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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선생과의 문답
게시물ID : phil_156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1
조회수 : 111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8/12 08: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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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차게 야한 정신을 외쳐오고 계신데 그 야한 정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야한 정신이란 과거보다 미래에, 도덕보다 본능에, 절제보다 쾌락에, 전체보다 개인에, 질서보다 자유에 가치를 더 매기는 정신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여기서 전체보다 개인, 질서보다 자유죠. 전체보다 개인이고 질서보다 자유. 우리나라는 다 집단주의란 말이에요.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해라 이거 아니에요? 민족주의도 그렇고. 전체보다는 개인이라는 건 개인주의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 말이죠. 


  -이 시대나 사람들에게 야한 정신이 왜 필요한지?

▲표현의 자유가 질서를 이유로 훼손당해요. 예컨대 <즐거운 사라> 사건도 "이 시대의 도덕적 질서에 위반된다." 그래서 처벌한 거 아니에요? 나는 자유가 모든 문제의 최고의 실효책, 실효약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내가 흔히 하는 얘기가 이거죠. 자유를 줘야 자율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일본은 표현의 자유가 만발하는 나라죠? 포르노가 다 합법이고, 매매춘도 다 합법이고. 그런데 일본의 인구당 성범죄 발생율이 우리의 십분의 일이에요. 불과 몇 달 전에 조선일보에 나왔어요. 인구당 성범죄발생률이 우리가 일본의 열 배에요. 내가 그래서 줄기차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거죠. 포르노를 자유롭게 보라고 하면 자율이 생겨서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주면 안한다.>라는 속담대로 맘대로 보라고 하면 안 봐요. 이건 이미 스웨덴이나 일본에서 증명된 거죠. 스웨덴에서는 성 표현의 자유를 해방시키고 성매매를 합법화하니까 오히려 성매매가 줄어들었죠. 그리고 포르노에 시쿤둥한 거죠. <몰래먹는 사과가 맛있다.>, <훔쳐 먹는 사과가 맛있다.>, 이런 속담처럼 포르노도 몰래 볼 때 재미난 거지 대놓고 맘대로 보라고 하면 잘 안 봐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한국, 한국인 최고의 실효 처방은 자유라고 주장해 온 마광수 교수


▲우리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 들었고, 경제 규모가 세계 십 몇 위고 하는데, 항상 그 통계에 나오는 것 보면 언론의 자유 최하가 우리나라고, 성범죄 발생률 최고가 우리나라고 자살 최고가 우리나라고, 교통사고 사망율 최고가 우리나라고, 4 ~ 50 대 남자 사망률 최고가 우리나라에요.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사회란 얘기죠. 그래서 야한 정신을 단 하나로 응집한다면 자유죠. 내가 낸 책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이건 성경을 패러디한 건데, 성경대로 얘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죠. 근데 진리라는 게 여태까지 사람을 얼마나 괴롭혔어요? 예컨대 마녀사냥도 진리를 어겼다고 애매한 여자들을 죽인 거 아니에요? 진리의 다양성을 인정 안 했단 말이죠.

내가 대학 새 학기 첫 시간에 꼭 얘기하는 게 이거죠.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한다." 특정 종교라든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말라는 거죠. 공자도 40세가 돼서야 불혹 (不惑 : 공자(孔子)가 40세에 가서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 이라고 했어요. 적어도 40세 까지는 지적(知的)인 방황을 해야 된다고 봐요. 이 종교도 알아보고 저 종교 알아보고. 이 이데올로기도 알아보고 저 이데올로기도 알아보고 그래야 된다고 봐요. 근데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아주 열성 예수교 신도가 되어가지고 시대에도 안 맞는 순결운동이나 하고 있는 그런 애들이 많아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너무도 이른 시기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거죠. 공자 식(式)대로 얘기한다면 적어도 40세까지는 확고한 신념을 보류해야 하거든요. 사실 그때 가서도 진리를 발견할까 말까죠. 내가 보기엔 고정불변의 진리라는 게 없어요. 예컨대 갈릴레이가 나오기 전까진 지동설이 아니었잖아요? 그 전까진 천동설이었어요. 하지만 지동설도 이제 바뀌었다구요. 왜냐하면 우주 전체가 움직인다고 보게 된 거죠. "태양이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돈다." 이게 아니라 이제는 태양계도 움직이고 지구도 움직인다 이거죠. 근데 이 이론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아이슈타인도 프로이트도 지금 많이 비판을 받는단 말이에요. 진리라는 건 항상 변하는 거니까 정해진 건 없는 거지요.

우리나라 특히 기독교인 중에는 복음주의자들이 맹목적으로 선교하기 위해서 타 종교 국가에 가서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래도 계속 선교를 하겠다고 우기잖아요? 이런 맹신도가 많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오히려 우리 조상들의 종교가 낫지요. 샤머니즘은 다신교이기 때문에 모든 만물을 존중하는 거죠. 돌에도 신이 있고, 연못에도 신이 있고, 산에도 산신령이 있고....... 이게 오히려 평화롭지요. 예컨대 서구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도, 남미 잉카제국을 정복할 때도, 쳐들어갈 때 성경을 갖고 가서 이게 진리니까 믿으라고 강요했다구요. 갑자기 들이닥쳐와서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면 어떻게 믿어요? 현지 사람들이 못 믿겠다고 하니까 "저 놈들은 이교도다 다 죽여라!" 하면서 학살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절대로 자유가 진리보다 먼저 와야죠. 자유라는 건 일단 여러 가지를 섭렵해보라는 거죠. 요것도 다 야한 정신인데, 야한 정신의 핵심은 어쨌든 자유와 다원(多元)이에요.


-현실에서도 정말 연애의 달인이고 야한 정신의 실천자이신지?


