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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게시물ID : phil_163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ishCutlet
추천 : 4
조회수 : 88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2/27 23:18:55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인 나에게도 그렇고, 여자에게도 그럴 것이다.

성이란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고 들춰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좀 해볼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렇다할 끔찍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우리 사회 어디서나 흔히 벌어지는 정도의 경험을 했을 뿐이다.
내 어린시절을 돌이켜 생각한다고 해서 딱히 고통스럽지는 않다.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들어 미간이 조금 찌푸려지는 정도일까.


물론 경험이란게 지극히 사적이고 협소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 어디서나 흔히 벌어진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교차점이 별로 없는 여러 지역, 집단, 단체, 여러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나로서는 그냥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냥 내가 좀 유난히 예민하고, 까다로울 뿐.





이를테면 내가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
고추는 오줌 나오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성이 뭔지도 알지도 못했을 때,
10살 가까이 많은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떤 형이 나를 외진 곳으로 데려가
자신의 고추를 보여주며 빨아보라고 했었던 일.
나는 오줌=더럽다는 정도의 가벼운 생각으로 싫다고 했고,
왜 이런 이상한 짓을 하지?라는 짧은 의문을 남기고 기억 속이 묻어두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그 당시 그 형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런 행동들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 그 기억이 파헤쳐졌다.
몇년이나 지난 기억이 다시 떠오른 순간은 소름돋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해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적 욕구는 주체할수 없이 솟아오르는데 어디로 분출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지.
아직은 어리니까, 그게 잘못인지조차 깨닫지 못한거지.

어려서 저지른 흑역사가,
아무것도 모를것 같았던 그 다섯살짜리 꼬마가 다큰 성인이 되어 아직까지도 그일을 기억하면서
만날때마다 싫어도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건 알고 있을까?




이를테면,
내가 어렸을때 살았던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는 정말 꾸부렁한 호호 할아버지였다.
내가 유치원생이었을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오토락이 없던시절 목에 걸고다니던 열쇠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나온 날이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형이나 엄마를 경비실에서 기다리곤 했다.
고추를 보여주는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정도의 개념은 생긴 이후인 나에게
그 경비 할아버지가 고추한번 만져보자고, 구세대에겐 그닥 추잡할 것도 없을지 모르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할아버지가 정말로 만지려 들었다는 점이었을까.





이를테면,
내 초등학생 때의 별명은 000였다.
000라고 밖에 쓸 수 없는 것은, 특별할 것은 없다고 말하는 내게도 이것만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그 단어를 키보드로 입력하고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려서 더이상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함을 
방금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별로 대단한 별명은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흔히 하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단어로 지은 유치한 별명이었다.
우연히도 내 이름의 발음이 젖가슴을 저속하게 부르는 말과 발음이 비슷했을 뿐이다.
그 별명 이전에도 이름으로 지은 별명은 많았다. 예를들면 성이 같으니까 전두환, 전두환이니까 대머리 같은 식으로.
아이들은 원래 남을 비웃고 놀리길 좋아한다. 그렇게 서로를 비웃으며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하면서,
서로를 병신 취급하는게 심리적인 벽을 허물고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배우는 모양이다.
내 경우는 전두환이 그런 놀이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조금씩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남녀의 신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10살 무렵의 어린이들은
갑자기 성적 호기심이 폭발해 미쳐버리는 모양이었다.
전학기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하는게 가능하던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돌연 빠구리라고 짖어대는 짐승으로 돌변해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으니까.
짐승이라는게 저속하다는 비아냥이 아니라, 친구들은 정말로 짖었다. 말이 아니라.
서로 엉덩이에 사타구니를 갖다대며 빠구리라고 정신없이 외쳐대는 것으로 여자아이들의 어그로를 끄는 걸 즐겼다.
그 밖에도 고전적인 아이스께끼나 브라 잡아당기기 같은, 나로선 이해할수 없지만
그들에겐 아마도 큰 흥분과 희열을 안겨주었을 그런 놀이를 하며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통에
전에 하던 평범한 화제로는 그들 틈에 끼어들수도 없었다.

단지 그들 틈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 뿐이라면 별로 상관 없었다.
여전히 그렇지 않은 멀쩡한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등하교길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수 있는 짬지 자지 보지 SEX 같은,
한문장조차 이루지 못하는 저능아 수준의 낙서들.
그런 낙서의 연장선에 000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낙서는 어느집 담벼락이 아니라,
내 책상, 내 교과서와 공책, 우리반 칠판과 벽에 그려졌다.
교과서란 교과서는 전부 싸인펜으로 커다랗게 젖가슴을 그려놓은 통에,
나는 교과서 표지를 전부 찢어 버렸다.

