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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기도회 (下)
게시물ID : panic_99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JSS
추천 : 7
조회수 : 170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10/11 19: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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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혹시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들어오려는 건가 싶어 쭈뼛거리며 서 있다가 괜히 손을 씻으러 세면대로 향했다. 노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의 동작을 쫒았다. 손에 닿는 차가운 물줄기가 유독 얼음장같이 느껴졌다. 

“어르신, 들어오시게요?” 

노인은 내 질문에도 한참동안 말없이 서있었다. 어쨌든 난 밖으로 나가야 했기에 출입문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그제야 길을 비켜줬다. 노인은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선배에게 돌아가는 내 뒤를 일정한 간격으로 쫓아왔다. 

‘저 할아버지 대체 왜 저래?’ 

정신이 이상한 노인인가 싶었다. 선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노인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네가 낯설어서 그러시는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래, 저 할아버지 처음 오는 사람한테는 늘 저러셔.” 

아주머니도 선배를 거들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흠!" 
  
무대 앞쪽에서 묵직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민소매를 입은 근육질의 남자였다. 

“여러분. 목사님이 조금 늦으실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기도하는 시간 가지겠습니다. 우선 핸드폰부터 수거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무대 앞에는 빈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핸드폰을 넣었다. 
  
선배도 웃으며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바구니에 넣었다. 핸드폰의 수거가 끝나자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누가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거의 동시에 엎드렸다. 나 혼자만 겉돌며 멀거니 서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배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너도 같이 기도해야지.” 

선배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난 선배 옆에 엎드렸다. 사람들이 낮은 톤으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가 겹겹이 쌓이자 상당히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딱히 이 교회에 속한 사람도 아니었고, 종교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분위기 속에서 나만 빠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남들처럼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한참을 무릎 꿇고 엎드려 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2박 3일 내내 이 짓을 하는 건가? 혹시라도 중간에 돌아갈 수는 없나?’ 

괜히 온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난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체감시간만 두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오래 취하고 있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왔다. 내 옆에서 기도하는 선배는 단 한 번도 허리를 펴지 않았다. 문득 그런 선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은 도대체 언제 쉬는 건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문득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난 화장실에서 나를 쳐다보던 노인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그 할아버지 아직도 날 쳐다보고 있는 건가?’ 

난 고개를 슬쩍 들어 노인이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앞에 있는 십 수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화장실에서 나를 쳐다보던 노인과, 내가 모시고 온 아저씨 두 분, 나를 살갑게 대해주시던 아주머니도 있었다. 
  
최소한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한참동안이나 같은 자세로 굳어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기도하고 있는 줄 알았던 선배는 어느새 나를 보고 있었다. 선배는 내게 웃어보였다. 선배의 아름답던 미소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철그럭 철그럭 

근육질의 남자는 쇠사슬을 풀어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문 밖에 쌓여있는 상자를 혼자 옮기기 시작했다. 
  
뒤이어 인상 좋은 중년이 커다란 염소머리 장식을 들고 들어왔다. 염소머리를 보자 불현 듯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난 고개를 돌려 강당 앞쪽에 장식되어있는 오망성을 쳐다봤다. 그리고 난 오망성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을 깨달았다. 오망성은 역으로 뒤집혀져 있었다. 

오망성이 예수의 오상을 상징한다면, 역으로 뒤집힌 오망성은 염소머리, 즉 사탄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내가 일반적인 교회라고 순진하게 믿고 발을 들인 곳은 악마숭배교의 기도회 장소였다. 

모든 짐을 옮긴 남자는 다시 쇠사슬을 칭칭 감아 문을 잠갔다. 굳게 닫힌 저 문은 사람의 출입을 거절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차키도 핸드폰도 모두 근육질 남자의 손에 있다. 

설마 처음부터 의도하고 뺏은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선배는 왜 날 여기에 데려온 거지?
의심과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갔다. 

잠시 후. 근육질의 남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식사시간입니다. 앞으로 나와서 도시락 받아가세요.” 

사람들은 그의 말에 일제히 움직였다. 강당 앞에 놓인 바구니에서 핸드폰을 찾고, 근육질의 남자가 건네는 도시락을 받았다. 
  
나도 사람들의 줄을 따라갔다. 그런데 바구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줄이 지체되자 근육질의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일단 와서 도시락부터 받아!” 

여기 없을 리가 없는데. 분명 선배가 바구니에 핸드폰을 넣었는데. 내가 그렇게 꿈지럭대고 있자 그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일단 나오라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서 도시락을 받으며 말했다. 

“저기, 제 차키는 언제 주실 거예요? 그리고 핸드폰이 없어졌는데….” 
“지금 바쁜 거 안보여? 너 때문에 줄도 밀렸잖아.” 

남자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내 뒤로 열댓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차마 말을 더 꺼내지 못했다. 

이 강당 안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여기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배였는데, 선배는 근육질의 남자와 함께 도시락을 배식하고 있었다. 
  
난 구석에 홀로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도시락의 내용물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맛이 없었는데 내 식욕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학생. 여기 와서 같이 먹어. 왜 구석에 그러고 앉아있어.”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미소 지으며 나를 불렀다. 아까 기도할 때, 나를 쳐다보던 아주머니의 차가운 눈길이 떠오르자 소름이 끼쳤다. 나는 황급히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다 먹었어요.” 

