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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채식-반출생주의자인가?(요약번역)
게시물ID : phil_171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ŜatasVin
추천 : 1
조회수 : 5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1/04 14:21:36



(요약번역)

이것은 나의 첫번째 유투브 비디오이면서, 나의 반출생주의 견해에 관한 세번째 입장에 대한 견해를 이를 통해 제공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몇개의 동영상을 더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런 문제들이 매우 친밀하고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만한 실천적인 윤리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있다면은.

어린 시절을 많이 기억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것과는 사실 차단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것에 대한 기억을 통해 지금의 다비드 리(본인인듯)에 대한 공감이 형성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낚시를 하면서 여러 호수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던 떼가 있다.

나는 내가 잡아서 죽인 물고기들에게 햇살이 비치자 그것들의 비늘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한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몸을 씻은 후에 구덩이에 틀어박혔다. 그리고는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것이 정상적이라고 했다. 나의 배를 채우기 위해 어떤 생물들이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후에도 내 삶과 낚시를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 생물들은 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선택과 해악의 간극이란 문제가 그날의 물고기들처럼 항상 나에게 따라다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나와는 다른 감각있는 생물들에 대한 관심이 넓어졌다. 오직 인간만이 내면의 영혼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에 대한 인도적인 관심이란 것은 유치하고 순진한 감정일 뿐이란 권고를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중요한 진실은 고통은 모든 도덕적 배려와 윤리적 행동의 기초적 이해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만나 보았던 많은 포스트 모더니스트 유형의 사람들의 말처럼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국가 체계가 선호하는 윤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종종 모든 문장은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고통을 초래하는 부도덕 한 생각은 어떤 견해에 의해서 도움을 받는가?

다른 종류의 존재들과 인간이 구별되는 유일한 특징이란 그것은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는 고통에 대하여 유일하게 책임을 묻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그 진리에 대한 발견은 나의 삶을 채식주의자로 결정짓게 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어째서 나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가? 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녔다.

나는 비건-채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동물에 대한 착취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문화와 소비의 패턴에도 고통에 대한 이해가 깊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진실을 발견하자 마자 나는 열정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마침내 그런 생각은 윤리적인 입장에서 인간 상태의 진실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었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 너무나 잘 이루어져 가고, 좋다고 말하는 견해는 삶에 내재하는 고통의 영향력을 너무 간단하게 과소평가 하고 있다는 진실과 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인생이 본질적으로 좋다는 관념은, 자살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매일 미국에서 백 이십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선언과도 다름이 없다.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하고, 만약 나에게 자녀가 생긴다면, 내 아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당신의 자녀들이 그들의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을 치루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 아이들의 존재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을 겪어야 하며, 비인간종들의 동물들은 동의를 구하지 않는 고통을 겪으며 희생을 당할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눈을 감는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타인들에게 실제적인 고통을 주는 착취적인 행위에서 많은 동기를 얻는 것이고, 단지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존재하는 다른 종에게 비동의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가해서만 유지된다면, 그런 행복은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의 가치를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가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불가피한 고통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자녀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도 그런 사람들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은 삶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대해서도 미리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다. 그럼에도 어떻게 출산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출산은 비윤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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