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선배와 기도회 (上)
게시물ID : panic_99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JSS
추천 : 13
조회수 : 16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0/09 20:17:22
입대를 앞둔 여름방학에 있었던 일이니, 2014년의 일이다. 

당시 난 뒤숭숭한 기분에 뭘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군대라는 끔찍한 곳으로 끌려간다는 생각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이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 밤마다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 

난 친구들 앞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건데 뭘.” 하며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은 죽을 맛이었다. 건강했던 내 몸도 계속된 술자리에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술병으로 골골대던 어느 날, 같은 대학의 선배로부터 먼저 카톡이 왔다. 내가 짝사랑하던 선배였다. 카톡은 시간차를 두고 두 번 울렸다. 
   
[안녕. 내일 뭐해?] 
[혹시 내일 바빠?] 
   
난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당시 난 선배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선배를 짝사랑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다. 난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했다. 
   
[별 일 없는데요.] 
   
그러자 선배에게서 곧장 답장이 왔다. 
   
[잘됐다. 내일 나 좀 도와줄래?] 
   
그렇게 선배는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내일 선배가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회를 연다고 한다. 기도회 장소는 충청도의 산골에 있는 한 호스텔인데, 원래 그곳까지 태워다주기로 했던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내일 불참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배는 다른 사람을 찾던 와중 내 얼굴이 떠올라 연락했다고 한다. 
뭐 아버지 회사 차를 몰고 몇 번 학교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사정이 어쨌든 선배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난 기뻤다. 
   
선배는 기도회 밤의 행사 때 고기도 구워먹고 재밌게 놀 수 있으니 나도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게 선배랑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다음 날. 난 차를 끌고 선배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그곳엔 선배와 누군지 모를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아저씨들은 40~50대 쯤 되어 보였다. 

뭐 선배는 우리 둘이 간다는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좌석에 모르는 아저씨 한분, 뒷좌석에는 선배와 다른 아저씨가 앉았다. 
충청도까지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어색했다. 선배도 아저씨들도 단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는 어느새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난 어색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노래를 틀고는 괜히 노랫자락을 흥얼거렸다. 잠을 깨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난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휴게소에 좀 들렸다 가겠습니다.”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동의로 간주하고 차머리를 돌려 휴게소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린 후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긴장감 속에서 운전하자니 상당히 피곤했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선배가 다가왔다. 
   
“운전하느라 피곤하지?”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난 애써 괜찮은 척 하며 웃어보였다. 그러자 선배도 환하게 미소 지었다. 나를 반하게 한 선배의 밝은 미소였다. 
선배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배의 미소만큼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다 쉬었으면 이제 가도 될까? 아저씨들도 기다리고 계셔.” 
“아, 네. 잠시 만요.” 
   
난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몇 개 더 뽑았다. 선배와 아저씨들에게 나눠드리고 나도 내려가는 길에 마실 생각이었다. 

뭐 커피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지면 더 좋았다. 차에 도착하기 전 선배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미안한데, 노래는 꺼주면 안될까? 아저씨들이 불편해 하시더라고.”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는 내려가는 길에도 계속되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산 커피는 소용이 없었다. 아저씨들은 커피 같은 건 안 마신다며 두 분 다 거절하셨다. 

말 한마디 없고, 눈치 보이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본 선배의 웃는 얼굴과 밤에 먹을 고기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기도회가 열린다는 호스텔은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다. 충청도의 한 읍내까지 간 다음, 거기서 또 한참을 달려 이름 모를 산 앞에 도착했다. 그 산길을 따라 10분가량을 차로 더 들어가야 목적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산길은 포장되지 않아 상당히 거칠었다. 차가 하도 덜컹거리는 통에 차 바닥이 긁히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내 차가 아닌 아버지의 회사차라 흠집이 나서는 안됐다. 
   
나름의 고난을 겪으며 도착한 호스텔의 외경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은 외경은 흡사 흉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물 앞 주차장에는 민소매를 입은 근육질의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차를 막아서고는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창문을 내리자 그는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지금 안에서 사람들 기다리는 거 몰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마주친 적 없는 생판 초면이었다. 
   
“저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어?” 
“…네. 죄송합니다.” 
   
남자의 고압적인 태도에 난 일단 남자에게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사과한 것은 아니었다. 
   