▲아니죠. 연애라면 젊을 때는 많이 했죠. 그런데 요샌 늙어서 연애 해 본 지가 오래 되었어요. 게다가 내가 조건이 나쁜 게 요새는 완전 여성상위 시대라 여성들이 연하를 좋아해요. 내가 4년 전에 열심히 구애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그때 38세인가 그랬어요. 화가였는데 물론 독신녀였죠. 그런데 내가 싫다고 하고서 1년 있다가 시집을 갔는데 9살 어린 남자한테 갔어요. 9살이나 어린 남자 ! 우리 세대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죠. 9살이나 더 먹은 늙은 여자한테 영계 남자가 장가를 가더라고요. 10년 차이 부부 얘기까지 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나같이 늙은 사람은 굉장히 불리하죠. 내가 바라는 게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데, 이 연령대에서 잘난 여자들은 대개 유부녀 아니에요? 내가 젊은 교수였을 때야 여학생들이 날 꼬시려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전혀 없어요. 이젠 가끔 나보고 할아버지라고 그러는데요 뭐. 늙어서 좀 젊은 여자하고 연애하려면 거저 돈이더구만요. 미국에서 재벌 남자들이 가끔 20 대 여성과 결혼하잖아요. 문학가 괴테도 70세 때 18살 여자하고 연애를 했죠. 그때 괴테는 엄청나게 출세한 사람이고. 화가 피카소도 그랬죠. 피카소는 돈도 많고 유명도 했잖아요. 나야 뭐 돈이 있나...... 게다가 퇴직 후 연금도 못 받는 전과자 아니에요? 요새 젊은 여자애를 꼬시려면 명품으로 발라줘야 되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안 통해요.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하죠. 나이 따지고 집안 따지고 하여튼 따지는 게 너무 많은 나라예요. 그래서 요즘 제가 몹시 외로워요.


-마광수표 성문학은 어디서 나오는지?

▲나의 성이론이라든가 성문학은 공부에 의해서 나온 거예요. 나는 미국 한번 안 가봤어요. 책으로 공부한 거죠. 건방지게 얘기하면 칸트 같은 거죠. 칸트는 평생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했잖아요. 그래도 다 알았다는 거예요. 책이면 다 알아요. 내 문학에 대한 오해가 참 답답한데 픽션이라는 게 뭐에요? 거짓말이라는 얘기거든요. 허구! 그런데도 변태적 섹스를 해보고 썼냐고 그래요. 추리 작가가 살인사건을 소설로 쓰면 죽여보고 씁니까? 추리 작가한테는 절대 그렇게 안 물어요. 그런데 야한 소설은 꼭 물어봐요. 너 제자 따먹고 썼지? 뭐 이런 식이죠. 여긴 아주 문화적 후진국이에요.


-마 교수님이 그렇게까지 색을 밝히는 인물로는 보이지 않고, 도리어 지나치게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솔직함이 <양날의 칼> 같은 위험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 지나친 순수함과 솔직함이 때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협이나 불안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지?


▲아니죠, 나는 색을 밝히죠. 근데 여건이 안 되는 거죠. 나는 모든 도덕의 귀결점은 솔직성이라고 보거든요. 한국인들은 솔직하지 않고 이중적이에요. 그게 제일 문제죠. 솔직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며 다들 내숭을 떨잖아요. 제일 큰 내숭이 뭐냐? 사랑을 정신적으로 하자는 거에요.. 난 아니거든요. 난 여성의 외모에 반한다. 이성의 외모를 보고 반하지 마음을 처음부터 어떻게 알아요? 심장을 쪼개 보나? 늘 많이 팔리는 책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람>이나 헤세가 쓴 <데미안> 같은 소설인데 둘 다 다분히 정신주의 일변도죠. 물론 외모라는 게 꼭 예뻐야만 좋은 건 아니죠. 속담 대로 <제 눈에 안경>이에요. 제 눈에 안경이기 때문에 꼭 늘씬하게 잘빠지고 예뻐야만 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여자든 남자든 상대방이 어쨌든 자기 눈에 예쁘게 보여서 연애하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내가 말한 <먼저 외모에 반한다>는 얘기를 가지고 그렇게들 난리를 치더라구요.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 사건 --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내가 5년 전에 텔레비전 나가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그랬어요. 그 이후론 내가 텔레비전에 못나가요. 그때 또 엄청난 사이버 테러를 받았어요. 홈피가 마비되고 그랬죠. "이 죽일놈!" 하고 다들 욕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최근에는 한겨레 블로그에다가 <근친상간을 상상으로 할 수 있다>라고 썼거든요. 그랬더니 젊은 세대들이 지랄발광하며 욕을 하고, <한겨레 필통>논객에서 내가 제외되었잖아요. 한겨레신문조차 고루하더라구요. 로마의 씨저가 꿈에 엄마랑 섹스했어요. 그런 꿈을 꾼 뒤에 로마 집정관이 된 거에요. 길몽(吉夢)이라는 게 전부가 부도덕한 내용이에요. 사회윤리적 도덕 때문에 우리가 못하는 것. 그것의 귀결점은 근친상간이죠. 그런데도 내가 상상으로 그걸 좀 했다고 하니까 젊은이들조차 욕을 하고 악성 댓글을 올리고 그랬죠.