처음엔 나와 가까웠던 친구들이 시작한 거였다.
내가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걸 즐기는 거라고 곧 깨달았기에, 내가 반응하지 않은 이후로
그 친구들의 심한 장난은 학기말쯤은 줄어들었고, 반이 바뀌고선 그런 별명으로 부르는 일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000라는 별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친하면서도 자주 싸웠던 친구 하나는 자기 심사가 꼬일때마다 000라고 내뱉았다.
잊힐만하면 한번씩, 나랑 친하지도 않은 놈들이 000라고 소리지르고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거나,
나는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쟤가 000라며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경험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겪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중학교에서는 그런일은 당하지 않았다.
남자 중학교로 진학했음에도, 나와 같은 중학교로 배정된 동창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왕자지라거나 좆, 지보 같은 나보다 더 노골적이고 낯뜨거운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거고,
(아직까지도 이해할수 없는 것은, 그 친구들이 그 별명을 어느정도 즐겼다는 점이다.)
관심을 끌만한 여학생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거다.

다만 초등학교에서 겪었던 일은 딱히 그 집단이 특별히 이상해서 그런 것은 아니란건 분명하다.
나는 중학교때 이사해서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에서 다니기 시작했던 학원에서 어느 누군가 내 이름을 듣더니 000를 연상하자마자 그 별명이 빠르게 퍼졌으니까.
나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다행인건, 당시 중학교는 뺑뺑이로 배정되는 거라 사는 동네랑 상관 없고,
그 학원에 나를 아는 우리 학교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4학년때 체육 선생. 이 경우는 내겐 딱히 피해를 준 건 없었지만,
체육수업시간에 여자아이들의 엉덩이를 만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소문이고 자시고 간에, 철봉에 매달리는 걸 돕는다는 명분으로 당당히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모두가 봤으니.
남자애들은 아무리 잘 못해도 결코 도와주는 일이 없었고, 잘하는 여자아이라도 굳이 엉덩이를 밀어 올려주는 경우는 숱하게 많았으니
아이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겠지.
내 기억속에 미친 초등학교 선생은 여럿 있지만, 성적인 케이스는 이사람이 유일.

중학교 때는 남학교라서 그런지 선생님들은 수시로 음담패설을 했다.
누가 뭘했는지 일일히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패륜에 가까운 야한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체벌로 부랄을 만지작 거려서 아이들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선생도 있었고,
그밖에 갖은 말과 신체접촉으로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선생이 많았다.

그런 행동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뚱하고 반항적인 우울한 중2 남자애들의 관심과 호의를 사기 위해서 성적인 농담보다 더 좋은 자극제는 없을테니까.
하지만 동급생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아이들에게도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었을까.





이를테면,
군시절 내 옆자리를 쓰던 1년 선임.
자기 전이면 내 귀에 바람을 불어넣거나 속눈썹을 건드리는 장난을 쳤다.
머릴 쓰다듬거나 껴안을 때도 있었다.
처음엔, 사람 자는데 성가시게 왜이러나 정도였다.
1년이나 선임인데다 평소엔 미안할 정도로 친절 했기에 불평하기 어려웠다.

갈수록,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미묘한 수준에서 점점 더 심해졌다.
목을 간지럽히거나, 무릎을 만지거나. 내 허벅지 위에 자기 다리를 올린다거나.
귀에 불어넣는 바람이 그냥 호 불어넣던 것을 뜨겁게 하 불어넣는다거나.

미지근한 물에서 개구리를 끓이듯이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런 쪽으로 심해져갔다.
마지막은 그 놈의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려 할 때였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구를 걷어차고 뛰쳐나갔다.
불침번이 왜그러냐고 물었을때 나는 너무 더워서 그렇다고 말하곤,
허락을 받아 창문이 가까운 자리로 침구를 옮겼다.
사실은 추웠는데 말이다.

이후로는 신체적 접촉은 없었지만, 그 선임과 동기였던 분대장이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몰라도
내 침구 자리를 옮겨 주었다.

좀 소름 돋았던 것은, 전역하고 싸이월드에 접속하니 1년이나 먼저 전역한 그 선임이
지금쯤 전역했겠네 꼭 보고 싶다 연락해라 며 전화번호와 함께 1촌 신청을 보내왔던 거다.
그리고 그 선임은 아직도 내 페이스북 친구 신청 대기 목록에 남아있다는 사실.

