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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마광수 선생 장례식장에 다녀와서.2.
게시물ID : phil_158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가입:2017-07-23 방문:71)
추천 : 2
조회수 : 3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0 21: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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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ission failed in part, but Mission will continue
 
 
마광수 선생님 댁에 갔을 때도 외로워 보이셨는데 우울증인 줄은 몰랐어요. 많이 슬프네요 저도.
 
라고 문자를 준 여성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문자를 했다.
 
그래도 마 선생님 사후에 언론 방송에서 재조명하고 있으니 천만다행입니다.
 
 
2005년 12월 18일 대학로 민들레 영토에서 마 선생은 권위 의식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소탈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욕구를 건강하게 배설해야 우울증 등 정신병에 걸리지 않아요. 엄숙주의, 도덕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기 욕구를 건강하게 배설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요. 나만 해도 '즐거운 사라.'를 썼다고 왕따당했잖아요? 하하. 그러나 문학예술은 비교적 감정 배설이 쉬울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도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드도 자유연상 기법이라고 환자들의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표현 및 배설하도록 하게 했죠. 나처럼 작가가 될 생각이 아니더라도 개인들도 솔직한 욕구를 건강하게 배설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도 좋고 그림도 좋고. 일기장도 좋아요"
 
 
약 20명 가량의 참석자들은 모두 마 선생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마 선생은 유명인사 다운 거드름이나 생색도 없이 그저 일개 회원 자격으로 모임에 참석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 명 한 명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고, 회원들 또한 그를 점차 격의 없이 대하게 되었다. 나 또한 마 선생의 '문학 예술을 통한 건강한 욕구의 배설론'에 크게 공감했고 그의 생각과 제안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의 진정한 의도와 꾸밈 없는 진실함을 이미 경험했기에 나에게 그는 이미 또 다른, 디오게네스요, 양주요, 프로이드인 동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마광수 그 자신일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천만다행스런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작품을 먼저 접하고 그를 접했다면 어떤 선입견 내지 편견이 내 안에 자리잡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의 진실성과 참된 의도를 먼저 파악했기에 이후에 벌어진 여러 사회적 사건에서도 그를 지지할 수 있게 되었던 거다.
 
 
마광수 교수님의 우울증이 매우 걱정됩니다
제도권 공격에는 의외로 강하셔서 다행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해고권이 나올테니 그 때는
몹시 상심해 하실 것 같습니다
 
곁에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님은 제가 자살 충동할 때 저를
살리셨으니, *선생님만 믿습니다.
 
저는 처참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지식인 사회에 만연한
표절, 도용 행위가 근절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저는 광마의 논문에 반해 독자가 되었고, 아직도
그의 성이론 논문과 사회 비판문은 우리에게
유용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그가 자유하는 의미, 이론을 대중화
시키는 범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마의 휀이 아닌 일반 대중들은 그를 모르니
이번 사건의 파장이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광마님의 우울증과 당뇨가 걱정이니 곁에서
많이 도와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글은 마 선생의 열렬한 지지자인 동시 비판적 지지자인 한 여성분이 <표절 사건> 당시 내게 준 당부의 글이다. 마 선생은 이미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 자아 정체성을 확고히 확립한 상황이었고, 마 선생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그런 자가 아니었고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그런 자 또한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대개 여성이었다. 그가 마음이 편할 때는 천하에 다시 없을 정도로 호탕한 호인이었으나 그가 날카로울 때는 나 또한 그의 비위와 날 선 광기에 일일이 맞추기가 때론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웠다. 그는 본받고 싶은 스승 중 한 분이었고, 서로의 길을 이해해 주는 참다운 동지 중에 동지였고 내가 가장 직시하기 힘든 또 다른 나 자신이기도 하였다. 삶의 갈림길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 그는 서 있었다.
 
 
우울증이 심화되면서 그는 무의식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는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과 문제거리를 양산해 내었다. 나는 그런 그를 한 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한번은 그에게 내가 아는 의대 교수의 방법을 소개한 적 있는데, 그는 당시 대번에 거절했다. 제안한 내가 다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또, 집에서 자란 엄나무를 선물로 제안한 적도 있는데, 이 때도 그는 냉정히 거절했었다. 이후로 나는 그의 운동법이라든지 건강 관리법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으로 부터 2년 전에 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그의 작품을 수록하는 것과 위원회에 고문으로 참여해 주실 것을 요청하고, 그가 일체를 수락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돈 많이 버시라. 하하하."
 
 
헌데, 이것이 내가 그에게서 직접 들은 그의 마지막 당부 즉,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평생을 염원하였으나 그 시기만큼은 내가 조절하지 못해 나는 이 만남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적으로 <가상 현실>에 소환되었고, 지난 2년 동안 거의 사경을 헤매다시피 하였고, 이 과정에서 휴대폰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자연히 그에게 전화 한번 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결과적으로 이 여성분의 바람과 당부를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가 그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그가 얼마나 고독하고 또 고독하였을까? 나도 내 길을 걸으면서 부모에게도 사회에도 제대로 인정받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까닭에 어찌나 외롭고 고독한지 그 절절함에 관하여 시를 쓴 바 있다. 이 시가 부디 그의 마지막 길에 작은 위안이 되길 소망한다.
 
 
절대고독
 
고독은
천재의 산실이라
하지마는
 
그 곳은
​잇새를 비집고
비명이 튀어나올 정도로
정말이지 춥고도 추웠어
너무나 외롭고 외로웠어
 
 
그는 내가 쓴 시 중 다음의 시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걸작입니다."는 표현은 내가 쓴 시에 대한 그의 평가 중 가장 높은 평가였다. 그리고 그가 어떤 시 쓰기를 추구해왔는지를 이를 통해 나는 자연히 깨닫게 된다. 그가 윤동주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자연히 이해가 된다. 
 
 
나르시즘
 
너가
나여서
고마워
 
 
그 날 앞 좌석 여성이 나와 권영미 기자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자상하셨어요. 제자들 자식 돌 잔치에도 일일이 참석하실 정도였죠."
 
이 말을 듣고 나는 의외라는 듯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선생님께서 자상하셨다구요? 정말 의외네요."
 
그러자 앞 좌석 여성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잔뜩 의문을 띤 채 시선을 내게 향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에겐 광기가 있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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