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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다수를 구하기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게시물ID : phil_127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ung.K
추천 : 1
조회수 : 149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11/23 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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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자신의 생명에 대한 선택.

A. 한 사람만 살 수 있는 무인도에 두 사람이 표류해 들어왔다.
누군가 한 명이 죽지 않으면 둘 다 죽는 상황. 하지만 이런 경우 답은 뻔하다. 양 쪽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력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타인의 생명보다 우선시된다. 결국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살아남는다. 여태껏 수 많은 역사에서 그래왔듯이.

B. 열 사람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에 열 한 사람이 타고 있다.
보트에서 내리면 반드시 죽으며, 누군가가 보트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트는 가라앉는다. 이 것 역시 답은 뻔하다. 사람들은 보트에서 던져버릴 한 사람을 고르기 위해 합의한다. 사실 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1-A 항목에서 보았듯, 구명보트 위의 11명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10명 중 한 명을 보트에서 던져버리려 시도할 권리가 있으며, 던져지는 것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합의의 방식이다.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일 경우, 한 명을 던지기 위한 10명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제비뽑기 같은 운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의 자격이 동등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가장 악한 사람을 찾는다.
도덕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가장 나중에 보트에 오른 사람을 특정할 수 있을 경우, 선택은 쉽다. 먼저 탄 10명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가장 나중에 탄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가장 나중에 탄 사람은 던져진다.
배를 난파시킨, 즉, 현 상황이 원인이 되는 사람이 함께 타고 있을 경우에도 선택은 간단하다. 가장 나쁜 사람, 문제의 원흉을 던져버리면 된다.
살인자? 던진다.
도둑놈? 던진다.
살인자도 도둑놈도 없어? 그러면 가장 무례해 보이는 사람을 찾는다. 던져지는 입장으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죄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보트 위의 모두는 각자 1/11만큼 보트가 가라앉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어떤 구실로든 가장 미움받은 한 명이 보트가 가라앉는 것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던져진다.
그리고 남은 10명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갖가지 언어로 포장한다. 이것이 도덕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것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가장 비도덕적이어서 던져져야 할 사람이 살아남고,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져 10명을 구한다.

인류는, 그들의 역사 내내 이것과 같은 짓을 반복해 오고 있다.
지구라는 배에 타고 있는 우리는 재해의 원흉을 찾아 죽이고, 살인자를 찾아 죽이고, 범죄자를 찾아 사회에서 집어던진다. 재해가 발생하고, 살인자가 성장하고, 범죄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자신들이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믿는다.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한 자들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그들을 비난하고 우리의 공동체에서 던져버리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이득이 되는 일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밥그릇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굶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서 눈을 돌린다. 보트에 오르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는 잘못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먼저 보트에 오른 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위해 그렇지 못한 자들을 보트에서 걷어 찰 권리가 있다. 물론 과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어느 정도가 과한 것인지 판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타인의 생명에 대한 선택.

A. 두 사람이 독사에 물려 의사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의사가 가진 혈청은 1인분밖에 없다.
두 명은 모두 의식불명. 당장 혈청 주사를 놓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이 경우, 의사는 누굴 구하든 상관 없다. 누군가를 죽일 권리는 없지만, 누군가를 구할 자유는 있다. 물론 그가 의사라면, 그것이 직업적 의무이기도 하다.


B. 두 대의 배가 동시에 침몰했다. 한 쪽에는 10명의 사람이 타고 있고, 다른 쪽에는 5명이 타고 있다. 구조에 동원할 수 있는 배는 단 한 대 뿐이고 양 쪽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일단 5명의 사람은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5명의 사람을 더 구할 수 있다. 따라서 항상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정답이다.


C.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가 다섯 명의 선로 작업자를 치어죽일 위기다. 하지만 옆의 선로엔 한 명의 작업자만 있다.
당신은 선로를 바꿔서 전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면 다섯 명이 사는 대신 한 명이 죽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책임자라면, 피해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D. 화물기차의 사각에 다섯 명의 사람이 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당신은 앞 차를 선로 위로 밀어넣어서 기차를 멈출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앞에 타고 있던 운전수는 죽을 것이다. (사각에 있는 다섯 명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가정한다)
당신은 책임자가 아니라, 관계 없는 타인일 뿐이다. 우리에겐 누군가를 구할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죽일 권리가 없다. 만약 당신이 앞 차를 밀어서 다섯 명을 구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권한이 필요하며, 그것은 사전에 공동체 모두가 자신의 생존권을 근거로 동의한 사항이어야 한다. 2-C 항목의 책임자가 그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월권이다.
결국, 당신은 사각의 다섯 명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3. 위험에 대한 선택.

무인도는 몇 사람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며, 보트의 정원은 알 수 없고, 독사에 물린 것은 아이라 절반의 혈청을 주사해도 괜찮을 수 있고, 구조에 쓸 수 있는 배는 두 대지만, 기름이 없어서 두 대 모두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는 경적을 울려 다섯 명의 작업자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경고를 할 수 있으며(누구 한 명이라도 경고를 눈치채면 모두 살아남는다는 가정 하에), 건널목의 차는 절반만 밀어넣어도 화물차가 멈출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부대 지휘관인 당신이 놔준 민간인은 적 게릴라에게 아군의 위치를 알려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인도의 두 사람이 굶어죽고, 보트는 가라앉고, 독사에 물린 아이들은 죽고, 구조선은 모두 도착하지 못했으며, 다섯 명의 작업자중 아무도 경고를 듣지 못했고, 절반만 밀어넣은 차는 저지력이 부족해 운전자와 사각지대의 5명 모두가 죽었고, 당신이 놔준 민간인은 부대의 위치를 적 게릴라에게 밀고하여 당신의 부하들 중 세 명이 죽었다.

하지만, 멀쩡한 타인을 위험에 빠트릴 권한이 없는 2-D의 경우를 제외하면,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혼자 살아남은 자보다, 함께 살아남은 자들이 생존경쟁에서 승리했고, 그것이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존 체계의 중심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가능한한 넓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함께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강하면 강할 수록 각자가 각자가 생존을 위해 확보해야 할 공간의 크기는 보다 작아진다.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 위와 같은 상황을 예방하는 것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쉬워진다.
지구라는 보트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다.


4. 결론.

다수를 구하기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하다. 단, 그것을 미리 합의했거나,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일 경우에만.
그러나 함께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다수는 소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위험이 그들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약속은 보다 큰 집단의 생존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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