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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게시물ID : panic_998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녘
추천 : 7
조회수 : 168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2/21 12:17:03

. 글재주가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어쨌든 꽤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끝나면 냇가에서 헤엄도 치고 풀피리도 불고... 좀 이상한가?

다리 밑에서 담배도 피워보고 (물론 그때부터 계속 피워온 건 아닙니다)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게 중요한데 엄청 오래전이라 기억이 뚜렷한 건 아니지만

당시 친구들끼리 삘 꽂혀서 매일 저수지에 갔었습니다

더럽기도 더러웠을 거예요. 들어가서 잠수하면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참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죽을 뻔했습니다.

이게 분명 발이 닿았던 곳이었는데 조금만 옆으로 가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하여튼 그때 기절했습니다.

기절해본 적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냥 필름이 끊기는 거죠. 수면 마취랑 비슷합니다

갑자기 발이 안 닿고 허우적거리다가 빠져서 물속에서 흙탕물을 보다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눈도 떠지고 숨 쉬는 것도 별문제 없었습니다

아니 숨이 쉬어졌다기보단 그냥 몽롱했달까.

그렇게 물속에서 엎드려 떠 있는데 천천히 깊은 곳에서 해골이 떠올랐습니다

한 오십 센티쯤 남겨두고 절 마주 볼 때까지.

그러더니 해골 입속 먼 곳에서 점처럼 보이는 뭔가가 천천히 나오는 겁니다. 나비였습니다.

나비가 눈앞에서 좀 날아다니다가 다시 해골 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땅에 누운 채로 눈을 떴습니다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보듯 사람들 여러 얼굴이 절 내려다보고 있더라구요

어디서 나타난 건지 마을 어른들도 있고 제 친형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어른들을 불러 절 구한 거였습니다

정말 죽을 뻔한 거죠. 기절했을 때 본 건 뭔지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한두 명 정도 친구에게 말했는데, 그 나비가 해골 눈으로 안 들어갔으면 너 죽은 거 아냐? 하더군요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턴 아무에게도 말 안 한 건대요. 저 사실 아직도 나비 봅니다

무슨 나비일까 인터넷에 찾아본 적도 있는데 호랑나비와 비슷한 것도 아닌 것도 같았습니다

노란 바탕에 검정이랑 파랑 무늬도 섞였는데 하긴실제 있는 것도 이상하겠네요. 


다시 그 나비를 본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사투리도 안 쓰게 됐고, 죄송합니다. 딴 길로 샐 뻔했네요.


2 때였고 아주 평범한 여름날이었습니다. 특이한 게 있다면 진짜 더웠네요.

학교 끝나고, 학교 출구 말고 운동장 스탠드? 라고 하는 게 맞나. 거기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었습니다.

어떤 모르는 남자애가 오더니, 몇 학년이세요? 했습니다.


동갑이었고 그 남자애 용건은 제 신발을 사고 싶다는 겁니다.

전 컨버스와 비슷한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브랜드는 나이키였습니다.

그 남자애는 신발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했고, 제가 신고 있는 걸 찾았었나 보더라구요

이미 제법 신은 신발인데도 제가 샀을 때보다 높은 가격을 말하며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거 주면 신을 게 없다 말했더니, 그럼 자기 집에서 마음에 드는 거 고르면 얹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전 그래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냥 더 싫더라구요.


근데 그 애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애 주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녔습니다.

전 별생각 없었습니다. 흔한 건 아니지만 교실에 들어온 적도 있고. 가끔은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뒤 그 애가 죽었습니다.


수업 전 자율학습 시간부터 반 애들 전체가 뭔가로 쑤군덕거려서 물어보니, 몇 반의 누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때까지도 별생각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사건에 충격받아 놀라고, 누굴까 내가 아는 애일까

정말 미안하지만 아는 애가 아니었으면 하는 정도였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다 그 얘기뿐이었습니다. 4교시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들어왔는데,  

내가 아는 건 다 말해줄 테니 이 시간 이후로 아무도 거론하지 말라며 사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자애는 음... 학교 끝나고 밖에서 놀다가 다른 또래와 시비 붙었는데 싸우다 살해당했습니다

칼로 그런 건데 상대가 칼을 들고 다녔던 건 아니고, 죄송합니다. 더 말씀드리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그 아이가 제게 신발을 사겠다고 한 아이와 같은 사람이란 것을 안 것은 며칠 지나고서였습니다.


이건 상관있는 얘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말하고 싶은 게, 그 아이가 떠나고 반 아이들이 시끄러웠던 날

선생님이 사건 설명해주실 때, 아이들은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서로 웃기고 있었습니다.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전 지금도 그 떠난 아이와 나비보다, 그때 반 아이들의 농담과 웃는 표정이 훨씬 무섭고 소름 끼칩니다

다 평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직장생활하고 있을 테고 대부분 누군가의 부모가 됐을 겁니다.


저도 너무 가볍게 말한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 아이가 좋은 곳에서 지내길 바라며 앞으로도 생각하겠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 나비를 봤습니다. 그냥 전철에서 졸고 있는 여자분의 가방에 앉았다가 주위를 날기도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던 거래처 사람 머리에 앉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조금밖에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에게 나타난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정해진 기한이나 사건의 종류라거나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꽤 많은 나비를 봤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면 그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것을 묻기도 하고 정성껏 대화를 나누고 자세히 얘기를 듣습니다.


"요즘 무슨 재미로 지내세요? 

술 자제하세요. 

운전 조심하세요. 

몸 안 좋아 보이는데, 병원 한 번 가 보시는 건 어때요? 

돈 말고 혹시 꿈같은 거 있어요?"

 

종교는 없지만 그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기도 하고 저도 새롭게 마음을 다지기도 합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는데, 제 곁에 있는 사람도 나비를 갖고 있습니다

몰랐던 사이였을 때부터 보였습니다. 알고 만났구요

이 사람과 만난 계기가 나비와 관련된 것은 아녔습니다. 솔직히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네요

직장 동료였는데 관계가 깊어질 줄 몰랐습니다. 

제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싶진 않았는데 모르겠네요. 상관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 이 사람을 만난 것도 이 사람 곁에 나비를 본 것도 이 년이 됐습니다. 이제 삼 년째네요.

가까운 사람에게 나비가 보인 것도 처음이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오래 지닌 걸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가까워진 일이나 만나는 동안 있었던 일은 쓰지 않겠습니다. 

참 그런 게 이런 상황에도 싸우고 미지근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같이 살고 있는데 서로 직장생활도 하고 가끔 따로 외출도 합니다. 신기하죠? 저도 신기하네요.

그래도 자신 있게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더 바라보고 귀 기울이고 웃고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날짜를 정한 건 아니지만 결혼할 생각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면, 그동안 나비와 관계없이 떠난 사람도 많았습니다.

결국 이게 다 무슨 상관이냐 싶네요.

감각이나 감정이나 순간을 딱, 느끼고 지내야지 이런 생각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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