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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도둑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99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틴K
추천 : 9
조회수 : 12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1/01 17: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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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틴과 굿맨은 술친구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직후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술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무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였다.

  술집의 무리는 전쟁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날을 지새우곤 했다. 냉장고 안에 해골를 보관하고 있던 노인이나 무덤에 굴을 파놓고 살던 아이들, 정신병자가 만든 거대한 신흥 종교 같은 기묘한 이야기는 언제나 반응이 좋았다.

  어느 날부터 굿맨은 술집에 나오지 않았다. 마틴은 귀동냥으로 굿맨이 넘어지는 바람에 골반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틴은 수통에 독한 위스키를 가득 넣고선 문병을 갔다.

  야간에는 문병을 할 수 없다는 간호사를 뿌리친 채 마틴은 굿맨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병실은 허름한 6인실이었지만 환자는 굿맨과 노인 둘밖에 없었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밤바람이 들어와서 그런지 썰렁한 기운이 돌았다.

  마틴이 굿맨에게 수통을 내밀며 물었다.

  "몸은 좀 어떤가?"

  굿맨은 수통을 받고선 대답했다.

  "술이겠지?"

  마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굿맨은 수통을 두 손으로 들고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중얼거렸다.

  "여긴 모르핀 주사를 놓으면서 술은 안된다고 하는 곳이야."

  "병원이니까 그렇지."

  "술이나 모르핀이나. 그게 그거지."

  굿맨이 마틴과 떠드는 도중 노인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굿맨은 갑자기 마틴의 멱살을 잡았다.

  "마틴, 자네는 내 친구 맞지? 빨리 대답해."

  마틴은 당황했지만 정확히 대답했다.

  "아픈 사람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술집 사장 아니면 친구뿐이지."

  "좋아, 잘 들어. 저 노인은 매일 밤마다 신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려. 그런데 그 혼잣말이 꽤나 대단해. 잘 들어보고 자네가 좀 도와주웠으면 해."

  "뭘 도와..."

  "조용히 해. 시작한다."

  "애니... 집 뒷편에... 작은 집 뒷마당에... 내 인생을 묻어 놓았어... 나는 지금까지... 그것만을 보며 살았어... 이상하지... 그것은 고통스러운 상처인데... 하지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 아니. 그러지 않을거야..."

  노인은 행복한지 슬픈지 가늠할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정신 나간 노인이군." 마틴이 중얼거렸다.

  "인생의 모든 것이라니. 궁금하지 않아? 돈이라도 묻어 놓았을 거야. 노인들은 은행을 믿지 않잖아."

  "그런데 어디가 집일까."

  "내일 퇴원하면서 간호사한테 물어보지 뭐."

  "간호사가 대답해줄까?"

  "훔쳐보지 뭐."

  굿맨은 대답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다 나은 거야?"

  "의사 입에서 '안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다 나았다는 뜻이야."


  야심한 새벽 굿맨과 마틴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개인 정보자료를 훔쳐 병원을 나섰다.


  "뭐야, 장교잖아." 굿맨이 서류를 훌훌 넘기며 말했다.

  "세계 대전 때 장교로군. 분명 연금을 은이나 금으로 바꿔서 뒷마당에 묻어 놓았을 거야."

  "말 되는군."

  "생각보다 여기서 멀지 않아. 날이 밝기 전에 해치우자."

  "땅을 손으로 팔 생각인가?"

  "자네, 생각보다 멍청하군. 노인이 땅속에 묻은 걸 확인하려면 집에 삽이든 뭐든 있지 않겠나?"

  "말 되는군."

  "빨리 가자. 날이 갈수록 해가 빨리 떠."


  노인의 집은 작고 허름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귀신이 냄새도 나나?"

  "지하실 먼저."

  두 명의 도둑들은 지하실에서 삽이나 농기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뒤적였다.

  "여기 작은 상자가 있는데?" 굿맨이 작은 장사를 달그락거리며 흔들었다.

  마틴은 삽 하나를 굿맨에게 던졌다.

  "우린 집들이 파티하러 온 거 아니야."