나는 애써 웃어보였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면 분명 얹힐 것 같았다. 근육질의 남자는 배식이 끝났는지 자리에 앉아 선배와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난 타이밍을 노려 남자에게 다가갔다. 

“제 차키 주세요. 핸드폰도 없어졌는데….” 
“아, 거 진짜. 지금 없어. 이따 줄 테니까 저리 가있어.” 
“그럼 어디에 있는데요?” 
“너 오늘 이상하다. 왜 그래?” 

선배가 끼어들었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선배도 내 편은 아니었다. 순간 등 뒤에서 다시 시선이 느껴졌다. 느껴지는 시선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이따 설교만 끝나면 찾아서 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딘가에서 다단계나 이상한 종교단체에 끌려가서 감금당한 채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보 같다며 비웃었는데 그게 내 꼴이 되어있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자 조금 전에 들어왔던 인상 좋은 중년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모두 무대 앞에 앉아 눈을 빛내며 중년을 바라봤다. 나도 사람들 틈에 껴서 그를 지켜봤다. 

선배와 근육질의 남자는 중년의 남자 근처에서 대기하며 서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더니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목사였다. 

기도의 내용은 온통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사탄의 교리부터 시작해서 악마는 실존한다느니 하는 내용들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몇몇 큰 사고들을 언급해가며 그것은 사탄의 힘이라느니, 신은 그것을 막을 힘도 의지도 없다느니 하는 말을 쏟아냈다. 
  
사탄을 믿으면 그런 사고들을 피할 것이요, 믿지 않는다면 사탄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거침없는 말들이었다. 솔직히 난 그게 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알아듣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목사의 말을 경청하며 때때로 웃고, 때때로 박수쳤다.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갈 때 즈음, 근육질의 남자는 검은 빛깔의 성배와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목사에게 건넸다. 목사는 그것을 건네받고는 말했다. 

“오늘 새로 오신 형제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나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내가 마지못해 일어나자 목사가 말했다. 

“형제님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나는 머뭇거렸다. 아니 굳어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묘한 분위기에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목사는 그런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 오신 형제님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 박수쳐 주십시오.” 

짝짝짝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앞에서 서있던 선배도 어느새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얼른 나와.” 

선배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선배는 내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배의 말에 따라 무릎 꿇자 목사는 유리병을 따서 붉은 액체를 나에게 뿌렸다.
  
그러더니 성배에 액체를 가득 채웠다. 역하고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액체는 어떤 동물의 피인 것 같았다. 

목사는 내게 성배를 건네며 빙긋 웃었다. 성배에 가득 찬 피가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성배를 받아들자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몰라 목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선배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마셔.”

선배는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웃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목사는 망설이는 날 보며 말했다.

“조금만 드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는 뒤 이어 어떤 말을 하려고 했을까? 조금만 먹어도 된다는 말에 난 눈을 질끈 감고는 붉은 피로 입술을 적셨다. 
  
입안에 피가 조금 흘러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심하게 구역질이 났다. 난 결국 성배를 내려놨다. 

“우웨엑!” 

헛구역질을 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목사도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형제님.” 
“축하해.” 

근육질의 남자도 이전과는 다른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내 차키가 들려 있었고, 사라졌던 내 핸드폰은 선배의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차키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빌어먹을. 개자식들.’ 

속으로 수없이 욕이 나왔다. 차키와 휴대폰을 받았으니 이제 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의 비릿한 역겨움이 다시 느껴졌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저 화장실 좀 가겠습니다.” 
“그래. 저 뒤쪽인건 알지?” 

난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한참동안 헛구역질을 했다.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것도 없었다. 
  
이제 두통까지 밀려왔다. 난 머리를 붙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문득 화장실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 한명이 빠져나가기는 충분해보였다.
  
화장실의 입구에는 날 계속 감시하던 노인이 서있었다. 빌어먹을. 날 감시하는 것이 노인의 일인가 보다. 하지만 저 노인 혼자 뭘 어쩌겠어? 난 벽을 타고 창문에 매달렸다.

삐익-!

그때 등 뒤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여태 조용하던 노인은 날 노려보며 호루라기를 불고 있었다. 뒤이어 사람들의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근육질의 남자도 있는 모양이었다. 난 허겁지겁 창을 넘어갔다.
  
"도망갔다! 잡아!"
  
나의 도망으로 인해 강당 안은 난리가 난 듯 보였다. 난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내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어느새 강당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나는 잽싸게 차에 올라탔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사람들은 어느 새 코앞까지 다가 와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밟았다. 뒤쫓아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 사이로 선배의 괴성도 섞여 들려왔다.
  
***
  
시간은 제법 빨리 흘러갔다. 난 군대를 전역했고, 지금은 복학해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그때의 일은 어느덧 과거의 기억으로 잊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학교에 복학한 친구 녀석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왜 요즘 교회 안나오냐?”
“무슨 소리야? 나 원래 교회 안다니는데?”
“너 세례까지 받았잖아.”
“뭐?”
  
친구는 잇몸까지 드러나도록 씨익 웃었다.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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