-상상의 자유가 한국을 발전시킨다는 주장에 대하여


▲상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걸 당하니까 한국의 장래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 앞으로 문학뿐이 아니라 자동차니 뭐니 해도 하나같이 기본은 상상력이거든요. 상상력이 새 발명을 이끌어 내는 거라고요. 새처럼 날고 싶다고 상상하니까 비행기가 나온 거란 말이죠. 그런데 한국의 지배층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너무나 몰라요. <즐거운 사라> 사건도 상상력을 잡아넣은 거죠. 내가 행동으로 죄를 지은 게 아니란 얘기죠. 그때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적 후진성이 웃음거리가 됐죠. 어떻게 허구적인 상상을 형법으로 잡아갈 수가 있어요? 범죄라는 게 범죄행위가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상상의 자유만이 한국을 발전시킨다.> 내가 이런 얘기를 글로 수없이 썼어요. 그걸 젊은 애들조차도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소위 '내숭 문화'가 생긴 거지요. 요새 내가 제일 듣기 싫은 게 쌩얼, 투명 메이크업 이런 거예요. 내 대학시절엔 그렇지 않았거든요. 짙은 색조화장이었죠. 1970 대 그때 유명한 뮤지션이 다 나오잖아요? 송창식. 김추자, 양희은, 신중현 등이죠. 1970년대 초에 대학가요제가 생기는데 명가수가 많이 나왔어요. 그리고 명곡도 많이 나왔구요. 요새 대학가요제에서 명가수가 나오나요? 절대 안 나오죠. 노래들을 들어보면 다 획일적이에요. 젊은 사람들한테 1970년대에 살았다고 그러면, 아이고 그 옛날 고리타분했던 시절에......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지금보다 오히려 더 프리섹스에다가 더 야했다니까요. 여자애들 화장은 완전히 튀는 화장이었어요. 눈두덩에다가 초록색 아이섀도 칠하고 인조 속눈썹 붙이고 다녔다구요. 시뻘겋게 볼터치를 하고, 한겨울에도 모두 초미니 스커트를 입었죠.

요샌 내숭 화장하고 고급스런 분위기 내려면 돈이 더 들어요. 그러니까 내가 답답한 거지요. 그리고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 유행 추종적이야. 내가 좋으면 유행을 초월하면 되는 거예요. 예컨대 머리 염색 문화가 그래요. 한창 머리를 염색들을 할 때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거의 안 해요. 주로 연예인들만 하더라고요. 학생한테 왜 안 하냐고 물었더니 유행이 아니라는 거예요. 남이 안할 때 해야 티가 팍팍 나는 거지. 남이 염색할 때는 안 해야 하는 거고. 모든 튀는 아름다움의 기본은 천박함과 야함에서 오는 거라서 그래요. 그래서 명작의 여주인공에 창녀가 많은 거라구요. 야하게 헤픈 여자가 소설에 좀 많이 나오나. 어떻게 보면 개성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성적 본능에 솔직하게 나가면 솔직한 사람이 사랑에서도 결국 승리한다고 믿어요.


-'성해방' 통한 인간해방론자 마광수 - 그 길을 걸어가는데 두려움은 없는지? 또 어떤 방향의 인간해방론을 주장하는지?


▲하나가 두렵기 시작하면 모든 게 두려워져요. 성매매 특별법이 뭐예요? <룸살롱 가는 사람은 다 봐주고, 가난한 사람은 잡아넣겠다.> 이거 웃기는 얘기 아니에요? 아니 거꾸로 고급 퇴폐업소를 때려 부수고, 영세한 성노동자들이 먹고 살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매매춘이 사라졌나? 오히려 음성적으로 더 늘어났지요. 음성화되니까 에이즈가 막 퍼져요. 성매매를 양성화 하면 에이즈 보균자를 검진할 수 있어요. 지금 여성부 때문에 모든 걸 망치고 있죠.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여성부 때문에 성매매 특별법도 생기고, 남성 역차별도 생기고. 남자가 군대 갔다 와도 가산점도 안 주고 그러는 거에요.. 해법은 남성부도 만드는 거죠. 세계에서 정부에 여성부를 둔 건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물론 여성해방운동은 필요하죠. 허나 그게 과다하면 부작용이 생겨요. 남성들과 평등해지는 게 아니라 아예 남성들을 죽이려고 들어요.

내가 보기엔 진짜 남녀평등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여자도 군대 가든가. 아니면 남자에게 가산점 줘야지요. 여성부 때문에 그거 폐지됐잖아요. 남자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다른 걸로 봉사하든가 해야죠. 군대 가는 대신에 공익근무를 하든가 해야죠. 요즘 남녀 역차별이 심해요. 연세대만 해도 그래요. 여학생이 절반이 되었다구요.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이 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여자 학생회가 또 따로 있어요. 그걸 운영하는 돈이 다 학생들 등록금에서 나와요. 그리고 여자가 반이면 그냥 학생 휴게실 하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여학생 휴게실을 따로 만들라고 요구해요.

세계적인 추세로 여자 대통령도 많고 여권신장 세상이 됐는데, 진짜 남녀평등이 되어야지, 남자에 대한 복수가 되면 안 되죠. 여자는 대학 나오고 취직이 안 되거나 취직하기 싫으면 취집을 가면 돼요. 그렇다고 누가 욕하나요? 남자는 취직 못하면 사람 취급도 안 해요. 요새 젊은 남자들은 장가도 제때에 못가고 참 불쌍하죠.


-마광수표 인간해방론에 학생들이 공감하는지?


