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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농인(聾人)에 관한 소견
게시물ID : phil_152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캐이아스
추천 : 1
조회수 : 59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3/12 04:12:40
남여로 나뉘어 대립이 나는 이유는 선천적으로 생성된 폭력적인 유.불리의 차이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타고나는 물리적 힘과 성향의 차이이며, 그로부터 비롯하는 현상과 
그에 따른 두려움.공포 등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이것을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 
때문이라고 본다면 저는 그에 관해 지식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조소를 금할 길이 없
네요. 지식인들은 쓸모없는 분류에 참 유능한 듯 합니다. 해결책의 제시나 흐름의 방향은 
유도하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늘려쓰고 퍼나르고 선진국과 비교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식으
로, 그렇게 원인 제기만 하고 정작 대중들이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치열함을 보일 때에
는 또 그 방식은 실패했다며 비웃는 수작은 참 치사하기 짝이없네요. 예를 들면 농인들의 
언어를 이해하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말할 줄은 모르고, 단지 그들이 선천적
인 언어상의 약자이니 청인들이 수화를 배워야 한다는 격입니다.

그런 자들이 대책없는 원인제기에만 몰두하여 여성들의 두려움만 더욱 심화시키니 당연히 
그들(메갈 등)끼리 모이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현상은 일어나는 것이고, 그들은 
그동안의 부당함의 보복으로 선천적인 남성의 폭력성을 상회하는 더욱 자극적인 두려움을 
일으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죠. 실패가 아니라 당연한 흐름입니다 과정이고, 다만 그러
한 방식은 역풍에 휩쓸려 점차적으로 사라질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성이나 
여성이 스스로 성별을 정하여 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자로 나거나 여자로 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그 차이를 메우려 계속 폭력성을 중
시한다면 그들이 할수 있는 것은 결국 과학의 도움을 얻어 신체개조를 하는 일일 뿐일 것입
니다.

대립이 일고 쟁이 일어나면 폭력성 또한 동반 됩니다. 그러나 확언하건데 폭력으로 해결
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단지 해결된 듯이 보일 뿐입니다. 때문에 대립에 있어서 마음으로 
승복시키는 것이 상책, 무력으로 승복시키는 것은 하책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남여 중 어느쪽에 유리한 것일까요. 마음으로부터의 승복에 유리한것은 남
성성인가요 여성성인가요.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그로부터 배워야 할 이유로 
충분할 만한 것은 아닙니까, 또한 쟁이 종식되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의 미래로 거듭 발전
하기에도 더욱 필요한 것이 여성성은 아닐까요. 잘 생각해보면 이유야 이러할뿐인 것이겠
습니까마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확대는 그래야 할만한 이유와 동반 설명이 되어야 한
다고 봅니다. 남성의 해방이 곧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과 같은 말은 체행할 수 없음에도 불
하고 그래야 한다는 불가의 무아나 중도사상을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효성도 별로 없는 말일 것입니다.



생각난 김에 농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 하고 싶어 지네요. 농인이 아닌 사람에 대하여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청인이라 합니다. 후천적으로 귀에 문제가 생겨 듣기 힘들어진 청
각장애인을 난청인이라 하구요. 농인을 보통 농아(聾啞)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언어장애
가 없더라도 듣지를 못하니 말하는 것도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2016년 통계청 기준으로 청
각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25만명쯤 입니다. 이중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이 몇인지 정확
한 통계는 없지만 1급에서 3급정도가 수화를 사용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분도 계시고, 잔존
청력에 의존해 말을 하는 사람이 70% 정도 된다는 분도 있고 하니 청인중 수화가능 인구 
파를 더하여 7-8만쯤 되지않을까 개인적 추정을 해 봅니다. 

농인의 소통의 언어는 둘로 분류 할 수 있으며 이를 수화와 구화라 합니다. 구화는 수화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농인과 청인들의 소통을 위해 농인이 청인의 입모양과 표정을 보고 독
화(讀話)하고 청인과 마찬가지로 발화(發話)하며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청인을 
위해서만 필요한 방식입니다. 반면에 수화는 농인들간에 주로 사용되는 언어이구요. 보통 
청인가정의 아이로 난 농아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구화의 방식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합
니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일이 적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농아 아이는 음성언어에 대한 분별이 거이 불가능 할 텐
데 시각으로 청각을 대체하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그래서 구화법부터 배운 농아 아이는 나중에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물론 청인의 도움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게 구화법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비유해보면 선
천적맹인이 문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능숙해져야 한다는 것인데...보이는게 뭔지 인
식도 할 수도 없는데... 거의 뭐 초능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이중언어(국
어나 영어 등) 정도를 배우는게 아니라 인식조차 힘든 외계어를 익히는 수준이라 생각합니
다. 그래서 수화와 구화에 모두 능통한 농인 분들에게는 경외지심까지 느낍니다. 그런분들
은 말 현자급의 엄청난 철학자이기도 한 거죠. 닿을 수 없는 세상에 닿아 있는 거니까요

한국수화언어법이란 법률로써 수화가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
진 농인 고유의 언어로 제정된게 얼마 안됩니다.(2016 2.3일 제정, 8.4일 시행) 그러나 수
어문자는 아직 따로 사용하진 않고 한글을 공용하는 걸로 압니다만, 저는 이것도 한국어로 
말을 하면서 문자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 같이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언어
(수화)에 적합한 글자가 필요하긴 한데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그것까지 따로하면 농인과 청
인은 너무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하기도 해요. 전에 인터넷 어디서 본건지 기억은 잘 안나지
만 수화를 할 줄 아는 선교사님이 외국으로 선교를 하러 갔다가 통역이 안되는 상황에서 그
나라 수화를 하는 사람을 만나 2시간 만에 수화로 어느정도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글을 본적
이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구술언어가 약 6000~7000 가지이고 그 만큼의 수화도 있다 합니
다. 저는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구술언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바디랭기쥐의 축약발전인 
수화에 비하면 다국가적 소통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요. 음성언어가 편리하여 그렇게 발
전해 온걸까요 아니면 소통성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음성언어에 내포되 있는 것일까요.

시각언어인 수어는 음성언어와는 다릅니다. 구술언어가 가진 순서적인 발화가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이루어 집니다. 어휘가 제대로 발전된 수화는 구술언어로 가능
한 모든 것이 표현가능한 걸로 압니다. 때문에 시각에 대한 이해가 더 높을 수 밖에 없는 농
인들에게 수화는 그들의 우수함을 설명할 수 있으며,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완벽한 언어
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그들의 우수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각에 특화된 그들 
의 집약체로써의 시각언어인 수화를 배워보고 감각 각개의 전혀 다른 세상의 차이로부터 
존재하는 비밀을 풀어내어, 현재에는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의 감각 해방의 열쇠를 찾
보는 것은 어떻하십니까. 비록 농인들이 사용하는 구화법도 소리의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이
는 되지 못하고 청인의 도움없이는 안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보고 역
로 그에 관한 세상에 다가가 봄으로써 새로운 감각 해방의 가성에 대한 열쇠는 좀 찾아볼 
만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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