼼하게 내리고 김씨의 말을 되새겠다.
 
-집 밖에 나가지 마세요. 누구를 들이지도 말고요.
 
 
**
 
 
그 후로 벨소리는 며칠에 한 번씩 울렸다. 자정이 지나서 새벽이 될 때까지 잊을만 하면 심심치 않게 울렸다. 잠이 들어있다가도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집요하게 울렸다. 그리고 내가 잠에 깨서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쓸 때까지 조롱하듯 울리다 조용히 소리가 끊어졌다. 그런 날이 계속되지 관리인이라는 김씨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계세요?"
 
현관에서 302호의 불빛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리자 현관문이 열렸다.
 
"202호 아저씨시네요. 일단 들어오세요."
 
김씨가 헐렁한 차림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바로 윗층이기에 나와 거의 구조는 비슷했다. 단, 혼자 사는 남자답게 세탁하지 않은 빨래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거실바닥에는 개지 않은 이불이 뭉쳐져 있었다. 김씨가 손짓해 한 구석에 있는 식탁에 가서 앉았다. 김씨 혼자 자작하고 있었던 듯 녹색 소주병과 간단한 안주가 차려있었고 맞은편 벽의 TV에는 야구중계가 흐르고 있었다.
 
김씨는 싱크대에서 소줏잔을 씻어와 나에게도 권했다. 나 역시 한잔을 홀짝 마시고 약간 취한 기색인 김씨에게 말했다.
 
"혹시 이 빌라에 어린아이가 사나요?"
 
사실은 어린애의 장난이 아니라 뭔가 이성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임은 안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그러나 다짜고짜 이 빌라에 심령현상이 발생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을 것이다.
 
"...1층은 할머니랑 그 아들이 살고, 2층 아저씨랑 회사 다닌다는 젊은 아가씨가 살고. 3층은 저하고 이혼하신 아줌마와 남매가 살죠. 그집 딸이 제일 어린데 그래도 대학생일걸요. 기숙사 산다고 방학이나 나타나요."
 
"그럼 이 근처에 사는 아이일까요. 실은 자정 무렵이 되면...."
 
"벨소리가 울리는 거요? 사실 유명해요. 이동네에서 이 빌라. 귀신나오는 빌라라고."
 
"네?"
 
김씨는 히죽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사실 내가 사는 202호도 전 입주민이 들어오는 족족 벨소리며 심령현상에 시달리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갔다고 한다. 아니 전 빌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김씨가 사는 302호만 빼고.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빌라 전체가 이대로 둬도 되는 겁니까?"
 
나는 흥분해 소리쳤다. 김씨는 차분하게 나에게 소주 한잔을 더 권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집안에만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없어요. 귀신이 나와도 특별히 해꼬지를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이 빌라에 오래살았지만 특별히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저씨 전에 살았던 202호 사람 중 남편이 다친 것도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고 설치다 제풀에 다친 거니까."
 
그러니까 내 전 거주자는 젊은 신혼부부로 나와 같이 벨소리를 듣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심령현상을 더 겪었다. 거기다 아내쪽은 제법 심약한 성품인지라 노이로제를 겪었고 남편은 노심초사해 민간요법도 써보고 무당까지 불러왔다고 한다. 무당은 집을 둘러보고는 그냥 이사하면 될 문제고 더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돌아가버렸고 남편은 귀신을 쫓아보겠다고 벨소리가 울려퍼지는 복도로 나왔다가 어두운 계단을 굴렀다고 한다. 그 와중에 상당히 무서운 것을 본듯 횡설수설하다 119에 실려가버렸고 아내는 울며불며 이딴 집에는 못살겠다고 이삿짐을 싸서 빌라를 나가버렸다.
 
"그 날 저녁은 정말 난리법석이었지. 요지는 그 남편도 다리가 부러졌긴 했지만 지금도 잘 산다고 하더라고. 옆 동네 월세방에서 멀쩡히. "
 
"왜 이런 집에 다들 사는거죠?"
 
"그거야 돈이 없으니까."
 
이 빌라의 주인은 이 동네 유지로 이 곳말고도 전국 방방 곳곳에 소유한 건물이며 토지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 푼돈이나 버는 이 빌라에는 관심이 없고 철거하자니 돈이 들어서 가장 오래 산 김씨를 관리인으로 두고 입주에 대해서는 근처 부동산에 일임한체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 역시 관리인 역할을 수락한 후 월세도 공짜고 관리비용으로 약간의 용돈이 들어 올 정도라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 빌라에 1년 이상 거주하는 자들은 다들 이사할 돈이 궁해 귀신나오는 빌라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 밖에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밤에 밖에만 안나오면 안전하다고요. "
 
"거참, 대단하십니다."
 