▲남학생들은 100프로 공감하는데, 여학생들은 안티가 많죠. 여학생들은 아직도 그녀들이 당하는 게 많다는 거죠. 근데 내가 보기엔 아니에요. 요새 여자 교수가 무지 늘었어요. 초등학교는 90 프로가 여자 교사고. 중고등학교 65프로 정도가 여자 교사예요. 신규로 배출되는 검, 판사의 70 프로가 여자구요. 행정고시도 그렇고요.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여권이 신장된 국가에요. 여성부까지 생겼으니까요. 여성부가 있는 나라는 없거든요. 그래서 그 정도 됐으면 남녀가 화해하는 시대로 가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포르노 반대 주장도 이상하단 말이에요. 여자도 포르노 보거든요. 그런데 전부 남자한테만 몰아 붙여요. 포르노가 남자 때문에 생겼다는 거죠. 그게 말이 되나요? 서구와 일본에서는 여성용 포르노가 나오는 판인데요. 여자가 포르노 보면 또 어때요.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게 그네들이 지향하는 여성상은 이조시대 여성상이에요. 신여성이 아닌 거죠. 그래서 여성이 성의 주체가 되는 내 소설 <즐거운 사라>를 욕했죠.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때 많은 논평들이 실렸어요. 인터뷰도 많이 했구요. 그네들은 그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불렀다고요. 여자가 주인공이고, 여자가 남자들을 골라서 따먹는 얘기 아녜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나를 나쁜 놈이라고 몰아붙였어요. 그들은 여성이 순결을 지켜야 좋은 거예요. 순결을 지키는 여자가 되기를 권장하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아니죠.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몇 번의 만남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은 현대사회에서는 ‘이미지’가 무척 중요한데 이런 사회에 곁과 속을 같게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야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것이 아닌가?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주장이 아닌지?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도 다 그런 게 사실이죠. 그런데 난 거꾸로 생각하는데, 이번에 출간한 내 소설 <미친 말의 수기>가 일종의 내 성장기거든요. 내 경험으로는 끊임없이 고독할 수 있어야만 사회적으로도 성공해요. 남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고 신경 쓰다가 보면 말라 죽어요. 난 그래서 지금도 문단정치를 전혀 안 해요. 어느 단체에도 소속된 데가 없고, 어느 학회에도 소속된 데가 없고, 어느 문학 권력에도 소속된 데가 없고 어느 동인(同人) 모임에도 소속된 데가 없어요. 물론 그래서 학교에서 왕따지요.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크게 손해보는 거 없어요. 책 낼 것 내고 그러니까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그러면 노이로제에 걸려요.

물론 사교의 기본 원칙은 친절해야 하고, 약속 지켜야 하고, 신의가 있어야 해요. 그러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한테 호감을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인간의 실존은 한마디로 말해서 <고독>이에요. 좋은 뜻으로 말하면 석가가 말한 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죠. 이걸 "내가 최고다." 라는 식으로 오만하게 해석할게 아니라 "오직 나밖에 없다." 이거죠. 루소의 <고백록>(우리나라에선 <참회록>이라고 번역되는데 그건 틀린 번역이에요) 첫 줄이 이래요 "오직나 혼자다." 나 혼자다, 나 밖에 없다, 이런 언명(言明)이 말하자면 아까 얘기했던 개인주의하고 연결되는 거예요.

개인이 먼저 확립돼야지, 전체에 휩쓸려서 많은 사람들 각각에게 내가 잘 보여야 된다, 이건 불가능한 거죠. 그건 대통령이 되도 힘들잖아요. 국민들마다 대통령을 보는 시각이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기본적인 신의(信義)를 지키기만 하면 돼요. 타인에게 친절해야 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하는 등 이런 것만 실천하면 되요. 억지로 사교를 해서 많은 사람을 내가 알아야만 성공하고, 또 항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어줘야 하고,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나중에 피곤해서 나가 떨어져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 고독해지는 데서 인생의 성공이 이루어진다고 봐요. 예컨대 옛날 성현들 보면 석가모니도 맨 처음엔 고행주의로 출발하잖아요? 힌두교 고행주의로 출발해서 수도했는데. 그럴 때는 동료가 많았단 말이죠. 그러다가 석가가 나중에 중도(中道)라는 걸 깨닫게 되요. 육체를 학대해서도 안 되고 육체를 너무 쾌락에 빠지게해서도 안 된다는 거죠.. 중용과 비슷한 얘기죠. 그래서 그때부터 고행을 끊어요. 밥도 먹고 싶은 대로 먹게 되죠. 그러니까 동료들이 다 그를 배신자라고 하면서 아예 파문을 시켰어요. 그래서 석가 혼자서 보리수 밑에서 6년을 명상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혼자 다시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 득도(得道)하게 되는 거지요. 예수도 마찬가지죠.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예수를 미워했어요? 그래서 예수를 죽인 거 아니에요? 그때 유행하던 종교적 유파(流派)에 휘둘렸다면 예수는 자유로워지지 못했고 그의 아이덴티티도 없어졌겠죠. 그러니까 그런 원리가 지금도 해당된다는 거죠.


-기존 사회나 사람들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 혼자 마광수 말 믿고 곧이곧대로 야하게 살다간 쫄딱 망하는 거 아니냐? 솔직, 솔직하다가 도리어 왕따 당하는 거 아니냐? 이런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존재합니다. 기성 사회에서 너 변태냐? 너 '또라이'지? 너 '미친X, 미친X'이지? 손가락질 당하며 매장당할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면?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더라도 상대방을 보고 얘기해야죠. 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고 얘기하는 거니까 일반 독자와는 상황이 다르죠. 개인이라면 누구랑 같이 있더라도 털어놓고 이야기 하지 말고, 친구를 믿지도 말고,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저 술이나 마시고, 여자 친구를 만나면 춤이나 추고 그래야죠.


-살다 보면 고민도 쌓이고 외롭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조언도 구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게 사람 아닌지?


▲그걸 참아야지요. 누구한테 털어놓고 얘기하며 어드바이스를 구한다든가 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해요.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다 이기적이라서 남보다 자기가 먼저라서 그래요. 형제지간에도 유산이 많으면 송사를 벌리고 난리잖아요. 그러니까 왕따 당할 것을 걱정할 것도 없죠. 작가가 된다면 모르지만, 작가가 아니라면 구태어 남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자신의 생각을 혼자서 간직하고 살면 되죠. 외로워서 친구가 필요하다고 할 땐 그냥 같이 놀기만 하면 되요. 남자끼리라면 술만 마시구요. 요새 여자들은 술보다 춤을 좋아하니까 춤이나 추러 가구요. 나도 친구들한테 너무나 많은 기대를 갖고 속 마음을 털어놓곤 했는데, 하나도 득으로 돌아오질 않았어요.

