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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 힙합과 문학의 리얼함에 대하여
게시물ID : phil_16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ribint
추천 : 2
조회수 : 78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3/05 23:29:58


힙합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리얼함이다.
리얼함의 정의는 여러 가지로 내릴 수 있겠으나 대부분 다음의 두 가지 성질을 내포한다

1.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발화와 행동
2. 리스크를 감수하는 정도

이는 스윙스가 유명인으로서의 자신이 구설에 오를 것을 알고도 옥타곤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솔직하게여성과 키스를 나누었다는 것, 그리고 '옥키남'이라는 구설에 대해 "자신이 맞다, 자주 그랬다."고 자랑스럽게 인정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윙스.png

이와 같은 모습들은 힙합에서 '멋있는' 것으로 취급되며 리스크를 감수하므로 용감한 행동이다.

또한 사회 내의 인간 개인에게 가해진 모든 도덕적 억압들로부터 벗어난, 날것의 자유에 대한 원시적인 외침이기도 하다. 처음 보는 이성과의 자유로운 키스나 원나잇은 사회적 질서의 잣대를 댔을 때 약간 빗나가는 일이 될 수 있지만, 원시적인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나 욕망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래퍼들은 이러한 가사를 뱉거나 행위를 함으로써, 모든 도덕을 내려놓고, 추악하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며, 정제되지 않은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그들이 비도덕적인 가사를 관객의 눈앞에서 마이크에 대고 뱉어버리는 것은 마치 직장에서 시달린 사회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넥타이를 벗어 던지는 모습처럼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래퍼들은 그 솔직함이 지나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보편적 도덕을 넘어서 법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블랙넛.png


래퍼 키디비에 대한 블랙넛의 성희롱적 가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몇 번 계속되었다.

결국 키디비가 블랙넛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나, 많은 힙합 팬이 이 상황을 두고 리얼함에 대해 리얼함으로 받아치지 못한 키디비를 비판해야 할지, 아니면 정도를 넘어선 리얼함을 저질러버린 블랙넛을 보편 인권을 위해 비판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리얼함이 만드는 가치 판단의 혼란은 블랙넛의 가사에서 그치지 않는다.(블랙넛이 그 중 두목급이긴 하지만)
근래의 여성주의 운동에 힘입어 많은 힙합 가사들이 힙합 씬 내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슬릭.png
<슬릭-마이크스웨거>


이는 용감함이라는 코드가 힙합에서 '남성적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힙합 음악에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곧 용감함으로 해석되며, 그것은 다시 그가 얼마나 남성적인가로 치환된다. 이 과정은 리스크를 짊어진 래퍼를 향해 '그는 진짜 남자야.' 라고 힙합 팬이 칭송하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리스크를 감당한 래퍼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래퍼들을 '여성적이다.' 라고 비난하면서 이루어진다.

힙합 음악의 상당수가 여성 혐오적인 단어들(mo-fu*ker, bi*ch, pu*sy)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리고 슬릭과 제리케이를 필두로 한 일부 래퍼와 힙합 팬들이 이와 같은 표현들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리얼함의 가치는 힙합 세계 뿐만 아니라 문단, 정확히는 시인들 사이에서도 통하는 듯 보인다.
우선 문단 외에서 시인들의 세계에 대해 평가한 말을 보자.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인이 약속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내 앞에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껍데기와 앉아 있는 것이니까."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png


시인의 삶이란 래퍼의 삶과 같이 자신의 시 세계가 표현하는 자신과 일치된 정직한 삶이다.

다만 래퍼와 달리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날것의 언어는 아니다. 시인들의 솔직함은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픽션인 문학 작품 안에 감정의 채도를 어느 정도로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즉, 필요 이상의 슬픈 얼굴도, 필요 이상의 웃는 얼굴도 모두 거짓인 것이다. 시인의 참된 마음가짐이라 함은 역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진실된 표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실함을 문학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자체도 어느 정도 도덕이나 법치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시인 뿐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서 배어나오는 성질로, 홍상수 감독의 불륜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시인들은 그 중에서도 힙합처럼 자신의 자유를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만큼 자유로운 날것의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깊이 연구하고 수행하는 이들이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박진성 시인에 의해 폭로된 고은 시인의 기행은 그야말로 리얼함 바로 그 자체였다.
이제는 문단 뿐 아니라 힙합까지 점령해버릴 듯한 리얼함으로 "역시 한국 예술계의 대표는 노벨상 후보 고은." 이라는 메시지를 전국적으로 떨친 것이다.

박진성 폭로.png

동석한 여성 셋과 남성 둘 앞에서 갑자기 성기를 꺼내 흔드는 고은은, 래퍼들이 감히 흉내낼 엄두조차 못 낼 정도의 리얼함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넥타이를 벗어던진 정도가 아니라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뜯어먹고 침대에 오줌을 싸는 수준이었다고 하겠다. 고은은 날것의 인간으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라 '호모' 속(屬, Genus)이 막 시작된 무언가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 라는 발화를 던지는 것은 리스크를 짊어진 시인이 리얼함을 친절하게도 후배 시인들에게 몸소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그 누구도 그걸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역시 하나의 학문의 정점에 이른 스승답다고 하겠다.

스윙스 역시 control 대전 당시 "누가 나만큼 할 수 있냐?"며 수많은 래퍼들을 향해 허슬을 날리고 어그로를 끌었는데, 그 누가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한민국에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장담건대 스윙스조차도 고은을 눈앞에서 보았다면 진짜 리얼함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을 게 분명하다. 스윙스뿐만 아니라 오왼 오바도즈, 블랙넛 등의 힙합 빌런들 모두가 고은 앞에선 벌벌 떨 수밖에 없다. 송곳니 자랑하던 들개들이 사자를 만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은2.png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고은 시인의 리얼함은 더 이상 한국 문단에만 담아둘 수가 없으며 힙합계를 단숨에 삼키고는, 솔직함을 무기로 쓰는 한국 문화 예술계 전체를 깡그리 접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힙합 언어를 빌려 표현하건대, '허슬하는' 80대 고은은 참된 예술가의 진실한 정신을 보여주었으므로, 그에게 어울리는 앞날은 노벨상 수상 따위가 아니라 미국의 디트로이트의 삶이다. 물론 고은이라는 레벨을 생각할 때 이러한 지역도 모자란다. 그는 갱스터 음악을 하는 래퍼가 아니라 갱스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역시, 감옥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은.png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은은 자신의 리얼함을 끝까지 증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 성공했으면 노벨상은 못 받아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는 애송이 래퍼 던말릭에게 지고 만 것이다. 페미니스트인 척 하며 제리케이, 슬릭과 함께 활동하다가, 미성년자 성추행 추문 이후 팀에서 퇴출당한 던말릭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리얼함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를 잡아냈기에 고은보다 한 수 앞섰다.

던말릭2.jpg
던말릭.JPG



잠깐 동안 한국 문화예술계를 통째로 먹어버릴 뻔 했던 리얼한 고은은 이제 이윤택 등의 성추문 후배들에게 자신의 왕관을 내어주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운명이니 참으로 아쉽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국 문화 예술계에는 수많은 고은 키드, 고은 꿈나무, 고은 주니어가 수두룩빽빽하여 수없이 터져나오고 있으니, 병원에서 종양 치료를 받는 고은이 뉴스를 보는 기분이 썩 외롭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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