다시 김씨의 집을 둘러보니 김씨라고 특별히 대담무쌍한 것도 아닌듯 거실에는 커다란 달마도가 걸려있었고 곳곳에는 염주와 불교용품이 널려있었고 머리맡에는 낡은 카세트와 불경 카세트가 널부러져있었다.
 
별 소득도 없이 관리인의 집에서 물러났다. 나 역시 아내에게 부탁해 성경과 십자가라도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2층의 다른 거주자는 회사 사람이었다. 201호 거주민 윤소영과 알게 된 것은 회사였다. 회사 앞 벤치에서 나른하게 늘어져있다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내 앞에서 멈췄다.
 
"세정빌라 사시죠? 전 201호의 윤소영이에요."
 
"네?"
 
"제가 총무과에다 말했거든요. 제 옆 집이 비어있다고."
 
"이무열 과장입니다. 윤..."
 
"총무과 윤 주임입니다."
 
윤소영은 똑소리 나는 여자였다. 윤소영은 나와 같은 서울 출신으로 신입시절 엉겁결에 이 지방 소도시에 떨어진 케이스였다. 1년만 버티면 본사로 보내주겠다 회사가 말했지만 1년이 2년이 되고 무려 4년차로 접어든다고 했다.
 
"그럼 윤주임은 4년 동안이나 세정빌라에 살았던건가?"
 
"저도 이사온지 9개월 정도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회사 근처 월셋방에서 살다가 서울서 온 다른 직원과 함께 그 집을 빌렸죠."
 
지금 퇴사한 서미란이라는 총무과의 다른 직원과 함께 빌린 방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미란은 회사를 퇴사해버리고 자기 짐만 챙겨 서울로 돌아가버렸다.
 
"서미란씨는 어쩌다 퇴사를 해버린거지?"
 
"그건....아시잖아요. 그 빌라가 문제가 있다는 거."
 
"윤주임하고 서미란씨도 겪은 건가? 벨소리를"
 
"이과장님은 벨소리 밖에 안 겪으신 건가요?"
 
윤주임과 서미란은 처음에는 그 빌라가 좋았다고 한다. 보증금도 적었지만 전세. 그럭저럭한 월급이지만 바짝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누추한 빌라라도 그저 땡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윤주임과 서미란이 최초로 겪은 심령현상은 벨소리가 아니었다.
 
 
서미란이 쓰던 방은 베란다 겸 다용도실이 연결된 방으로 햇살이 잘드는 방이었다. 특히나 아침햇살이 강해 예민한 서미란은 암막커튼을 구해와 베란다로 나가는 큰 창을 가렸다. 그렇게 커튼을 치고 어느날 처럼 서미란은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강한 햇살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커튼을 덜 닫았나.
 
눈을 떠보니 밖은 캄캄했다. 그때는 잠에서 덜 깨서 멍했기 때문에 어두운 것은 암막커튼 탓이라고 생각하고 커튼을 열어젖힌 순간.
 
"끼아아아아아악!"
 
서미란은 비명을 질렀다.
 
"미란아! 무슨 일이야!"
 
급히 옆방에서 윤소영이 달려오고 둘은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베란다 천장에 달린 빨래 건조대에 목 매달린 여자의 시체를. 두 눈은 튀어나올 듯 충혈되었고 얼굴은 퍼러죽죽했으며 혀는 가슴에 닿을 듯 늘어져있었고 너덜한 흰색 블라우스는 갈색으로 군데군데 물들어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갈색 스커트 아래의 다리는 해파리처럼 흔들림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대담했던 윤소영 역시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을 정도로 놀라 서미란 곁에 주저앉아버렸고 서미란은 이성을 잃은 듯 괴성을 질렀다. 3층에서 관리인 김씨가 내려올때까지
 
-딩똥.
 
"....이봐요. 무슨일이에요. 문 좀 열어봐요."
 
