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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맹목적인 기계죠. 개념과 추상을 먹고 사는...
게시물ID : phil_152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틸하트9
추천 : 1
조회수 : 37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4/06 11:08:50

기향님이 아래 글에서 언급하신, 시간의 힘(인간을 비롯하여 세상 모든 것을 결국엔 쓰러뜨리고 사라지게 만드는?)에 대한 언급을 읽고 문득 생각나서 글을 써 봤는데 너무 길어진 듯 하여 아예 글을 하나 새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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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확실히 대상을 추상화, 개념화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신, 시간, 삼라만상의 우주, 어머니 지구, 번개나 천둥을 관장하는 어떤 미지의 강력한 존재...
제가 보기엔 모두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 심리의 저변엔 '공포'가 깔려 있습니다.
미지의, 강력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확실성을 가진 뭔가들에 대한 두려움이죠.

많은 신비주의자와 선승들이 '마음은 시간이며 두려움이고, 따라서 번뇌 그 자체다'라고 합니다.
마음은, 처음부터 인간이라는 생물의 자기 보호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위험을 인지하고 회피하기 위한 연산 과정이 '마음'이라면 하찮은 벌레도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벌레들은 인간처럼 크고 무겁고 비용이 많은 두뇌를 진화시키는 대신, 극히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작고 가벼운 뇌와 함께 그만큼 소형 경량화된 몸집으로 환경에 적응했고, 이것은 인간이 택한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는 수백배 더 효율적인 것이었습니다.
중생대부터 존재했다는 바퀴벌레*의 역사와 신생대 말기의 말기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의 역사의 길이만 비교해 봐도  잘 알 수 있죠.

(* 바퀴벌레는 로켓을 만들 수 없다. 이런 얘긴 그닥 의미 없습니다. 생물과 유전자의 세계에선 오래, 많이 살아남아 번성하는 게 장땡이고 승리 조건이니까요...즉, 제아무리 우주로 나가고 어쩌고 해봤자 출현한 지 수십만년도 안돼서 핵전쟁으로 소멸하거나 했다간 바퀴벌레만도 못하단 소리 듣는 게 이 바닥?입니다. 물론 이 바닥의 대마왕은 대기 중의 산소를 질소로 고착시키는 박테리아들 쯤 될 겁니다. 개체 수와 질량ㅡ총량을 따지면 지구 표면 전체를 1미터쯤 두께로 덮을 수 있다고 합니다. 60억 인간을 모두 쌓아봐야 작은 산 하나 정도 만드는 게 고작인 인간들은 그저 눈물만...ㅠㅡ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일 뿐 아니라 모든 육상 생명체의 어머니이기도 하죠...진정한 Mother Nature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접한 개념 속의 신 따위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라고 봅니다.)

요약: 인간의 마음은 끊임 없이 두려워하고 두려움의 대상을 찾습니다.

만일 현재 두려워할 것이 없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만들어 그 미래에 골몰합니다.
신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죠.
'나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미지의 불확실성마저도 자기의 지배 하(?)에 두려 하는 인간의 과감성과 객기?를 보여줍니다. ㅎㅎ
설령 백만보 양보해서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저는 전 우주의 주인이자 관리인?이라는 신이 하필 인간'만'을 사랑하고 돌봐줘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설마 모 종교의 주장대로 인간이 자기랑 닮아서?(물론 신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을 본따 창조해서라고 합니다만...역시 왜 그랬을지 개연성이 제로입니다) ㅎㅎㅎ 종교, 특히 유일 인격신 종교에 관해선 정말이지 모든 게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개연성이 없죠.

절대 시간이라는 개념, 아니 시간 그 자체의 개념에 대해 제가 회의적인 이유는, 위와 같이 자기 방어본능을 가진 생명체로서 인간의 심리가 갖는 정말 참 끈질긴 어떤 습성에 대한 의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맹목적으로 자기를 보호한다는 목적의, 일종의 두려워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입니다.
이 크고 값비싼 엔진(우리가 먹는 모든 열량의 1/3을, 설령 무념 무상의 상태로 지낸다 하더라도, 이 뇌라는 놈은 끝없이 처묵처묵 해댑니다)은 단 한 순간도 쉼 없이 돌아갑니다.
인간처럼 크고 무겁고, 심지어 잘 때조차 쉬지 않고(꿈을 꾸니까요) 돌아가는 뇌를 가진 종은 지구상에 일찌기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을 지금의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불필요한 부수 효과를 낳았다는 겁니다. 글자 그대로 너무 크고 아름답고 정교해진 나머지, 주인조차 제 마음대로 제어하거나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 경우엔 주인이 누군지가 벌써 불분명해지는 상황입니다만...(플라톤은 당연하다는 듯이 최고 권력자를 사회의 '머리, 뇌'에 비유했다고 들은 듯도 한데...가물가물...)

이쯤 되면 눈치채셨겠지만, 불교를 비롯한 대다수의 신비주의 교단들은 바로 여기서 그들의 존재 이유를 찾습니다.
태어난 이후로 끝없이 쉬지 않고 돌아가기만 하는 이 마음의 작용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 마음의 시끄러움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브레이크 없는 이 마음이라는 놈을 멈춰 세우기 위해 조용한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합니다. 성공률은? 글쎄요. 저도 진지하게 도전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세상사에 시달리지 않으니 두려움이 작동할 이유가 없어져 마음이 멈출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시 복잡한 세상사로 돌아오면 말 그대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쉽겠죠. 그래서 '고렙' 유저들은 머리를 깎고 산사에서만 생활하며 속세와 영원히 절연을 하겠다 결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저로서는 알 수가 없죠...

마음은 결코 너 자신이 아니다.
너는 결코 허접하고 약한, 언젠가는 스러져 사라질 육신이 아니다.
(이거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루크한테 한 얘기인 듯도 한데...)

이런 말을 곱씹어 보면 의외로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20대 무렵부터 불교를 비롯한 여타 인도 산(?) 신비주의들이 땡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도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ㅠ 입맛만 다시고 있지요.

요즘엔 특히 U.G.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사람이 딱 제 취향이더군요. 이런저런 아름다운 경구도, 미사여구도(이 바닥에선 이게 세일즈 포인트인데 이걸 내다 버리다니...ㅠ) 군더더기도 없고, 신비주의자인데 전혀 신비스럽지 않고 오히려 건조하고 메마르게 '사실'만을 전달하려 애쓰는 듯한 그의 성향이 제 취향엔 딱인 듯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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