  마틴과 굿맨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냄새의 근원이 여기였나 본데."

  "자기 삶이 쓰레기였다는 것을 후회하는 말이었나?"

  그러나 곧 그들은 땅속에서 썩은 살덩어리를 발견했다.

  "돼지고기인 줄 알았는데."

  "아냐, 자세히 봐봐. 뭔가 이상하잖아."

  최근에 버려진 듯한 시체가 한 구 보였다. 그 시체는 다른 살덩어리와 달리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하군. 노인이 살인자였던 건가? 이런 싸구려 소설 같은 결말이 어디 있어." 굿맨이 투덜거렸다.

  "잘 묻고 돌아가자. 너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마틴은 집으로, 굿맨은 작은 상자를 들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굿맨은 병원 침대에 누워 상자를 열어봤다. 그곳에는 푸른색의 알약이 든 유리병과 편지 하나가 있었다. 굿맨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


내년까지 이 편지를 읽지 말 것.


아내, 애니에게


  당신이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오. 나는 이미 알약을 먹고 죽었을 테니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라지. 나는 당신에게 해온 그동안의 많은 거짓말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공개하기로 결심하였소.

  나는 아직도 처음의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소. 나는 지난 수년간 전쟁 포로들이 단체로 묻힌 무덤을 뒤져왔소. 무덤은 우연히 내 집 뒤편에서 발견했소. 내 집이 워낙 구석진 곳에 있는지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오.

  처음에는 썩은 악취가 풍기길래 누군가 죽은 고양이나 개를 묻었나 생각했고 나는 집까지 냄새가 들이닥칠 것을 염려해서 땅을 팠던 것이지. 상태는 심각했소. 아수라장이었지. 남자건 여자건 젊건 늙었던 적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죽었던 그들은 썩어서 하나의 살덩어리를 이루고 있었소. 살덩어리는 아가리를 벌리지 않은 조개처럼 진주를 품고 있었지.

  그게 바로 당신이 내 연금을 독차지하고서도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요. 나는 그들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고 금니를 빼서 금은방에 팔았소. 그러다가 나는 당신의 얼굴이 담긴 목걸이를 발견했소. 당신이 말했던, 실종된 당신의 부모 말이요, 애니.

  당신의 부모님이 그 살덩어리 어딘가에 묻혀 있었던 것 같소. 물론 누가 당신의 부모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소. 이미 얼굴 없는 살덩어리가 되었으니까 말이오. 이 사실을 바로 당신에게 말했어야 했지만 나는 연금을 보내주지 않는 당신이 미웠소.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대신 당신의 부모의 것일지도 모르는 금니와 기름을 팔았소. 후회는 하지 않소.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니까.

  그런데 내가 죽은 후에 연금이 끊기게 되면 무엇으로 먹고 살 생각이었소? 그래서 가슴 따뜻한 당신의 남편은 이렇게 편지를 적는 것이오. 당신은 내 외로운 집 뒤편에 있는 유대인 무덤에 가서 금니와 기름을 팔아서 먹고살도록 하시오. 당신의 부모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행복하길.

당신의 친절한 남편.


*


  굿맨은 고개를 들어 창가에 누운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어젯밤과 같은 자세였다. 그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굿맨은 천천히 일어나 항상 그의 머리 아래에 있던 베개를 그의 머리 위에 둔 채 세게 눌렀다. 노인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그렇게 노인은 죽었다.

  세상은 고요했다. 창가 너머로 햇빛이 비치고 새가 명랑하게 지저귀었다. 이상한 평화가 감돌았다.


  굿맨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마틴에게 편지를 주며 노인을 죽였노라 실토했다.

  "나는 좋은 일을 한 건가, 마틴?"

  마틴은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거지? 말해봐."

  "..."

  마틴은 이상한 기분을 뱉어내려는 듯 침을 뱉고선 수통을 열어 술을 들이켰다.

  "제길, 소독이 안돼."

  둘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돌았다. 마틴은 담배를 물고선 굿맨에게 수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굿맨은 수통을 밀어내며 말했다.

  "술집에서 이야깃거리로 쓸 건가?"

  "아니."

  굿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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