“오빠, 죄송해요. 차가 좀 막혀서 늦었어요.” 
   
선배의 콧소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나를 대할 때와 전혀 다른 표정으로 “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주차할 테니까 내려. 늦었으니까 빨리 강당으로 들어가.”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다시 인상을 쓰며 말했다. 
   
“빨리!” 
   
나는 내 차에서 쫓겨나듯이 내렸다. 뭔가 불쾌하고 짜증나는 기분과는 다르게 산속의 공기는 무척이나 맑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불편한 아저씨 두 명에게서 해방됐다는 것이었다.  
   
건물의 낡은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제법 깔끔했다. 강당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어떤 아줌마는 경상도 사투리를, 어떤 아저씨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사람들은 서로 “오랜만에 뵙네요.”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본 한 아줌마가 소리쳤다. 
   
“아이고. 저기 왔네!” 
   
알록달록한 색깔의 등산복을 입은 두 아주머니가 나와 선배에게 다가왔다. 아주머니는 선배의 손을 잡고는 마치 명절에 모인 친지처럼 반갑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못 본 사이 왜 이렇게 예뻐졌어. 응?” 
“아주머니도 예뻐지셨어요.” 
“호호, 예뻐지긴 무슨. 옆에는 누구야? 남자친구야? 잘생겼네.” 
“남자친구 아니에요.” 
   
선배는 손과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당황하는 선배를 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나는 아주머니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성도 밝네. 우리 아들 삼았으면 좋겠다.”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나를 굉장히 살갑게 대해주셨다. 
   
철그럭 철그럭 
   
어디선가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니 근육질의 남자가 강당 문을 모두 닫고는 쇠사슬을 칭칭 감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어어?’ 
   
나는 당황했다. 내가 무교라서 기도회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원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난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 기도회가 원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응? 당연한거 아냐?” 
   
선배는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의 미소였다. 
   
“어머, 여기서 2박 3일 동안 먹고 자면서 기도하는데, 못 들었나봐?” 
“네? 여기에서 먹고 잔다구요?” 
“못 들었나보네.” 
   
아주머니는 호호 하며 웃었다. 
   
‘그냥 평범한 수련회 같은게 아닌가? 밤에는 고기를 굽는다며? 내가 몰라서 그런거야? 아니면 선배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난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아, 깜빡하고 말 못했네.” 
   
선배는 헤헤 하며 웃더니 고개를 홱 돌려 내 눈을 쳐다봤다. 
   
“괜찮지?” 
“아…. 네.” 
   
나는  황당해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내가 잘못 알았나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괜히 선배한테 쪼잔한놈으로 찍히기 싫었으니까. 
   
넓은 강당의 바닥은 왁스칠을 잘 해놨는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출입문과 마주보는 강당의 정면에는 무대가 있었다. 무대 위에는 설교용 단상이 하나 있었고 단상 뒤의 벽면에는 커다란 오망성이 있었다. 
   
오망성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십자가가 아닌 오망성이 걸려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의 기도회라기에 난 당연히 십자가가 걸려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사이비종교는 아니겠지?’ 
   
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선배는 그런 사람아 아니었다. 그리고 오망성이 예수의 오상을 상징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휴게소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혼자 커피를 연신 들이킨 탓인지 상당히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난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화장실이 어디예요?” 
“아, 화장실? 저쪽 문으로 들어가면 있어.” 
   
선배는 무대 뒤의 복도로 연결되어있는 작은 문을 가리켰다. 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입구로 들어서자 강렬한 암모니아 향이 코를 찔렀다. 난 반사적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환기를 위한 것인지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지만 소용이 없어보였다. 
   
‘이런 곳에서 2박 3일 동안 지내야 한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굉장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후면 군대에 가는데 갇혀 지내야 한다니. 난 소변을 누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지내면 선배와 친해질 수 있겠지? 혹시 알아? 일이 잘 풀리면 선배가 편지도 써주고 면회도 와줄지. 뭐 일이 더 잘되면 나야 좋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선 나는 깜짝 놀랐다. 머리가 반쯤은 벗겨진 마른체형의 노인이 화장실 입구를 막아서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변화 하나 없는 노인의 눈빛은 무척이나 차갑게 느껴졌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