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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언어...
게시물ID : phil_15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ishCutlet
추천 : 6
조회수 : 743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7/10/09 19:56:49
1.
몇년전, 오늘의 유머에서는 김여사 논쟁이 크게 일어났다.
'김여사'라는 말이 여성혐오인가 아닌가.
이 자체는 이미 식은 논쟁이기 때문에 내 의견을 밝힌다면,
'김여사'는 명백한 여성혐오의 언어라는 것이다.

'김여사'가 왜 여성혐오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그 말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다.

1)운전하면서 여성이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2)문제를 일으키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지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3)'여사'는 여성에 대한 존칭이다. 욕이 아니므로 혐오가 아니다.

4)무개념 남자 운전자도 '김사장'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5)나는 여성을 싫어하지 않고 여성들도 흔히 쓰는 말인데, 다 여성혐오자란 말이냐

하나씩 살펴보자.

                                                                                                          

1)'운전하면서 여성이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인식 자체가 편견이다. 
설령 통계적으로 남성의 교통사고 발생율보다 여성의 교통사고 발생율이 높다는게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운전을 개념 없이 하는 사람들은 여자'라는 일반화를 해서는 안된다.

입장을 바꾸어보자.
강력범죄는 여성이 저지르는 경우보다 남성이 저지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통계적인 진실이다.
그렇다면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표현이 용납이 되는가?
안된다면, 왜 '무개념 운전자는 여성'이라는 편견이 담긴 '김여사'는 용납해야 하는가.


2)'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지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여성을 '도로 위의 잠재적 문제'라고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여성을 점잖게 이르는 말일 뿐이라면,
운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사진도 아무렇지 않게 김여사 짤방이라고 돌아다니는 것일까?
hqdefault.jpg
이렇게 물으면 '운전자가 여성이었으니까 김여사 짤방이라고 올라왔겠지'라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확인도 없이 지레짐작으로 '여성이 저지른 짓이겠지'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게 편견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다.


3)'여사'는 여성에 대한 존칭이다. 멸칭이 아니므로 혐오가 아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여성들만 지칭'한다는 주장과 모순되는 주장이다.
'김여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여성을 가리키는 조롱조의 단어이므로 분명히 멸칭이다.
존칭이 멸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존칭이니까 혐오표현이 아니라는 주장은,
'가카' '레이디 가카' 같은 말이 원래는 존칭인 '각하'에서 나온 말이니까
비아냥과 조롱이 아니라 존경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존칭을 멸칭으로 쓰는 것은 그 권위를 부정하고 깎아내리기 위함이다.
'김여사'라는 말을 경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과장과 비약을 보태어 말하자면,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무슨 사회진출 한다고 나와서 차 몰고 다니다 사고나 일으키냐'는 인식이 담긴 말이다.


4)무개념 남자 운전자도 '김사장'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무개념 운전을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은 있는데, 남자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는데 대한 반론인데,
'사장'은 남자를 높여서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남자 사장만 있는게 아니라 여자 사장도 있다.

애초에 '여사'라는 말에 대응하는 남성명사는 없다.
여성명사인 여사님, 사모님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적이던 시절,
여성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은 집안이 좋거나 남편의 지위가 높은 경우였기 때문에 등장한 존칭이다.
반면에 남성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은 대부분 본인의 실제 지위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별도의 남성명사가 아니라 사장님, 회장님 같은 일반 명사가 존칭으로 자리잡았다.

실제 사회적 지위와는 큰 관계 없는 '선생님'도 남성에 대한 존칭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존칭으로도 많이 사용되는 일반 명사이므로
'여사님'에 대응하는 단어라 하기 어렵다.

그나마 여사-신사, 사모-부군이 가장 가까운 남성명사라고 생각되지만, 신사의 경우 존칭으로서 기능은 거의 상실했고,
어찌되었든 굳이 '김여사'를 쓰겠다고 '김신사'든 '김사장'이든 어색한 단어를 만들어 보급해 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황당한 논리다.

5)나는 여성을 싫어하지 않고 여성들도 흔히 쓰는 말인데, 다 여성혐오자란 말이냐
여성혐오라는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반응이다.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정신병적 증상을 말하는게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젠더 폭력, 그 중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여성혐오라고 부른다.

'김여사'가 여성혐오적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다 여성혐오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꽝, 와루바시, 국민학교, '한국인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같은 말들이 일제의 잔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런 말을 쓴 사람들이 다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해서, 이런 말들을 청산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자신이 여성혐오자가 아니니 김여사도 여성혐오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니 다꽝도 겐세이도 우라바시도 다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르고 쓰거나 오랜 습관을 벗지 못해서 실수를 반복할 수는 있지만,
그런 비판을 받을 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잘못된 것을 올바른 것으로 왜곡하는 것은
알고도 일부러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큼 악질적이다.
                                                                                                          

김여사 논쟁은 '쓸데없이 이런걸로 콜로세움 세우지 말고 그냥 쓸사람 쓰고 말사람은 말아라'는 식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김여사 관련 게시글은 한동안 뜸하다가, 근래에 들어 다시 점점 많이 등장하는 추세이고,
당시만 해도 메갈이 등장하기 전이어서, 페미니즘이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극단적인 페미니즘이 잘못됐다는 거라던 사람들이
메갈이 등장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라는 조롱이 넘쳐나고
페미니즘이니 여성혐오니 하는 말만 들어도 경끼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져 안타까움을 느낀다.




2.
얼마전 '일단 쿵쾅대고 보자'는 글의 제목에 대해서,
'쿵쾅'댄다는 건 외모 비하적 표현이니 자제해 달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200개 가까운 비공감을 받았다.
당장 구글에 쿵쾅을 검색해보자. 바로 아래에 메퇘지가 뜨고,
파오후를 비롯해 수많은 외모비하적인 혐오표현들이 쏟아져 나온다.

"헐... '쿵쾅쿵쾅' 이란 단순한 의성어가 외모비하 표현이라구요?? 황당하고 놀랍네요 진짜;;;;;
이러다간 쓸 수 있는 말이 사라질 지경"
"논제: 쿵쾅거리는 건 과체중인 사람들이다.
예외: 윗집 애들이 또 쿵쾅대며 뛰어다니네.
논제는 거짓."
이런 댓글이 달렸다.

물론, 외모 비하적인 표현을 비판하는 댓글이 훨씬 더 많이 달렸지만.
내 심정에 가장 가까운 댓글을 하나만 인용하자면...
"진짜 유치하네요.. 그래서 지금 쓰인 쿵쾅거린다의 의도가 전혀 뚱뚱함의 의미를 담지않은 표현인가요?
정말 양심걸고 그런의미 전혀없다고 말할수있으세요?"


3.
내가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 중에서 오유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진지할 수 있다는 것.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 돌아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성희롱, 성차별, 고인모욕, 지역차별, 종교적차별, 정치적차별, 외국인혐오, 온갖 혐오표현들이
'유머'라는 미명하에 아무렇지 않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일상 다반사다.
일베, 주갤, 야갤 같은 극단적인 사이트 뿐만 아니라, 웃대나 루리웹 같은 비교적 평범한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나도 유머를 좋아하고 엄숙주의를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허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머에 성역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약자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혐오를 확산시키는 유머는, 유머가 아니라 폭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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