허겁지겁 이성을 찾은 윤소영이 현관문을 열고 런닝차림인 김씨를 데리고 서미란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목매달린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괴성을 멈춘 서미란은 윤소영을 붙잡고 울고불고 매달렸고 윤소영은 서미란을 달래며 김씨에게 그들이 겪은 괴이한 일을 설명했다.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그러자 김씨는 빌라에 얽힌 소문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만약 견디기 힘들다면 빨리 부동산에다 방을 내놓으라는 충고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서미란은 잘 때면 윤소영의 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둘이 함께 잤다고 한다. 서미란의 방은 그냥 옷 갈아입을 때나 잠시들어가는 방으로 서미란은 윤소영이 없다면 집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겁을 먹었고 윤소영과 서미란은 둘 다 상사에게 본사로 보내달라고 전근신청을 했다. 그리고 윤소영은 부동산에 방을 내놓았지만 그 빌라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총무과에다 이야기한건 혹시......"
 
"그건 아니에요. 아니, 그런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어차피 공실은 있었으니까요."
 
윤소영과 서미란이 귀신나오는 집에서 버틴 것은 돈 때문이었다. 자기 수입만을 가지고 생활하는 그 둘에게는 그 전세보증금도 제법 큰 돈이었다. 그리고 관리인이 호언장담한 집 밖에만 안나가면 된다 라는 말도 믿었고.
 
"그런데 서미란씨가 퇴사한 건 그 집 때문인건가?"
 
"네. 맞아요. 그것말고도 이런저런 일이 더 있었거든요."
 
윤소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괴현상에 집중적으로 시달린 것은 서미란이었다. 윤소영이 없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는 미란이었지만 언제나 윤소영이 같이 있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간히 볼 일로 윤소영이 집을 비우면 괴현상이 서미란을 괴롭했다. 나도 경험한 벨소리로 괴롭히기도 있었고.
 
그리고 서미란이 호소하길 서미란이 혼자 집에 있을때 귀 기울이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구두나 운동화를 신은 소리가 아니라 맨발로 자박자박 걷는 소리.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듯한 작은 소리. 귀 기울이면 그것은 201호를 노리듯 문 앞에서 멀어졌다 바로 앞에서 나곤 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밖을 내다보면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그 틈을 타 벨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대담해질 때는 윤소영이 없는 낮에도 그 소리가 나타났다. 서미란은 윤소영에게 호소를 했지만 윤소영이라고 딱히 해 줄 방법이 없었다. 그냥 어머니가 해주신 부적을 현관문과 방방마다 붙이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갈수록 예민해지는 서미란은 건강조차 나빠졌고 연고지 없는 이곳에서는 그냥 집에서 쉬는 게 고작이었다.
 
가급적 윤소영은 서미란 곁에 있어주려 했고 서미란이 드디어 두손두발 들고 도망친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는 윤소영도 함께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윤소영은 자신의 방에서 재방 중인 드라마를 소리낮춰 보고 있었고 곁에는 서미란이 자고 있었다. 괴현상은 심야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니까 서미란은 일찌감치 자는 걸 택했다. 그러다 무언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나서 보니 잠들었던 서미란이 어느새 깨어있었다.
 
"소영 언니, 지금 소리 안나?"
 
"무슨 소리?"
 
윤소영 역시 소리에 민감해져 있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노크를 하는 듯 콩콩 두들기는 소리가 끈질기게 이어지자 윤소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나가지마."
 
"괜찮아. 집안에 있으면. 그냥 현관까지 나가서 보고 올거야."
 
윤소영은 현관문으로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겠지 내려보다 현관문 아래에 종이박스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뭐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문간까지 나온 서미란이 대답했다.
 
"언니 무슨 일이야?"
 
"그게 문 앞에 무슨 종이박스가 있네."
 
"확인해봐야 할까?"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그냥 두자. 아침까지 저러고 있으면 그때 봐도 되지."
 
서미란 역시 동의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물건을 확인하기에는 그들은 충분히 소심해져있었다. 그렇게 돌아가려는 순간
다시 현관문이 똑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물건을 확인해달라는 듯.
소름이 끼친 윤소영은 서미란을 재촉해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TV의 볼륨을 올렸다.
그 순간 현관문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힘껏 문을 부딪치는 듯한.
무시하려고 했지만 10분이 넘게 그런 소리가 났으므로 윤소영은 슬슬 인내의 한계가 들었다.
 
"에이, 씨팔. 그래. 더러워서 확인해준다."
 
"언...언니 하지말자. 우리 조금만 더 버티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미란이 넌 문 잠그고 있어."
 