그 선임이 동성애자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뮤직뱅크나 음악중심 보면서 걸그룹 나올때 '우와 저 빨통봐'라며 감탄하던 것이
진심인건지 아니면 일부러 꾸며낸 것인지도 잘 모른다.
확실한 건, 나는 성추행을 당한 것이고 그 선임은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 1년 선임보다도 6개월정도 더 선임인 행정병.
내가 자대배치받았을때 아마 물병장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행보관의 오른팔이기도 해서 중대에서 가장 실세라고 할수 있었던 인물.
갓 전입 온 나에게 '너 아다니?'라고 물었다. 흔한 신병 골탕먹이기.
나는 그때 아다가 무슨말인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4개월 후임이었던 어느 운전병. 말이 많았던 이 친구는 자기가 여자친구랑 섹스를 어떻게 했는지를
소대원들에게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며 말해주는걸 좋아했다. 여자친구의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성생활을 그 남자친구의 입으로 듣는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져서
자세히 들은건 거의 없지만, 워낙 크게 이야기해서 기억에 남은 한가지 이야기는
섹스를 하면서 여자친구 휴대폰의 무작위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통화하게 했다는 이야기.
사귀는 사이에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배려한다면 어떻게 그런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둘이 좋다고 그렇게 했다면 내가 할말은 아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소대원 전부가 그 여자친구의 성생활을 알게된다는 건 괜찮은 건가?





이를테면,
분대 2개월 선임 A과  내 맞선임 B, 내 맞후임 C.
셋이서 함께 주말 외박을 갔다온날, 맞후임 C와 함께 야간 근무를 섰는데,
이 친구가 웬일인지 너무나 싱글벙글하고 들뜬게 느껴져서 뭐 좋은일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게 있습니다ㅎㅎ 이런 알듯 말듯한 애매한 반응.
마침 다음날 근무가 2개월 선임 A와 잡혀있어서 더 캐묻지 않고 있다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A가 C의 아다를 떼줬다는 이야기.
A가 C랑 했다는게 아니고...

함께 외박을 나온 A,B,C를 A의 절친인 여자 D가 마중을 나와 함께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꽐라가 된 여자 D와 B,C가 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사실이라면 A는 B,C와 함께 지 친구를 윤간한거고, 거짓말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자랑이랍시고 떠벌일수 있는 인간이라는 거지.
이런걸 친구라고 친하게 지냈던 내 자신에게 토가 쏠렸다.





이를테면 내 대학 동기Z.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나름 괜찮은 대학을 다녔다.
그래서라고 할지, 아니면 군에서 만큼 붙어지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군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말수가 적은 나라도 반나절은 이야기 할수 있겠지만,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대학 친구들에 대해선 이 주제로 할 말이 그렇게 많진 않다.

Z는 훤칠하게 큰키에 잘생긴데다 똑똑하고 젠틀한 태로를 겸비한 인간이라,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정말 인기가 많았다.
어스레한 저녁, 동방에 나를 포함해 남자 셋이 저녁을 먹을까하며 멍때리고 앉아 있던 때,
Z가 툭 던지듯 말했다. "아 존나 강간하고 싶다. 지나가는 여자 존나 잡아다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서 강간하고 싶다"

농담이다. 분명히 농담이었다.
같이 있던 X도 말했다.
"ㅋㅋㅋㅋㅋ이 미친 새끼 내 이새끼 또라인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니까. 내가 말했지 넌 내 과라고. 너도 또라이야 이 새끼야"
친구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Z가 생판 남에게 그런 이야기 할 사람도 아니고, 뒤에서라도 그런 짓을 할만큼 도덕관념이 없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도덕관념과 섹스판타지는 별개고, 섹스판타지를 말하는게 꼭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나도 어떤 성적 판타지를 가지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다 사회적인 허용범위 안이라고 할 자신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걸 말로 꺼내고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그게, 남을 짓밟는 폭력적인 행동에 관한 거라면.






이를테면 18살 많은 졸업생 선배.
같이 학교다닌 적도 없으니 그리 자주 볼일은 없는 사람이지만,
동아리 졸업생 초청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당시 졸업생 대표를 맡은 선배와 몇번 술자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별로 평판이 좋은 선배는 아니었다. 그보단, 그 선배에 대한 나쁜 평판을 내가 퍼뜨렸다.
의욕은 앞서는데 현실 인식은 뒤쳐져서 자기랑 일하는 사람들 힘들게 만드는 타입.
경험상 평균 50명 내외의 졸업생 참석이 예상되는 동아리 행사에, 자기가 대표 맡았으니 150명 오게 만들겠다며
기념품 150인분을 준비하라고 시키는 사람이니 악의적으로 나쁜 평판을 퍼뜨린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행사를 준비하며 선배들과 가진 두번째 술자리에서,
서로 잘 안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이 사람이 피곤한 타입이구나 라는건 충분히 알게되었을 때 쯤.
CC인 회장이 먼저 집에가자마자 같이 있던 그 남자친구에게 '너 회장이랑 잤냐?' 같은 걸 물어보는
눈치도 없고 개념도 없는 쓰레기.

