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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업>,<윤회>,<해탈>의 역사적 변천을 통해 바라본 인간 해방
게시물ID : phil_156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3
조회수 : 64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8/06 19: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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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업>,<윤회>,<해탈>의 역사적 변천을 통해 바라본 인간 해방
 
 
<불교는 브라만교에 반대해 세상에 출현한 것으로 안다. 업, 윤회, 해탈이란 말은 브라만교에서 피지배층과 피지배민족을 지속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차용한 것인데, 불교는 브라만교에 반대한다면서 대체 왜 그 전통을 따르나? 이는 인간 해방 아닌 또 다른 구속이요 억압 아닌가?>

나는 그 당시를 살아본 것도 또 그 당시의 석가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도 또 석가의 모든 삶의 과정 하나 하나를 투명하게 살펴본 것이 아니다. 다만 석가는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삶을 살았다.는 기준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석가가 아무런 물적, 인적, 문화적, 종교적, 시대적 배경 없이 홀로 깨달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특정한 스승 없이 주체적으로 깨달았다.는 관점에서는 독각자로 볼 수 있다.) 석가 당시에도 브라만교에서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상적 기초가 존재했다. 이를 아트만(영원 불변의 초월적 자아이자 불변의 영혼)이라 한다. 이 아트만 사상이 진리로 받아들여졌기에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아트만 사상과 이 아트만 사상을 기초로 한 윤회 사상은 인도 사회에서 신분제도를 절대적으로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왕족, 귀족 등 현실 권력층과 고위 제사장 등 정신 지배층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분제도였으나 농민, 어민, 상민, 공민 등 평민과 논외로 취급되는 불가촉 천민 등에게는 천하에 다시 없을 지독하고도 끔찍한 형벌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물론 석가 당시에는 장자로 대변되는 신흥 상업자본가와 도시국가를 기반으로한 신흥 권력자인 크샤트리아 계층이 대두되어 브라만의 지배 및 간섭, 카스트 제도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자유롭게 뜻을 펴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그 명분을 제공해 주고 그 사상적 기초를 제공해 줄 신흥 사상가와 집단의 출현을 원하고 있었다. 그 때는 바야흐로 역사적 전환기였던 거다.)   

브라만교는 카스트 제도에 불만을 품을 수 있는 계층의 동요와 민란 등을 제어하고 내부를 결속하기 위해 윤회, 업, 해탈이라는 내세관 및 진리관을 주장하였다. 즉 브라만교는 당대 지배층과 민족이 내부를 단속하는 동시 피지배층과 민족을 통제하기 위한 사상적 기초요 개념으로서의 <윤회>, <업>, <해탈>을 제시하였던 거다. 브라만교는 당대인들의 신분 및 계층, 직업 등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업>을 제시했다. 이런 식이었다.

"당신이 생전에 이러한 삶을 살고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기에, 현재  삶이 그런 것이다."
"당신이 생전에 이러 이러한 죄를 지었기에 현재 이런 운명에 처한 것이다."

 또, 브라만교는 이 <업>으로 인해 현세가 한 번 이러하면 이러한 운명은 육신이라는 껍질만 달라질 뿐 영원 불멸의 <아트만>으로 인해 세세생생 유전한다고 제시했다. 당대의 인도 기득권층은 이것을 통해 신분계층 및 제도를 절대적으로 고착화시켜 기득권 위주의 사회안정을 도모했다. 이것을 윤회사상이라고 한다.  <업>, <아트만>, <윤회사상> 등에 불만을 품은 피지배층과 피지배민족에게 <해탈>이라는 관념상의 탈출구를 제시함으로써 신분제 및 사회의 동요를 원천 차단하고자 하였다. (해탈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보면 된다.) 

석가 당시 인도의 주류를 이뤘던 브라만교는 앞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전생에 지은 <업>과 유전하는 <아트만>으로 인해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나,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면 '윤회'로 부터 해방되어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이념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피지배층의 동요와 신분제의 혼란을 막고자 하였다. 당시 지배층은 <해탈>이라는 관념을 통해 피지배층이 꿈과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 하여 통제에서 벗어나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나태해져 지배층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지배층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 등을 근본적으로 경계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당대의 주류적인 진리관이요 운명관, 내세관이었다. 

<해탈>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요 유토피아적 망상에 가까웠으나, 당대 민중들로서는 이 사실을 알든 모르든 간에 상관 없이 이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온 천하가 브라만교를 숭상하고 사제 및 권력자들이 이를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으니, 그 세력에 위축이 되고 그 권력에 위축이 되고 그 명성과 그 권위에 그 칼과 방패, 돈과 황금 등에 짓눌린 당대 대중들로서는 현세는 이러해도 부지런히 노력해 업장을 소멸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 외에는 달리 뾰족한 탈출구가 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문화적 종교적인 배경을 유념하며 살펴보면 석가의 <무아법>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현재에 이르렀고, 한번 태어난 존재는 영원불변의 <아트만>이 존재하기에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던 시대적 상황에서 석가는 '불변의 초월적 자아'인 <아트만>이 본래 없다.는 무아법을 깨닫고  이를 대중에게 설하였다.
 
