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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게시물ID : phil_165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分福茶釜
추천 : 4
조회수 : 1024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6/30 15:09:48

꽤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너무 일찍 한글을 익히는 바람에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버려 한창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 시기에 혼자 많은 책과 동무하며 지내 버렸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우리 어머니도 이 아이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켜버렸다
더 큰 실수는 추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사립학교에 넣은 것이다 (제비뽑기 8번 구슬을 뽑은 내 잘못이기도 하다)
그 학교 학부모들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많았다
의사, 기업가 정도는 그 무리에선 평범한 수준이고 카지노, 조선소, 조폭 보스 등의 자제분 집에 방문하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십 여년 간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땅이라고 매년 신문기사로 나오던 곳 건물주 아이도 동급생으로 있었다

그 무리에 섞여 6년을 보내다가 도시에서 가장 슬럼가의 입구에 위치한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
그 전엔 내가 사는 도시에 그런 동네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 동네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와 사고방식은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라 문화 충격이 컸다(게다가 생경한 다른 지방 사투리를 썼다)
아, 그 동네 아이들 전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 그 중 대략 30%에 해당하는 친구들 얘기다
마치 어느날 갑자기 정글 속에 불시착해서 원숭이 무리들과 마주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일진 집단 부류는 없어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가정폭력이 일상화된 집의 아이들은 이미 폭력을 깊이 체화해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끝날 일에도 별 고민도 없이 주먹이 튀어 나오는 일이 빈번했다 거의 매일 학교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점도 충격이긴 했지만 그들의 세계와 큰 거리감을 느낀 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벽이 있는 아이도 있었고 뻔한 거짓말을 자주 하는 아이, 매사 남 탓을 하는 아이 등등
향상심이나 고양감 따위는 그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떤 아이는 마치 '누구나 중학생쯤 되면 당연히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하루에 몇 가치 피냐고 묻기에, 안 핀다고 대답하니 깜짝 놀라며 아직 한 번도 안 피워봤다는 거냐고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 안 피워봤냐며 의심하는 눈길을 보냈다
질 나쁜 아이들은 뒷산에서 본드도 불고 하는 지경이니 담배 정도는 새우깡 정도의 기호품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서로 각자 몸담고 있는 세계의 일반적인 기준이 너무 다르니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라고, 그들과 섞여 지내다 보니 욕도 배우고 주먹질도 하곤 했는데, 여러차례 결코 섞일 수 없는 큰 괴리를 절감하고 보니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고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

물론 경제 사정이 어려운 집 자식 중에서도 순수하고 솔직하고 이해심 깊은 아이들도 많았다
그 집에 놀러가면 집은 좀 허름했지만 역시나 어머니나 동생들과의 관계가 끈끈하고 화목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학년에서 싸움으로 순위권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서 류승범 영화에 나오는, 학교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아놓은 어두운 공간(랭킹 순위권에 있는 아이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에 종종 데려가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최신가요를 야리꾸리한 내용으로 개사한 노래로 나를 웃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모터 달린 자전거 뒤에 태워서 집에 바래다 주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에, 틈 날 때마다 농장이나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형호텔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노가다를 한 적도 있다

돈을 모아 여행을 자주 다녔다. 위험할 뻔한 순간도 많이 겪었으나 용케 무사했다

군대에 가니 상하 위계서열이 기수별로 나눠져서 사병 간 폭언 폭행 부조리가 만연한 내무반 문화에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어도 고참이 되고 나니 그나마 좀 마음 편하게 지냈다
고참이 된 이후로 내무 부조리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니 후임들도 눈치가 보였는지 개인적인 일을 후임들에게 미루지 않았다

군대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경험은 농촌 출신들을 많이 만나 본 것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 일을 거들며 자랐기에 모든 걸 몸으로 익히고 배워서, 정말이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어 보였다
이것 저것 변명도 잘 하지 않고 공치사도 없고 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기 보단 이미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치적 올바름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진정한 '남자다움'이 뭔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우연히 내가 만난 이들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멋있는 사람들이라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이들이었다

몇 년 전에, 그동안 몇 번이나 교도소를 다녀온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주제를 놓고 몇 시간 동안 얘길 나누다가 내가 완고하게 주장을 꺾지 않자, 그가 갑자기 장애를 가진 부위를 불쑥 꺼내었다
'어릴 적에 이것 때문에 얼마나 컴플렉스가 많았겠냐, 너는 내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그의 고통을 반 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의 행동에 대해 안일하게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몇 달 후 그는 똑같은 죄로 다시 구치소로 끌려 갔다 그 죄는 다른 어떤 나라들에서는 죄로 취급받지 않는 모양이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글을 끄적였는지는 까먹어 버렸는데,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테두리 안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기 마련이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세계가 있고 그들의 세계 속에서는 그들만의 다른 기준이 있을텐데

그들의 행동이 틀리게 보일지라도 내가 함부로 옳다 그르다 평가하기엔 내가 그들의 세계에 살아보지 않은 이상 주제넘은 짓일 것이란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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