윤소영이 방문을 열자 시끄럽던 소리가 또 잠잠해졌다. 미란은 그래도 무서운지 방문 사이에 빠꼼히 문을 열고 있고 소영은 현관문에 기대둔 두꺼운 골프우산을 집어들었다. 강도도 아니고 (강도라 해도 골프우산따위로 퇴치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귀신 상대로 우산이 통할리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마음의 위안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그 종이박스를 일단 현관까지 들고왔다.
 
그건 평범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포장용 종이박스로 박스 외곽에는 어떤 과자의 상표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엄청 나게 가벼웠다. 가볍게 접혀진 종이박스를 열어제치자 A4 한장이 있었다.
 
-선물입니다.
 
종이를 뒤집어보자 이면지인듯 무언가 회사에서 쓸 법한 인쇄가 되어있었고 그뿐이었다. 아마 그 A4지가 선물인듯 했다.
 
"봤냐? 이제 됐냐?"
 
윤소영이 씨근덕거리며 다시 A4를 넣고 처음처럼 종이박스를 포개 다시 밖으로 내놓았다. 그제야 만족한건지 현관문 밖은 잠잠했다.
윤소영은 서미란을 데리고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던 윤소영은 무언가 무너지는듯한 소리에 잠을 깼다.일어나보니 시간은 4시경이었고 곁에서 자던 미란이 보이질 않았다. 놀라 거실로 나가보니 미란이 쓰러져있었다. 기절한 미란을 안고 흔들어깨우자 미란이 비명을 지르다 소영에게 엉켜붙었다. 그제야 소영은 119를 불러 응급실로 미란을 데리고 갔다. 착란 상태인 미란을 응급실로 데려가 검사를 받고 귀가하라는 것을 사정해 병실에 그대로 눕힌 후 소영은 집으로 가 출근준비를 했다. 그리고 서미란의 병가를 내고 입원한 미란에게 가자 그나마 진정된 미란이 들려주는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새벽에 서미란은 요의를 느끼고 거실을 거쳐 화장실을 가고 있는 참이었다. 그러다 현관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현관에는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흰블라우스에 갈색치마를 입은 중년쯤 되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소박하고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그 여자가 베란다에 목맨 그 여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잠시 갈피를 못잡고 얼어있는 순간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에 드셨나요?
 
"....예?"
 
-선물...마음에 드셨나요?
 
그때의 A4용지? 혼란에 빠진 서미란이 우물쭈물하자 여자가 광기를 드러내고 크게 고함을 질렀다.
 
-선물 마음에 들었냐고?
 
"....저리 가!"
 
그러자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미란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미란은 여자에게 떠밀려 거실바닥에 쓰러져 바둥거려졌지만 워낙 힘이 장사라 숨이 막혀 기절했다.
 
그리고는 윤소영이 달려와 깨운 것이었다. 윤소영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관리인 아저씨가 문 열지 말라고 했는데......."
 
"어떡해. 언니, 우리, 어떡해....나....그 집에 다시 못가."
 
미란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병가로 입원해 있는 동안 결심한 미란은 퇴원하자마자 바로 퇴사원 하나를 던지고 도망치듯 퇴사해버렸고 짐은 미란이 아니라 미란의 부모님과 오빠가 챙겨서 가버렸다. 그리고 보증금은 천천히 돌려줘도 된다면서 혼자 도망쳐 미안하다고 미란이 소영에게 울며 전화했다.
 
 
 
"...그럼 윤 주임은 괜찮은거야?"
 
"저야 그 후로도 5개월은 더 살았는데 괴상한 일을 안 겪는 건 아니지만 관리인 아저씨가 말하는대로 어두울때 돌아다니지 않고, 밖의 것을 들이지 않으면 되요. "
 
윤주임은 배짱이 두둑한 여자였다. 서미란이 도망간 이후 그녀 역시 그 여자를 현관문 밖에서 두 번 정도 보았지만 그녀는 밖에서 무슨 난리를 치든 절대로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건 총무과에 흘리듯 던진 이야기가 이렇게 된 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저도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 빌라를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갈거에요. 미란이도 없고. 솔직히 찝찝하죠. 과장님은 반년 동안 조심하셔야겠네요."
 
"그렇지. 그래도 여자인 윤주임도 버텼으니 나도 잘 버텨봐야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김씨가 말한대로, 윤 주임이 말한대로 나도 6개월쯤은 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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