이런 얘긴 사실 처음인데 인터뷰할 때마다 뻔한 질문들만 하니까요. <미친 말의 수기>에서 내가 우정은 없다고 썼어요. 친구끼리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친구라도 둘 다 똑같이 사회적으로 잘 될 수가 없죠. 누군 잘 되고 누군 못 되고 하니까 질투심이 개입하는 거죠. 친구하고는 그저 같이 놀기만 하면 돼요. 나는 대학생 때 친구나 애인하고 '이빨까기'가 제일 싫었어요. 연애할 땐 <가자 장미여관으로> 식(式)으로 보디 랭귀지만 해야죠. 남에게 자기 고민 털어놔 봐야 남는 게 없어요. 괜히 남에게 자기 속만 보이게 되는 거죠.. 그렇게 속을 안 보이다가, 공자 식(式)으로 하면 40 세쯤 되어 뜻이 확고하게 섰을 때 글로 쓴다든가 해야죠. 하여튼 남한테 "내 말을 다 이해할 것이다." 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거에요. 부모도 마찬가지에요. 부모도 결국 자식을 이해 못해요. 나도 대학생 때 연애하다 안 되면 속 사정을 전부 다 친구한테 털어놔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곤 했지요. 그래서 훈수를 받아봤자 도움 될 거 하나도 없더라구요. 혼자서 가야 해요. 계속 혼자면 너무 재미없으니까 술도 같이 마시고 춤도 같이 추고 할 친구는 필요하지요. 다만 절대로 친구와 토론은 하지 말라는 얘기에요. 어드바이스도 구하지 말고요. 왜냐하면 다 각자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남 걱정 별로 안해주니까요. 동고동락이니 이런 건 절대로 현실성이 없어요.


-저 사람 좀 문제가 있다. 어렸을 때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것 같다. 왜 저럴까? 그래도 사인 받아두면 나중에 값이 올라갈 것 같다. 특히 학부모들은 ‘나쁜 물들까봐 걱정된다.’며 극단적으로 미워하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서 솔직한 생각은?


▲어떤 여학생이 내가 쓴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보고 완전히 가치관이 뒤바뀌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깜짝 놀랐어요. 이 책이 24년 전에 쓴 책인데 그게 지금까지 유효하다는 것에요. 작년 2010년에 개정판을 냈지요. 그 여학생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씁쓸하더라고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하나도 안 바뀌었다는 걸 증명하는 얘기니까요. 24년 전 꺼 가지고 <충격 먹었어요.>, 그래 이게 말이나 되는 거예요?

연세대 대학생들한테 이 비슷한 이야기 많이 들어요. 내 책 펼쳐놓으면 이상한 눈으로 본대요. 학부형들이 뭐 내 강의 들으면 '그런 이상한 강의 듣지도 보지도 마라.' 그런다는 거예요. 정식항의는 한 번도 못 들어 봤어요.


-마광수 문학을 읽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


▲읽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늘 나보고 변태라고 하는데 내가 뭐가 변태냐 이거죠. 참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는 사람들은 밤에 야동은 안 보나요? 다 봐요. 창남, 창녀(성노동자)한테도 가고요. 나는 어른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주 젊은 사람들까지 나보고 그러는 걸 보면, 성에 대한 이중성이 다 체화된 거에요. 그리고 대학생들 중엔 이런 건방진 얘기들 해요. 자기도 고등학교 때 포르노 봤으면서 "포르노를 고등학생들이 보면 안됩니다." 이러는 거예요. 또 "아, 내 여동생이 포르노를 본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합니다." 라고도 그래요. 자기도 사춘기 때 포르노 봤으면서. 남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오해는 금세 안 풀려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풀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젊은 마광수'가 안 나오거든요.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이에요. 글도 더 난해하고 더 현학적으로 쓰고요

그러니 기가 막힌 거죠. 20 몇 년 전엔 나보고 <시대를 앞서 갔다>는 얘기를 할만 했는데, 23, 4년이 지나도 지금도 내가 시대를 앞서가는 거라면 그만큼 이 사회가 뒤쳐졌다는 증거죠. 내가 죽더라도 우리 사회는 안 바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절망하는 거죠 한국 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하는 건 좋죠. 사실 발전도 아니고 지금은 침체지만 어쨌건 GDP는 올라갔으니까요. 정치는 많이 발전했죠. 적어도 유신체제는 아니잖아요. 군사독재는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왜 문화에만은 다원성과 표현의 자유가 없고, 윤리 문제는 완전히 조선조하고 똑같아요. 정말 미치겠어요. 그것도 젊은이들이 수구적 봉건윤리에 길들여져 있으니 한숨이 나오죠. 노인네들이 그런다면 이해가 가겠지만요. 그런데 젊은이들조차 그러니까 미치는 거죠. 연세대 학생들 일부가 한 20년간 성적 소수자 모임, 즉 양성애자와 동성애자 모임을 결성해서 투쟁하여 드디어 정식 동아리로 인정되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동아리 방까지 줬지요. 그랬더니 연세대 자유 게시판에서 난리가 났어요. 예수 믿는 애들이 그걸 반대한다고 완전히 난리를 쳤죠.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요.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닌 걸로 판명이 났는데도 그들을 정신질환자 취급을 하고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이제 기독교 독재 세상이에요. 조선은 주자학 독재로 망했고. 대한민국은 기독교 독재로 망할 것 같아요. 기독교도 아주 보수적인 청교도주의라 문제지요. 청교도주의가 마녀사냥을 무지 많이 했거든요. 미국 초기 역사에 마녀 사냥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나는 미국도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보면 한 가지 종교에 지나치게 몰두한 국가는 다 망하더라고요. 로마가 왜 망했느냐?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다가 그렇게 되었죠.