 
이는 그 당시 주류로 널리 인정받던 브라만 중심의 진리관, 운명관, 신분제도 등을 송두리째 뒤흔들 혁명적 진리였다. 그래서 이 사상을 깨치거나 받아들인 이들은 그 즉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다. 이를 <해탈>했다고 한다. 인권 개념과 과학, 기술, <자유 정신>, <권리> 및 제도가 발달한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영원불변의 초월적 자아>란 본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별 것 아닌 이치에 불과하나, 석가를 통해 <무아법>을 깨닫고 받아들인 이들이 당시에 느꼈을 심정은 오늘날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이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그 무엇인가를 확연히 깨닫고 <유레카>라고 외쳤던 심정과 환희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고, 원효가 해골에 괸 물을 통해 그 무엇인가를 깨달았던 바로 그 순간의 희열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석가의 <무아법>은 카스트 제도에 짓눌린 나머지 시름하던 대중과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상적 기초를 갈망하던 신흥자본가들과 신흥 권력자들에게는 당시로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고, 지금까지 알던 모든 것이 허공에 흩어지고 새롭게 재구성 되는 것과도 같았다. 다만 시대가 다르기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당시만큼 확 와닿기가 어려운 거다.

또, 석가 당시 기준으로는 우리들은 전부 <해탈>한 사람들이다. 우리 개개인이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잘하고 못해서가 아니라 이와는 별 상관 없이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달라지는 등 시공간이 변하니 절대적인 신분제도가 더는 필요 없어져 이를 뒷받침하는 진리관 운명관 등도 자연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불교에서는 <업>은 그 사람이 지어온 말과 행동 등을, <윤회>는 그 사람이 지어온 '업'과 '인연'으로 인해 그 사람이 '희로애락, 생로병사'에 집착하여 고통의 바다에 끝없이 머무는 것을, <해탈>은 사성제, 팔정도 등을 통해 업장이 소멸되어 <윤회>에서 벗어남을 <열반>은 <고>에서 벗어난 상태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부처님 당대 인도에서 널리 통용되었던 <업>, <윤회>, <해탈>이라는 관념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업>, <윤회>, <해탈>과는 다르다. 다만 그 이름이 <업>이요 <윤회>요 <해탈>일 뿐 그 알멩이요 본질은 시간적 공간적 조건과 상황 등에 따라 그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시대와 공간이 변하니 석가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문제와 갈등이 대두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불교의 기본 개념 조차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 조건과 상황 등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이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았는가? 여러분의 의지와 참여 없이 <업>, <윤회>, <해탈>, <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알멩이>요 <본질>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전율이 일지 않는가? 나 없는 곳에서 나를 지배할 수도 있는 개념이 정립되고 수정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여러분이 적어도 불교도 내지 불교 철학을 자기 삶에 받아들여 살아온 자라면 이 사실에 경악해야만 마땅하리라.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한번 진지하게 함께 탐구해 보자.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논의가 다만 시작에 불과했음을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느 사람이 진리의 일부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전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 사람의 입장이 온전히 되어보라. 여러분 자신이 석가라고 몰입하여 보라.  진리 그 자체든 진리의 일부이든지 간에  인간의 언어로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도 개념화 할 수도 없다. 진리는 진리일 뿐이기에, 인간은 이를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 언어화하고 개념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진리에 이름이 부여되고 가치가 부여된다. 

이는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다만 그 진리를 설명하는 개념이요 그 진리를 일대일 대응으로 가리키는 언어가 될 뿐이다. 이렇게 해서 당대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이해가 되면 좋으나 보통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그들일 뿐 진리의 발견자는 아니기에 발견자는 그 당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 발견자가 말하는 진리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견자는 그 당대에 널리 통용되는 종교적, 문화적, 생활적 언어에 자신이 발견한 진리의 일부를 스며들게 하기 쉽다. 이렇게 해야 당대 사람들이 큰 어려움 없이 그 진리의 일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성경 안에서도 발견되고 불경 안에서도 발견이 된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선언하고 자기 사상과 철학을 전파해 나간 것, 석가 브라만교의 가르침과 개념을 빗대어 자기 발견을 설한 것 등에서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이들 조차 그 당대의 문화, 언어, 풍습, 종교 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자연히 깨닫게 된다. 또, 이들의 사후에 그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초기 교회, 초기 불교가 형성되어갈 때 필연적으로 조직화, 단체화, 교단화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간 집단의 이익과 이해 관계, 위계 질서, 당대 문화 등 조차 그 안에 스며든다. 

