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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anatman) -> 자비심 논증
게시물ID : phil_12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hil
추천 : 8
조회수 : 63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12/07 13: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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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나와 남이 같음을
먼저 애써 수습修習해야 한다.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바라지 않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나와 같이 보호해야 한다.

91. [몸에] 손발 등 여러 부분이 있지만
온전히 보호해야 할 하나의 몸인 것처럼
세상의 고락 안에 다른 중생이 있지만
모두가 나와 같이 행복을 원하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92. 설사 내가 겪는 고통이
타인의 몸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해도
나의 모든 고통은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며, 참을 수가 없으리라.

93. 이와 같이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 나의 모든 고통은
나에 대한 집착이기에 참을 수가 없으리라.

94. 나는 남의 고통을 없애야 한다.
고통이기 때문에 나의 고苦와 같다.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중생이기 때문에 나의 몸과 같다.

95. 항상 나와 남, 둘 다
행복을 원하는 것은 똑같으니
‘나’와 [타인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어째서 나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가?

96. 항상 나와 남, 둘 다
고통을 원하지 않는 것은 똑같으니
‘나’와 [타인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어째서 남은 제쳐두고 ‘나’만 지키려 하는가?

97. 만일 한 중생이 고통스러워하는 데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에 [그를] 보살피지 않는다면
미래에 내가 받을 고통도 또한
[지금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인데 어찌 이를 지키려 하는가?

98. [이 생의] 내가 ‘다음 생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망상은 전도된 견해이다.
이와 같이 죽은 것도 다른 것이고
태어나는 것 또한 다른 것이다.

99. 어떠한 고苦라도
그 ‘고’는 자신이 막아야 한다.
발의 고통은 손의 고통이 아닌데
어찌 발의 고통을 손이 막아야 하는가?

100. ‘비록 분별이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아집에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타에게 불합리한 그 어떤 것이라면
모든 힘을 다하여 배제해야 한다.

101. 상속相續과 집합체集合體는
염주나 군대처럼 [실체가 없이] 허망한 것이다.
이처럼 고苦는 실체가 없다.
그러면 누가 이것을 지배하는가?

102. 일체의 고苦는 상속자가 없고
모두 [너와 나의 고통이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기 때문에 없애야 하는 것이라면
여기서 분명하게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103. ‘왜 모든 고苦는 없애야만 하는가’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모든 중생의 고통은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104. ‘자비에 고苦가 많이 따른다면
어떻게 애써 자비심을 일으키겠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생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자비의 고苦가 더 많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05. 만일 한 가지의 고苦로
많은 고苦를 없앨 수 있다면
사랑스러운 이 고통이
나와 남에게 생기도록 해야 한다.

106. 그래서 선화월善花月 보살은
임금의 형벌을 알면서도
자신의 고苦를 없애지 않고
많은 사람의 고苦를 없애려고 한다.

107. 이와 같이 상속相續을 관觀함에 익숙해지면
타인의 고苦를 없애는 것을 좋아하므로
연꽃 호수에 백조가 내려앉듯이
무간 지옥까지도 들어가게 된다.

108. 중생이 해탈하면
무한한 기쁨의 바다와 같이
그 자체로 최고가 아니겠는가?
[나 혼자만의] 해탈을 원해 무엇을 하겠는가?

109. 그러나 남을 위해 일을 한다 할지라도
교만에 빠지거나 자신을 놀라운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남을 위하는 기쁨 하나로
이숙과異熟果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110. 그러므로 불쾌한 조그만 일에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똑같이
남을 보호하는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함께] 행하여야 한다.

111. [항상 함께 하는] 습관으로
다른 이의 정혈精血의 방울(滴)에
실체는 없지만
‘나’라고 의식하고 있다.

112.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몸은
어찌하여 ‘나’라고 보지 않는가?
나의 몸을 타인으로 놓고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13. 나 자신에게는 흠이 있고
타인은 바다와 같은 공덕이 있음을 알았으니
아집을 완전히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수습修習을 해야 한다.

114. 손ㆍ발 등을
몸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듯이
이와 같이 몸을 가진 것들을
어찌하여 중생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115. 무아無我의 이 몸에 익숙해져
‘나의 것我所’ 이라는 마음이 생기듯이
이처럼 다른 중생에게도 익숙해진다면
‘나의 것我所’ 이라는 마음이 왜 생기지 않겠는가?

116. 이와 같이 남의 이익을 위해 행한다면
놀라움도 교만도 생기지 않는다.
나 자신을 먹이는 것으로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117. 그러므로 불쾌한 조그만 일이라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똑같이
타인에게도 자비심과 돌보는 마음으로
행하도록 수습修習해야 한다.

118. 그러기에 구원자 관세음보살은
대자비심으로 중생의 윤회에서 생기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당신의 이름에도 가피를 내렸다.

119. 어려움 앞에서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익숙해진 힘에 의해
처음에는 타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웠지만
[나중에는] 그가 없으면 즐거움도 없어진다.

120. 누군가 나와 남을
속히 제도하기를 원한다면
‘나와 남을 바꾸기’를 행하는
거룩한 비밀을 수행해야 한다.
출처 Śāntideva (적천 寂天)의 Bodhicaryāvatāra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제8장, 선정품(禪定品) 90-120

본문 출처:
http://inyeon.org/zero/zboard.php?id=sutra11&page=1&sn1=&divpage=1&category=12&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7
샨티데바著. 청전譯 . 하얀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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