우리나라가 기독교 과잉이에요. 우리보다 기독교가 몇 백 년 먼저 들어갔는데도. 일본은 기독교 인구가 전 인구의 1 프로가 될까 말까하죠. 기독교만 믿으라고 강요할 순 없죠.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툭하면 강요하는 스타일로 나가거든요 "기독교 규범만 옳다." 이런 식이죠. 기독교윤리 실천본부라고 있어요. 기윤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마광수는 나쁜 놈이라고 그래요 이런 편협한 기독교 이데올로기가 한국을 망하게 하는 거죠. 한국을 발전시키려면 첫째가 자유 두 번째가 다원주의, 이게 실천되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 다원주의가 없어요. 문학에도 장르가 많은데, 추리, 공포, 에로틱, SF, 환상 등 다원주의적 장르 문학이 거의 없잖아요. 상 받는 거 보면 전부 리얼리즘 하나 밖에 없어요. 장르 소설은 온라인 작가들끼리 모여서 웹진이나 만들고 그러지요. 왜냐하면 문단에서 인정을 안 해주니까요. 그러다보니 문학 시장을 일본한테 완전히 먹히고 있는 거지요. 추리 , 공포, 에로티시즘 등의 문학 시장도 다 일본문학 차지죠.


-마광수는 변태, '또라이'다?


▲변태에다가 '또라이'요? 진짜 억울해요. 사실 변태면 어때요? 세계의학사전에서 변태란 말이 없어졌어요.. 프로이트가 잘못한 게 변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거라고요. 동성애도 정신병이 아니라고 하는 추세인데, 동성애는 사실 음양의 이치를 거스르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죠?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금 수용해 가는 판인데 변태가 어디 있어요? SM 섹스에 스와핑까지 하는 게 현실인데요. 말하자면 난 <모난 돌>인 셈인데, 우리나라는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에요. 그래서 난 <모난 돌은 좋은 돌이다.>, 이렇게 얘기하지요. 모난 돌이 뭐예요? 창의력이 있고 자신만의 개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거죠.


-보수라면 몰라도 진보에선 마광수를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말이 바로 그거예요. 차라리 내가 진보죠. 내가 진짜 진보주의자죠. 내가 잡혀가니까 진보 측에서 도와주긴커녕 나를 3S (sex, sports, screen) 정책의 추종자라고 욕했어요. 섹스 풀어놓고 영화 풀어놓고 스포츠 풀어놓으면 다 독재국가입니까? 그럼 북유럽 같이 포르노를 자유화한 나라들은 다 독재국가가 되야죠. 3 S 이론같이 그런 황당한 공식이 어디 있어요? 3 S 정책하고 독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문화적 선진국으로 갈수록 3 S죠. 그런 나라들이 다 독재국가인가요?

우리나라는 진보주의자들이 진보를 표방하고서 종북주의를 지지하거든요. 김일성 만세예요. 난 그걸 이해 못해요. 그리고 특히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는 찬성 안 하지요. 말하자면 포르노 해방에는 찬성 안해요. 황색 언론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진보입니까? 서양의 진보는 첫 째가 표현의 자유고 둘 째가 성해방이고 셋 째가 복지주의예요. 우리나라의 진보는 정체가 불투명해요. 그들은 수구적 봉건윤리를 주장하는 꽉 막힌 도덕만능주의자들이에요. 우리나라는 이게 잘못된 거지요. 언제나 음과 양이 균형있게 존재해야 되듯이 진정한 자유주의로서의 진보와, 합리적 지성을 가진 보수가 팽팽하게 맞설 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는 거죠.


-요새 초등학생들은 교과목으로 창의 교과서를 배운다고 합니다. 허나 만약 이 사회가 그대로라면 명목뿐인 교육이 실효성이 있을까요?


▲사회가 지금 그대로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창의력 발휘하다가는 왕따 당하죠. 창의를 하다가 다들 지치는 거죠. 나도 이젠 지쳤어요. 난 우울증 환자잖아요. 또 이젠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몰라요. 담배를 많이 피워가지고 더 그래요. 그러나 고생을 하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별 여한은 없다는 거지. 할 말 다 했으니까요. 너무 흔한 얘기지만 정말 <진인사 대천명>이죠.


-야한 정신 자체가 창의와 연관 깊다고 볼 여지가 많은데, 구체적으로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일단 시도를 해봐라.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고다.> 이게 대답이에요. 꼭 노력하는만큼 보답이 돌아와야 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정신병 걸려요. 보답은 절대로 금방 안 돌아와요, 내가 권하고 싶은 건 우선 솔직해지라는 거예요. 그리고 <네 멋대로 살아라.>구요. 그런 솔직한 놀이정신이 평생을 갈 수 있으면 어느 정도 이루게 되더라구요. 남 따라 가자. 나는 죽이고 남을 따라 가자, 집단을 따라 가자, 이렇면 살면 무난한 삶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만족감은 없죠. <야하다>는 건 '폭'이 넓은 개념이에요. <자연의 본성에 솔직하자.> 이거거든요.


-본인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대중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메시지가 다른 이유는?


▲그들이 솔직하지 않아서 그렇죠. 오리 집단에서 백조가 미움을 받았듯이. 한국에선 솔직하면 망하는 거라고 대중이 생각하는 거죠. 내 말은 자아정체감(identity)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 그걸 믿으라는 거에요. 각자 개성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해요. 우리나라 교육이 망하는 이유는 너무나 집단적인 교육이라서 그래요. 내가 중고교 학창시절에 제일 싫었던 게 아침 조회 때 교장 선생님이, <야망을 가져라, 비전을 가져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였어요. 너무 추상적인 얘기니까요. 한국 교육이 큰일 났어요. 우리 때 보다 집단적 획일주의가 더 심해요. 오로지 대학입시 준비뿐이에요. 대학을 가더라도 과(科)를 보고 가야되는데, 학교만 보고 가거든요. 서울대 국문과 교수에게 물어보니까, 서울대학이 좋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국문과 재학생들의 90 프로가 서울대 뺏지 달려고 온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전부 고시 공부만 한대요. 내 주변에서 의사들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친구 의사들한테 물어보면, 요새는 의사가 되어 개업을 해도 많이 망한대요. 왜냐하면 의사가 너무 많아졌으니까 그렇다는거죠. 의사를 마구 양산하잖아요. 앞으로 로스쿨 생기면 변호사도 많이 망하겠죠. 요는 인생을 너무 안전빵으로만 살지 말라는 거죠.