각자 다음날도 있어서 졸업생 초 고학번 선배들은 이미 다 귀가하고 재학생 후배들도 이제 파장하고 쉬어볼까 할때 쯤,
눈치도 개념도 없는 이 졸업생 대표라는 인간은 끝까지 남아 기어이 3차를 가고 싶어했다. 그것도 도우미 나오는 노래방으로.
자기 마누라랑 아들이랑 셋이 찍은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을 걸어놓은 인간이,
20살 가까이 어린 후배들을 데리고 도우미 나오는 노래방이 가고 싶을까?
자기가 가고싶은걸까, 아니면 젊은 친구들 환심을 사서 어떻게든 어울려서 젊은 기분 내고 싶다는 객기일까. 아마도 둘 다.

뭐든간에, '그건 좀 아닌거 같아요.' 라고 답했다. 끝은 얼버무리며 내일 평일이라 수업도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못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날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본다.
뭐 어쩌라는건가 싶어 벙찐 사이, 후배들 몇몇은 틈을타 각자 집으로 도망치고 몇몇은 이 진상을 집으로 보낼 택시를 잡는 사이,
갑자기 내 얼굴을 붙잡더니 입술박치기를 하려 들었다.
사람 치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멱살을 붙잡고 밀쳐내는 정도로 제지 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그 새끼의 죽빵을 날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마침 친구들이 잡아놓은 택시에 진상을 실어 보내고, 나는 다음날 간결하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있었던 일은 굉장히 불쾌합니다. 사과하세요.'
돌아온 답장은 정말 구질구질했다.
술이 웬수다, 잘 기억이 안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하다, 한번만 용서해 달라
같이 행사도 잘 진행해야 하니 다른데는 말하지 말아달라 등등.

단톡방에 다시 올렸다.
'어제 같은일은 다시 없었으면 합니다 선배님'
이번에 올라온 답장은 매우 간결했다
'미안혀 다신 안그럴게^^'
'뭔일 있었어?'
'어제 내가 술이 많이 취했어^^'

어쨋든, 행사고 나발이고 내가 그 사람을 보는 일은 두번 다시 없었다. 동아리 기념 행사 같은건 안가도 그만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아리가 아니라 직장이라면. 학생이 아니라, 밥줄이 걸린 직장인이라면. 선배가 아니라, 직속 상사라면.
그 또라이 선배랑 같이 일하고 있는 부하 직원들은 어떨까.




나는 남자로 태어났고, 같은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아마도, 어떤 부분들은 결코 알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다른 남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건, 세상엔 나보다 더 끔찍한 사건을 겪고 살아온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그리고 그런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는 사람은 발에 채이게 많다.
뻔뻔하게 얼버무리는 가해자, 가해를 가해라고 인지조차 못하는 가해자, 당한건 악착같이 기억해도 가한건 하나도 기억에 남기지 않는 인간들.

악행의 기억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들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가해자를 옹호한다.
거봐, 너도 똑같은 인간일 뿐이잖아. 너는 뭐 다른줄 알았냐.
증거있냐, 증명되지 않는 피해자를 옹호하는건 언더독이다.

등등.



미투 운동은 다른게 아니다. 세상이 말하지 못하게 했던 것을 말하는 것.
누가 말 못하게 했냐고? 지레 말 못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안다. 그 무엇도 말하기 쉬운 것은 없다.
당장 미투 운동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 못지 않게, 고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여론으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증거와 법률로 판단해야 한다고.
성범죄의 상당부분은 증거조차 남지 않는다. 그 순간의 말, 그 순간의 신체접촉이
지나서 아니라고 잡아떼면 없는일이 되어버리고, 당한 사람이 꽃뱀 취급을 당한다.

미투 운동으로 누군가 지목되고 고발당한다고 해서 누구나 법률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엔 분명히 억울하게 무고로 지목 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할 거다.

그러나 증거 없는 내 경험과 직관이 말하는 것은, 미투 운동이 적어도 그들이 믿는 것보다는 훨씬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세상엔 그만한 수의 말못하는 피해자들과, 말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답은, 그동안 억울하게 참아왔던, 억눌러왔던 피해자들을 다시 닥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무고를 막는 방법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죽이는 길일 뿐이다.

미투 운동을 중지시키는 것이 무고를 막는 것이 아니라,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범죄행위들을 가능한 정확히 조사하고 낱낱히 밝혀내는 것이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무고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사라진 증거와 정황들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때로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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