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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실 뭐라고 했는가?
게시물ID : phil_164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립톤아이스티
추천 : 1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8/03/25 15:04:02
예수는 뭐라고 했는가?

우리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가 곧 우리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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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정보는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이 넘쳐납니다. 한쪽은 무작정으로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 강요하고 있고 반대쪽은 신에 대해 회의감을 내뿜고 신앙인을 무식한자로 폄하하며 욕하기 바쁩니다. 살면서 그냥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인데 중도의 입장에서 분석해주는 글이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고민했고 철저하게 중간에 서서 그냥 종교에 대해 분석하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줄 수 있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종교가 뭐라고 하는지 뭘 요구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뭣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지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철학자들과 종교 성인들의 사상을 빌려 그저 무덤덤히 분석을 합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왜 그렇게 종교를 만들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인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종교니까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모르는 것보단 아는 편이 나은 쪽의 지식입니다.

우선 글을 읽기에 앞서 이 글을 어떤 식으로 써낼 것인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쓸 때 일절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신으로 불리는 자들의 사상을 분석할 때 이들을 전혀 신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로 감안하지 않고 그 사람들이 평범한 인간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철학을 펼친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자가 부처가 이룬 기적을 일절 믿지 않고 사람이라 평가 하듯이 저 역시 모든 이들을 예외 없이 그렇게 생각하며 씁니다. 중립적인 입장에 서려면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 신자분들은 그렇다고 무작정 종교를 모욕하는 무신론적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종교에 대해 더 깊숙이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글이 될거라 자신합니다. 반대로 종교를 믿지 않는 분들도 글 도중에 신을 믿으라며 갑자기 돌변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읽어보세요.

첫 번째로 분석할 종교는 아무래도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기독교입니다. 2천 년 전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는 어떠한 배경과 상황 속에서 인류에게 무슨 가르침을 주었는지 철저하게 중립의 입장에서 분석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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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뭐라고 했는가?

우리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가 곧 우리의 신이다.

현재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듣고 배우게 되는 기독교의 입장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예수종교는 예수를 신의 입장에 두고서 이를 신성화 시키는데 주력하기 때문입니다. 카톨릭도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부정하면 이단으로 치부하고 기독교 역시 인간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에게 구원 받아야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허나 제 글에서는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것은 일절 배제한 채 써나갑니다. 여기서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우리 세상에 위대한 사상을 퍼뜨렸고 그것을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심리학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가 살아있을 때 대중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했는가, 어떤 가르침에 주력 했는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우리 주위의 기독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모두 없애주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 우리 주위의 가장 흔한 기독교의 형태입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의 도시에서는 아무데서나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동서남북 전부에 교회가 보인다는데 제가 사는 곳에서도 그것이 거진 사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교회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죠. 그저 믿음 하나면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현대 기독교가 왜 그러는지는 나중에 분석하고 아무튼 성경에서 예수는 뭐라고 했을까요? 자기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했을까요?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 천국에 어떻게 가냐고 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봅니다. 누가복음 10:25~37절입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에게 ‘내가 뭘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예수는 되려 율법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물어보죠. 
그래서 그 사람이 율법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적혀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그러면 됐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0:25~28절입니다.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어떻게 천국에 가냐는 말에 예수가 자신이 신의 아들인데 내가 신의 아들이라서 네 죄를 다 없애줄 것이고 너는 그것을 믿기만 해 라고 대답했습니까? 아닙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22장 35~39절이 똑같이 이때의 일화를 적어놓았는데 여기서 예수는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못 박습니다. 이것이 예수 사상의 핵심입니다. 적어도 예수가 살아있을 때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한 점이 성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 노력한 부분은 차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고 그러면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뒷구절에서 마저 자세히 설명합니다. 아까 그 율법사가 예수에게 조금 더 묻거든요. 누가 자기의 이웃이냐고 말이죠. 

누가복음 10:29~37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거기서 예수는 율법사에게 누가 나의 이웃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네가 가서 너와 상관없는 자일지라도 이웃이 되어준 뒤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자 이제 율법사는 깨닫고서 이웃들을 도와주러 갔을까요?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예수 사후 2천년 동안에도 기독교는 이 구절을 이상하게 해석해댔으니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이 첫 번째, 이웃은 두 번째로 사랑하자. 따라서 남에게 좀 피해를 준대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첫 번째니까 괜찮아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제가 꽤 많은 교회들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공부 해왔는데 거진 대개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신앙이 첫 번째다!를 강조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죠.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안하무인 식으로 나오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사회문제로 대두 될 만큼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이 구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까요? 
마가복음 25장 31~46절에서 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리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신에게 한 것이고 우리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신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자 이제는 제가 첫머리에 적어둔 글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예수가 뭐라고 말한 것입니까? 우리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가 곧 우리의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이 문장 하나면 신앙생활을 해석하는데 수월해 집니다. 

헌금은 교회에 가져다 바치는 돈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하여 쓰는 돈입니다. 우리 주변의 교통 좋은 땅에 커다란 교회를 세우고 유지시키기 위한 돈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신은 그 교회에서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찬송가 역시 마찬가지로 신은 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찬송가는 우리 주위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건네는 격려의 말이 진짜 찬송가입니다.

예배는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 주위에 소년 소녀 가장이라던가 독거노인 등 하나님이 많이 계시니 그들에게 헌신을 하면 됩니다. 그들이 사는 집이 교회이니 예배를 하려거든 그런 곳은 찾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즉 신에게 ‘제가 어려우니까 저를 좀 도와주세요’ 하고 빌어대는 종교의 방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 신의 아들이 되어서 신을 돕는 방식의 종교인 것입니다. 신에게 뭘 해달라고 빌어대는 식의 종교는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와 결합돼서 나타나는 짬뽕형태의 기복신앙식 종교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교 조차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짬뽕종교가 나타나니까요. 어려운 상황을 기도로써 타개해 보겠다는 인류의 원초적인 종교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수는 자기 자신만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 선행을 하는 자가 모두 신의 자녀임을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밝힌 예수가 자기처럼만 하면 자기 형제가 된다고 했으니 신의 아들이 되기가 참 쉽습니다. 예수를 무슨 대단한 신의 위치로 부상시키려는 노력들이 많지만 정작 예수는 누구든지 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닌 것입니다. 애초에 도와주어야 할 우리의 신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으니 신의 아들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기독교의 최고 핵심입니다. 이 핵심만 잘 기억하면 앞으로 설명하게 될 예수 사상의 심화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편할 것입니다. 

앞으로 기초 사상 이외의 예수의 가르침들과 탄생 배경,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예수를 가정했을 때 어떠한 사색으로 기독교를 만들어 낸 것인지 추론해 볼 겁니다. 
현대처럼 책을 접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기초교육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닌 고대 세상의 평범한 청년이 얼마나 대단한 사색을 해낸 것인지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과 더불어 차근차근 알아보는 것은 꽤 유익한 지적여행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이니 조금만 더 제 글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 첫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구상만 하던 글을 써보고 이렇게 올리는게 감개무량합니다.

블로그에 오시면 선연재분이 있으니 관심있으면 와주세요

철학게엔 차근차근 올릴 예정입니다. https://blog.naver.com/qldpfxl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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