-지금껏 많은 인터뷰를 해오셨고 많은 언론인들을 통해 기사화되셨습니다. 섹스니 성해방이라는 도구 아닌 인간 마광수가 진짜 말하고픈 '인간 해방'이란 알맹이 자체는 이 사회에서 노이로제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길 중 하나인데 대체 왜 사람들이 안 따를까요?


▲집단에서 소외되기 싫어서죠. 남들이 욕하니까 나도 따라 욕하겠다. 내가 욕 안 하면 나는 왕따 당한다는 게 이유겠죠. 나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정말 재미없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토지>를 다 읽어본 척 하잖아요? 명작이라고도 하구요. 왜 그럴까요? 다들 모두 안 봤으니까요. 그리고 <한 권 보다가 그만 뒀다. 재미없었다.>고 하면 역적(?)으로 몰리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영화나 책을 선택해서 보지 않아요. 그러니까 매스컴의 장난에 놀아나는 거지요. 이 책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 달려가서 사고...... 이게 말이 됩니까? 왕따 당할까봐 할 수 없이 봤다고 거짓말하는 거예요.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자기 맘대로 고르지를 못하는 거죠.


-지난 삶을 정리해 본다면 자신이 걸어온 길에 만족하는지?


▲만족 못해요. 회한이 쌓였어요. 죽은 뒤에 유명해지면 아무 소용 없고, 살아 있을 때 나도 좀 재평가를 받고 싶지요. 제대로 문학인과 대학교수 대접을 받고 싶지요. 왜냐하면 제가 성담론의 선두주자 아니에요? 지금 성담론이 무지 유행한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사대주의가 무서운 게, 외국놈들이 쓴 성담론은 굉장히 칭송하죠. 헌데 내가 쓴 성 이론, 예컨대 <성애론> 같은 책은 그게 한국에서 유일한 성담론서인데도 되게 욕해요. 한국인들의 사대주의 정말 못 말려요. 유교가 판을 친 것도 사대주의 때문이고 기독교가 판을 치는 것도 사대주의 때문이에요 결국은. 한국은 이제 우리의 아이덴티티에 자존감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죠. 한국이 옛날보다는 부자 나라가 되었죠.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해서 겉으로만 자만하지 속으로는 다들 사대주의에 빠져있어요. 한국의 지정학적인 조건이 좀 그런가 봐요. 항상 중국한테 사대주의였고 해방 이후에는 이제 미국과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구요.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어릴 때 미국 구호물자 많이 받아먹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이 정도 살게 되었으면 적어도 일본 정도의 자부심은 가져야 된다는 거죠. 일본은 미국적 기독교에 그렇게 얽매여 있지 않아요.

나는 한국 사회에서 차가운 감자죠. 뜨거운 감자도 아니고. 학교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 내 생각을 좋아하는 애들이 많거든요. 강의를 듣고 나서 나에 대한 오해가 다 풀렸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애인과 연애할 때 내 얘길 하면 큰일난대요. 애인이 괜히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는 거죠. <당신도 변태에요?> 이런다는 거예요. 내 책을 안 보고 나를 멋대로 평가하는 거죠. 그걸 증명하는 게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이죠. 그 전까지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칭찬하더니 내가 구속된 다음부터는 막 조져대는 거에요. 언론이 사실 하이에나 아니에요? 내가 갑자기 역적이 돼버렸다니까요. 젊은이들이 성공하려면 나 같은 문화적 벤처 정신이 있어야 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이 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은, <홀로 가기 정신>과 <자유정신>, <남의 눈치 안 보기 정신>,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독립 정신>, <창조적 불복종>의 정신입니다.


-“세계의 천재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시리즈가 있습니다. 에디슨 : 전파상 주인 존 내쉬, 아인슈타인 : 정신병원 환자 빌게이츠 : 대기업 하청업체 사장 파브르 : 세상에 이런 일이 (곤충 아저씨 편), 스티븐 호킹 : 특수반 등등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 잘 묻어나 있는 것 같은데요. 학력과 돈, 인맥, 권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 교수님 실제 삶을 통해 바라본 견해는 ?


▲아,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아주 많이 들은 얘기에요. 그게 바로 한국이 획일주의 사회라는 것을 풍자한 거죠. 다 진짜 맞는 얘기에요. 파브르가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TV 프로에나 나올 거 같아요. 한국이 얼마나 집단적인 사회에요? 나 같은 놈이 왕따 당하는 것도 그렇죠. 나 같이 주장하는 이가 한 10명만 되면 절대로 왕따 안 당해요. 전과 다르게 성에 대한 정보가 철철 넘쳐도 나 같은 떠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무조건 집단주의에요. <어느 그룹에 끼어야 된다.>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다 생각하죠. 예컨대 <창작과 비평> 그룹이라든가 <문학과 지성> 그룹이라든가, 이런데 껴야만 선배들이 날 끌어주고 인맥이 많아져서 출판도 잘 되고 상도 받을 것이라고들 생각하죠. 고독하게 작업하려고 하질 않아요. 홀로 가며 고독한 데서 천재가 나오고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도 나오는 거예요. 모든 역사 발전은 개인적 반항에서 이뤄졌어요.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에 반항한 거죠. 프로이트는 당시의 성도덕에 반항한 거고,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과학이론에 반항한 거고요. 까뮈가 쓴 에세이집 제목이 <반항인>이에요. 거기에 스파르타커스도 나와요. 남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해요. 한국은 정말. 떼, 떼, 그룹에 끼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에요. 그러니까 집단주의가 설치는 거죠. 입만 열면 하는 얘기가 <뭉치면 산다>는 건데, 뭉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요. 개인의 개성을 죽여야 돼잖아요. 현재로서는 절망적이에요. 젊은이들이 더 수구적이니까요. 우리 때랑 비교해 보니까 요새 애들은 낭만정신이 없어요. 말하자면 벤처 정신이 없다는 거지요. 난 사실 한국의 미래에 기대를 안 해요.