또 이 제자들에 의해 진리가 조직화 되고, 종교화 되어가면서 권력화 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권위, 권위의식, 계급화, 서열화 등 권력의 속성 또한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집단 안에 스며들게 된다. 이들을 추종하는 이들은 늘어나 상당한 세를 구축한다. 이쯤 되면 이제 이 제자들은 능히 당대 권력자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기득권층이 된다. 이들은 최초 발견자나 초기 수행자들의 정신과 실천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과 대중에 대한 통제를 상실할까 를 최우선적으로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에 맛 들인 이들은 얼마든지 기존 개념을 자기들 입맛대로 편집하고 재단하여 새롭게 개념화하여 이를 통해 내부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대중에 대한 통제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고착화시키고자 한다. 이는 권력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권력의 속성상 종교지도자나 사상가가 사회를 통합하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거나 그러한 일(사회 통합, 통치에의 명분 제공 등)을 실제로 가능케 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은 국가나 제국, 세계를 통치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종교와 권력은 유착하게 된다. 이같은 사실은 기독교가 로마 황제에 의해 공인화 되는 과정에서도 불교가 아쇼카 대왕에 의해 공인화되는 과정에서도 발생했다.

진리의 칼날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그 사회, 국가, 세계, 우주 등 저마다의 영역에서 경쟁자 모두를 제거해야만 근원적으로 만족하게 된다. 잘 벼려진  칼날은 뛰어난 자의 손에 쥐어져도 다만 수십 수백을 해칠 수 있을 뿐이지만, 진리의 칼날은 누가  그 칼날을 쥐고 휘두르냐에 따라서는 한 민족, 국가, 세계도 멸망시킬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철이 든 종교 지도자들은 '속으로는 내가 옳아.' 라고 여전히  믿고 있지만 다만 믿음의 영역으로서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진리에의 추구를 내려놓는 대신 권력의 유지에 열을 올리는 종교는 필연적으로 과학과 결별하게 된다. 이들은 지혜로운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학자, 존경받는 수행자 등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제거하거나 침묵시키고자 애쓴다. 달콤한 말이 듣기에 좋지 쓰디 쓴 말이 달가울리 없기 때문이다. 믿음의 영역은 참과 거짓이라는 기준으로 분별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하기에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는 자연스럽게 결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배울만큼 배웠고 익힐만큼 익혔다면 성경책을 덮고 불경을 덮고 도덕경을 덮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라.고 그저 발가벗은 자기 자신을 보라.고 그리고 그대로의 세상을 보라.고 우리는 이 관점에서 얼마든지 서로 통할 수 있다.고 당신이 만약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정립한 개념과 언어, 이야기 등으로 가득 덮힌 그 책을 들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 멀어져만 갈 뿐이다. 그것은 다만 언어일 뿐이다. 그것은 다만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은 다만 본질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손가락이 진리 그 자체일 수는 없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비유요 예시일 뿐이다. 그것은 다만 조직의 생리요 규칙일 뿐이다.고 나는 말한다. 

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훌훌 털어내고 발가벗은 자신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초기의 발견자들 노자, 예수, 부처 등과 기꺼이 진리의 향연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때에야 비로소 과학과도 진실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조금의 오차도 없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도 상대적인 진리도 서로 나누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향연의 장에 들어설 수 있다는 거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진리를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더욱 더 진리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을 내게 새삼 가르쳐준다. 나 또한 그랬었고, 지금도 그럴 때가 많으며 앞으로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든 개념, 언어, 틀, 독선과 아집, 책, 동영상, 조직 및 단체, 권위, 종교 등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누가 언제 어느 때 그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고, 그 의미와 가치는 대체 그 무엇인가?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그것은 어떤 필요와 쓰임새가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석가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탐구하며 검증하고 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 부터 차근차근 경험해 나가는 것은 불교를 믿음의 종교 아닌 지혜의 종교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길이 될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임제의 말처럼 일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사유할 줄 아는 자는 더 이상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거나 의존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런 삶의 자세와 실천에 익숙해 지고 익숙해 지면 우리는 진리 그 자체 아닌 승려나 조직, 불교, 책이나 동영상 등에 더는 속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눈을 뜨면 권력도 권위도 명예나 조직도 유명세나 이름도 우리를 더는 속이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더는 속이지 않아도 된다. 석가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체험하고 검증한 이였지, 남의 말을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배척한 이가 아니였기에 그를 본받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더욱 더 석가의 마지막 말처럼 스스로 의지하고 또 법에 의지해야 하리라.
 
 
석가 그 자체 아닌 우리 내면에도 관념상의 석가가 존재한다. 이 관념 상의 석가는 석가 그 자체는 아니지만 적어도 석가를 자기 삶에 소중히 받아들이는 개인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 개인의 삶의 의지처요, 삶의 모델이요, 인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석가란 위대한 철학자요 사상가요 실천인을 통해 충분하고도 충분하게 배우고 익혀 그 정수를 이미 자기 것으로 충분히 소화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자기란 알을 깨치기에 충분하리라. 이미 알을 깨치고도 우리 내면에 석가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찌 해야할까? 우리가 저마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관념상의 석가를 구도의 칼날로 일도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기로 바로 서게 된다면 석가가 우리에게 화를 낼까? 기뻐할까? 나는 어쩐지 석가가 우리를 향해 빙그레 미소 지어줄 것만 같다. 연꽃을 손에 쥔 부처를 보고 가섭이 그리한 것과 같이.
 
 
석가와 가섭에게 시 한 수 바친다.
 
 
인간해방
 
사실,
나를 구속할 수 있는 것도 '나'고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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