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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와 김민희 스캔들에 대한 짧은 생각
게시물ID : phil_152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운디스트
추천 : 0
조회수 : 818회
댓글수 : 72개
등록시간 : 2017/03/20 18:58:09

인간의 사랑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고 억지로라도 암기해놔야 세상은 그럭저럭 굴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남녀의 사랑도 마냥 아름답기만 할까?

나에게 신념따윈 없다. 나는 숫자에 따라 이리 저리 휘둘리는 줏대없는 놈이다. 나는 항상 수적으로 열세인 편만 따라 다닌다.

홍상수와 김민희를 비난하는 여론이 대다수였기에 나는 그들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었다. (애초에 남들의 애정지사 따위엔 관심도 별로 없지만 굳이 입장을 밝히라면) 물론 현재 그런 판도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일부 특정영역에 있는 사람들에게선 오히려 이들의 연애가 매우 용기있고 낭만적인 사랑이라며 적극 지지를 받고 있는듯 하다. 소위 배웠다는 모던보이 모던걸의 대다수 생각은 이런듯 싶다. 이들에겐 인간의 ‘숭고한 사랑'을, 지배권력이 만들어 놓은 가부장제와 일부일처제의 틀로 재단하려는 행위 자체가 너무 촌스럽고 비겁하다고 느껴지나 보다. 이들의 꼴같잖은 오만과 위선에 역겨움을 느껴 나는 다시 개돼지들의 편에 서기로 했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혹은 남성연대를 외치는 자들이 섹스경쟁에서 도태된 인간들 혹은 조만간 도태될 법한 인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듯, 이들의 사랑에 도덕의 틀을 갖다대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안타까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는 인간의 그 어떤 욕망보다도 강렬하니까. 하지만 그들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는 개돼지들의 비난이 그들의 원초적 감성에서 연유되었듯이 홍상수와 김민희의 사랑 역시 우리가 마냥 숭고'해야'하고 아름다워야'할’ 이유는 없다. 과연 홍상수와 김민희는 시대의 통념과 터부를 극복해내고, 지배이데올로기에 용감하게 맞서 싸워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낸 21세기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일까?
라고 하기에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
그것은 그들이 소위 '예술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기에 더욱 진부하다. 
라캉의 말이 떠오른다. 순수한 성관계 따위가 없듯이 애초에 우리같은 개돼지들에겐 사랑따위도 없다. 우리 둘만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의 관계엔 여러 사회적 조건과 명령으로 대타자란 놈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사랑에 개입한 대타자도 너무나 볼품없이 초라하다. 자고로 예술가라면 이런 진부한 대타자의 명령따위에는 과감히 '거스르는’ 용기와 낭만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물론 이건 당위는 아니다. 예술가라는 언어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촌스러운거니까. 어쩌면 홍상수는 자신의 예술코드 즉, 진부함, 찌질함, 일상, 고리타분 따위를 김민희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내는 것 같다.
맞다. 예술이 뭐 별건가. 그냥 젊고 이쁜 여자 좋아하는 우리의 이 찌질함, 뭔가 그럴싸한 아우라를 풍기며 세계적 명성도 지닌 능력남에게 끌리는 진부한 이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홍상수는 '솔직함'에 매력이 있는 것이지 어떤 '새로움'의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였으니까. 물론 이중적인 한국사회에선 그 정도의 솔직함으로도 충분히 '신선'하긴 했지만.
그런 솔직함도 나쁘진 않지만 이젠 그것보단 더 신선한 '또라이'가 보고 싶다.
돈 많고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실력있고 유명한 노감독과 젊고 이쁜 유명 여배우 사이의 바람보다는, 가진 것 하나없는 서울역 노씨와 못나고 뚱뚱한 가난한 과부사이에 일어나는 '말도 안되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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