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얪충들과 여시충을 비웃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여성관
게시물ID : phil_120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칼세이건
추천 : 0
조회수 : 273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7/26 10:48:42

- 니체가 보는 세 부류의 여성

니체가 여성혐오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게 된 계기는 비교적 명확하다. 여자는 봉사하며 행복을 느낀다느니, 학구적 성향의 여성들은 성적 결함이 있다느니! 그가 남긴 어록들로도 충분하다. 그의 험담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니체가 생각한 세 부류의 여성, 거세된 여성과 거세하는 여성, 거세와 무관한 여성이다. 이 세 여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니체가 말하는 진짜 여성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니체가 본 첫 번째 여성: 여성을 누가 타락시켰는가

니체가 본 첫 번째 여성은 남성이 그려낸 이미지다. 그는 『즐거운 지식』에서 “남자들이야말로 여자를 타락시켰다. 남자들이 이미지를 만들었고 여자의 이미지도 거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남성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내면화가 문제라고 했다. 니체는 여성의 이미지가 남자들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미지이고, 권력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며 여성은 그 이미지를 연기한다고 했다. 내면화된 여성 즉, 남자들이 생각한 이미지를 연기하다가 내면화되어버린 여성이다.

이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긍정적인 여성은 이미지를 전략으로 쓰지만, 부정적인 여성은 상상한 장소에 있으려고 한다. 니체는 이런 여성을 거세된 여성이라고 부른다. 거세된 여성은 연기하다가 자기 것이 되어버린 여성이다. 결핍으로 정의된 여성, 남근적인 사회 속에서 갖지 못한 존재로서의 여성, 뒤집혀있는 존재로서의 그것은 거세된 여성이었고 니체는 그것을 혐오했다.


- 니체가 본 두 번째 여성: 남성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

니체가 본 두 번째 여성은 남성들이 상상한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이다. 그들은 진정한 여성을 찾아 스스로 여성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니체는 그 예로 페미니스트를 든다. 이것은 남성을 연기하는 것이라고 보고, 남성 같은 여성이라고 비판한다.

이미지에 갇힌 것도 문제지만 독단적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문제다. 그것은 남성적인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성해방운동, 평등에 대한 권리와 요구의 문제점은 자신이 비판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어리석음, 독단적 이미지를 답습한다는 것에 있다. 영민한 여성이라면 분명히 본래 있던 남성들의 잣대를 부끄러워했을 텐데 이 여성들은 이것을 승리인양 취해버렸다는 것이다.


- 니체가 본 세 번째 여성: 삶과 구원을 낳는 역활

니체가 본 세 번째 여성은 거세와 무관한 여성이다. 니체는 세 번째 여성을 사랑했다. 여성의 생식기는 항상 거세와 관계되어 왔다. 남근이 상실된 마이너스 남근, 결핍 결여로써 해석되어 왔다. 거세는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생산이고 그것은 대지이다. 니체 메모 중 ‘무엇이 내 삶을 유지시키는가.’라는 대목이 있는데, 거기에 니체는 임신이라고 써 놨다. 차라투스트라를 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구토가 무엇을 의미하는 바에 대한 해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입덧을 했다. 임신을 한 것이다. 입덧이 심해질수록 아기를 낳는 것으로 나아간다. 위버멘시에 가까이 갈수록 새로운 것이 잉태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시를 원하는 아버지이고, 위버멘시인 자신이며, 자기 안에서 위버멘시를 낳은 자이다. 네가 너의 미래를 임신하고 있느냐라는 말은 너는 자궁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말이다.



요약

첫번째 여성관 : 얪충의 여성관

두번째 여성관 : 여시충(꼴페미)들의 여성관

세번째 여성관 : 정신적으로 성숙한 남녀들의 여성관.(오유의 여성관???)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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