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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게 헌정 반야심경
게시물ID : phil_155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빠
추천 : 2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11 18:11:11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한글)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사리자!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고,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예전 뭣도 모르고 반야심경을 외웠으나 지금 와서 한번 읽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참 웃음만 나온다.

주문을 걸어볼까? '간다 간다 뿅간다 피안으로 뿅간다'

멋지다.

21세기에도 이런 주문들을 외는 걸 보면 과연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왜 이런 주문들을 외울까? '간다 간다 뿅간다 피안으로 뿅간다' 같은 아주 단순한 말귀인데 말이다.

(SIG)남묘호렌케쿄를 볼까? 이것도 비슷하다 '남무묘법연화경'인데 '법화경에 귀의한다'같은 주문이다.

"어디서 약을 팔어?" 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의 별 희안한 신통방통의 효과를 가져온단다.


이정도면 거의 .. 음.. 그렇다.


대부분의 미신은 어리석음으로 인한, 알 수 없음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행해진다.

왜? 라고 물으면 어디서 가져온지 모르는 별 희안한 간증과 수많은 개똥철학으로 그 당위성을 주장한다.

보통은 "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기 마련인데, 매번 나오는 철학과 불교의 희안한 하모니를 보자니 (김치 파스타같은)

순수한 철게의 모습을 대승이라는 불교의 탈을 쓴 무속신앙에 더럽혀지는 것 같아 약간의 도움울 주고자 한다.

반야심경.. 천천히 까보자.

글자 하나하나 까도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니 중요한 단락들만 보겠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해석하자면

물질은 비어있음과 다르지 않고, 비어있는 것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
물질이 비어있고, 비어있는것은 물질이다.

참 병신같은 헛소리를 길게 써놨다.

굳이 말하자면 삼법인, '물질은 변화하는 것',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 '괴로운 것을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중에

'물질은 무상하다(변화한다)'를 물질은 비어있다고 바꿔서 역으로 한번 더 말하고, '다르지 않으니 같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

엄연히 변화한다는 것을(무상) 비어있다(공)라는 것으로 바꿔서 삼법인의 무상,고,무아 중 무상을 공으로 치완함과 동시에 5온(5가지 존재의 무더기)을 비어있다고 말한다. 

(니까야에서 공(비어있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 불교의 니까야, 아함경에선 비어있다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대승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하고 괴랄한 현상으로 보면 된다. 내가 추측하건데 깨달음 그 자체를 공(비어있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이것 외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

마치 '아빠와 엄마는 가족과 다르지 않고, 가족은 엄마와 아빠랑 다르지 않으니, 가족은 엄마랑 아빠고, 아빠와 엄마는 가족이다.'같은 말처럼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소리를 길게 써서 본질을 흐리는 대승의 특기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넘어가서 '모든 법이 공하므로 생멸도, 더럽고 깨끗함도,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를 보자

분명 물질이 비어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진리'는 비어있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 단락을 위한 빌드업이다.
물론 단순한 말을 장황하게 쓸데없이 길게 이야기 하고 있음은 다르지 않다. 마치 '커피는 맛있으므로 달기도, 쓰기도, 시기도 하다'같은 소리다.

자, 여기가 중요하다.

비어있는 것은 오온(5가지 존재의 무더기)도 없고 12처(6가지 감각장소와 그 대상)도 없고, 죄다 없고 심지어 진리도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고 한다.
아주 쓸모 없는 소리다. 애초에 비어있음을 상정할 때 변화한다는 것을 바꾼 것이다.
변화하는 것엔 아무것도 없다는데 그건 진리는 제외해야 한다.
진리가 변화하지 않기에 어떠한 상황이든 적용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주의 변화 속에서도 '진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비어있음을 깨달음의 상태로 해석해도 말이 안된다.
아라한의 상태가 바로 흔히 말하는 깨달은 자, 불사,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데
아라한이라고 해도 오온은 존재하고, 12처도 존재한다.

그럼 비어있음을 깨달음 그 자체로 말할 수 있나?
그럴 순 없다. 그건 이미 깨달은 사람이 수명을 다할 때 완전한 열반에 든 상태를 말하는데
이건 더이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존재를 벗어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같은 명제가 성립이 안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말하는 것인데, 존재를 벗어난 사람은 더이상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꺼진 촛불은 어디로 가는가?' 같은 쓸모없는 희론의 소리다.

어거지로 해석해봐야 깨달음의 상태는 '얻는게 없는 상태다'라고 밖에 해석이 안된다.
얻는게 없는 상태니까 보살이 거기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보살 사상이 원래 무지의 증거다.
'같이 깨달음을 얻자', '지옥의 중생이 다할 때까지 붓다가 되지 않겠다' 같은 멍청한 소리다.
붓다와 아라한의 차이도 구분 못하고, 개념도 없고, 붓다가 되기 위한 것도 보살의 바라밀도 모르고
그냥 주구장창 관셈보살이나 외치는게 바로 대승이다.

이런 보살이 깨달음을 어떻게 의지한다는 것인가?
붓다는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은 괴로움이다. 나는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나는 내가 깨달은 법을 존중하고 의지하겠다' 처럼
깨달은 사람이 거기에 의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살은 명백한 중생이고, 유전하며, 심지어 예류자라고 하는 사쌍팔배의 성인보다 아래다.
어떻게 깨닫지도 못한 사람이 깨달음을 의지하는가.

마치 요가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이 '요가를 의지해 건강해지겠다'라고 하는 소리다.

깨달음의 상태를 얻을 것이 없는 상태로 만들고, 얻을 것이 없으니까 걸림이 없다고 해서 두려움도 없다고 한다.
이런 괴랄한 논리를 펼치다가 미스테릭한 주문으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온갖 괴로움을 없애는 주문이라고 한다. (아 제발 아 제발 그런게 있음 얼마나 좋겠냐)
심지어 기독교도 믿으라고 하지 주문을 외기만하면 괴로움이 사라진다라는 소린 안한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간다 간다 뿅간다 피안으로 뿅간다' 도랏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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