-모두 쉬쉬하는 삶의 모습을 줄기차게 발언하고 관련 저술과 예술 활동, 강연 등을 해올 수 있게 해준 마광수 개인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나 철학, 소신, 신념이 있다면?


▲난 이미 확신이 서있었으니까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내가 내건 첫 화두인데, 서른여덟 살 때 일이죠. 그때까지는 나도 많이 헷갈렸어요. 교회도 나가보고 절에도 가보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죠. 40 전후에 가서야 겨우 나도 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된 거죠. 나는 관능지향형(型) 인간이라고 깨닫게 된 거죠.. 40이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니까 그때까지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평균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죠. 여담이지만 내게 대머리 유전자가 있어서 난 그게 억울해요. 여자는 요새 텔레비전을 봐도 늙은 연예인들이 하나도 안 늙어 보이더군요. 대머리도 물론 없고요. 남자는 가발 쓴 연예인 많지만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그 더운 가발을 왜 쓰겠어요. 애인이 생겨서 쓰라고 하면 쓰겠어요. 하하하. 여자들이 대머리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모자도 써봤는데 덥더라구요.


-인터뷰 인물을 추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 보기에 이 사람은 이 분야의 거장이다.' 아무 분야나 상관없습니다.


▲나도 피상적으로만 봤지 속을 모르니까 딱 부러지게 추천하기가 어렵네요. 음악 분야엔 한대수씨 같은 분이 있죠. 평생 한 길을 가는 분이라서요. 신촌에 살거든요. 지금도 아주 가난하게 살아요. 와이프가 러시아 사람인데 와이프 약값도 많이 들고요. 내가 볼 땐 음악인들로 추천할 분이 많죠. 신중현 선생도 그중 한 사람이죠. 신중현 선생은 음악의 영웅이에요. 그런 양반들은 별로 교제를 안 하고 홀로 서기를 한 분들이죠.


-기성 사회를 조롱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마광수를 기존 사회가 예쁘게 봐줄 것이라 기대하는지? 자기 잘난 맛에 자기 주장과 견해만 옳고 기성 사회는 틀렸다는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옳으니 너희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를 따르라!"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와 대중 안에서 소외와 고독을 느끼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은 아닌지?


▲절대로 아니에요. 제가 억지로 독창성을 내세운 게 아니라 여러 체험을 통해 내 주관을 펼쳤는데, 그게 다만 한국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거지요.


-기성 사회와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투정과 어리광을 아직 못 벗어난 것은 아닌지? 정말 탁 트여서 공자식 표현대로 불혹이 되어 미혹에 빠지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게 맞는지?


▲내 나이 벌써 60입니다. 투정과 어리광부릴 나이가 절대로 아니죠. 난 지금 내가 세운 가치관에 추호의 후회도 없어요.



-스스로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라면 행동하는 지성이 될 생각은 없으신지? 지식과 정보의 전달자 아닌 진짜 행동하는 마광수가 될 생각은 없으신지?


▲내 깜냥으로는 저서를 출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문답이 이뤄진 그 배경에 관하여
 
 
내가 한창 세상을 향해 묻고 답하고 할 때, 실제로 문답을 나눈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인물 인터뷰는 한 사람의 삶과 사상, 철학 등에 관해 솔직하게 논하기에 좋은 방편이기에 내가 실제로 만나고 싶은 인물들 위주로 인터뷰를 해나간 적이 있습니다. 다만, 매체에 따라서는 솔직한 인터뷰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 매체 대표, 담당 편집자 등의 개입이 있을 수 있기에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황입니다.
 

이 인터뷰 전에 마광수 선생과는 이외수 선생 소개로 2005년 12월 경에 이미 안면을 튼 상황이었고, 이후로 몇 년을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마 선생께서는 솔직한 유형의 인간이요 자기 길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였기에 나 또한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추구해온 자로서 솔직하게 묻고 답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거칠거나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실 겁니다. 문답 후 다소 감정의 뒤엉킴이 서로에게 존재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훌훌 털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문답 이후, 마 선생 자택에서 서로 맞담배를 피며 그간 지내온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게 지금으로 부터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토록 평생 염원하고 또 염원하던 <가상 현실>과 조우한 후 생사의 순간들을 수도 없이 겪는 과정에서 담배를 끊었으니, 앞으로는 다시는 마 선생과 맞담배 피울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느낀 마 선생의 철학과 사상은 양주의 사상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에 있어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주의 <위아>로 대표되는 철학과 사상이 <겸애>를 주장한 묵자, <인>을 강조한 공자 ,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주장한 귀곡자 및 그 문하의 손빈, 방연으로 대변되는 병법가, 소진, 장의 등 종횡가 등의 안티테제로서 인간 해방의 근원으로서 개인에 주목했다면, 마 선생의 <야한 정신>은 유교, 기독교, 집단주의 내지 전체주의, 한국식 민주주의(내 편이면 선, 내 편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관> 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인간 해방의 근원으로서 <미래, 본능, 쾌락, 개인, 자유> 등을 강조했다고 보여집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 중 한 명으로 마 선생을 손꼽습니다. 먼 미래의  그 어느 날에 마 선생의 삶과 철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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