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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쿵푸팬더와 불교철학
게시물ID : phil_172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방위특급전사
추천 : 2
조회수 : 9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0/22 10: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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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 눈팅하던 중 쿵푸팬더에 대한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433025&s_no=433025&page=1

 

불교에서는 '성불'이 불교를 공부하는 가장 큰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물론 성불만이 모든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습니다. 성불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일체개고, 즉 모든 것은 고통이기 때문에 그 고통을 끊기 위해서 입니다. 사성제 고집멸도는 그 고통과 성불에 대한 요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성제-모든 것은 고통이다(결과1)

집성제-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발생한다(원인1)

멸성제-모든 집착을 끊고 고통에서 해방된다(결과2)

도성제-6바라밀 등을 통하여 모든 집착을 끊어야 한다(원인2)

 

여기 중요한것은 고통의 원인은 번뇌와 망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불을 하여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경지가 부처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죠. 여러 성불한 고승들은(대승불교에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본래면목을 보고 자신의 주인이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남의 시선에 대한 집착이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석가세존은 '천상천하유아독존' 스스로를 하나뿐인 귀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물론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본인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남도 마찬가지로 천상천하유타독존으로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석가세존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제자, 민중, 들에 피어있는 들꽃마저도 귀한 존재로 존중합니다.

 

임제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모든 곳이 참된다' 라는 말로 표현을 했지요. 또한 살불살조,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지 부처의 말이나 스승으로 부터 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며, 부처와 조사는 구도자가 지향하는 미래, 부모와 친척은 구도자의 과거를 상징하여,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면 성불할 수 없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성불해야 한다는 집착마저 끊어야 성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순되죠?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공부하고 원해야 가능해 보이는 성불을 하기 위해서 성불할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요. 하지만 집착을 끊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위하여 성불하려고 하는 것이기에 성불에 대한 집착 마저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3법인이라고 하고, 일체개고를 더하여 4법인이라고도 합니다. 제행무상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뜻하기도 합니다. 제행무상은 세상에 지속되는 절대적인것,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모두 변하고 절대적인 영혼이나 천국은 없다는 것. 그러므로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지켜 보며 이 상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늙으신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영혼을 생각한다면 과거 젊으셨을 당시와 지금과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의 영혼은 그대로이며 절대 불변하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어머니의 주름과 늙음, 쇠약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혼은 그대로니까요.

 

하지만 제행무상,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변해가는 어머니를 볼 수 있다면, 마음이 아리지만 그 모습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당장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같이 영화라도 한편 보기 위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이자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흩날리는 벚꽃은 벚꽃의 이데아가 있고 내 눈앞에 흩날리는 것은 그저 치워야 하는 쓰레기이며,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떨어지는 벚꽃의 아름다움과 아련함은 생길 수 없을 겁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젊을 때, 돈 많을 때, 잘나갈때의 내가 본질적인 나이고, 지금 늙고 뭔가 부족한 나를 직시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 할 수 없는 것이죠. 늙고 병들은 나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쿵푸팬더에서 타이렁은 절대자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는 사부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후에는 사부님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욕심 때문일 수도 있죠. 남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에. 그래서 절대자가 되기 위해 모든것을 바치고 그 길만을 바라보면서 정진합니다. 물론 좋은 동기일 수는 있어도 남이 바라보는 시선을 위해 절대자가 되고 싶어하면 필연적으로 욕심이 생기고, 자기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 보다는 욕심과 남의 시선에 대한 집착만 더 커지게 되겠죠. 더구나 절대자가 되기 위하여 절대비기를 얻고 싶어합니다. 스스로 경지에 오르기 보다는 비기의 도움을 받아서 의존하여 절대자가 되려는 것이죠. 절대자=부처라고 본다면 불교철학적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할겁니다.

 

사부 역시 제자를 절대자로 만들 욕심에 매일매일 변해가는 제자의 본래면목을 보지 못합니다. 가장 사랑했고, 사랑스러웠던 시절의 제자만 기억하고 있어서 제자의 방황이나 좌절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해석처럼 처음 타이렁을 사랑했던것은 소질이 있어서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결국 포가 찾아낸 용의 문서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비결이었던 것이고 그 것을 보고 포는 깨달은 것이고, 타이렁은 깨닫지 못한 것이죠.

 

 

 

관심이 많은 것이 있으면 무엇을 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죠. 요새 불교에 대한 책을 몇권 봐서 그런지 쿵푸팬더가 불교적인 메세지로 보이네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잘못된 해석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습니다.

출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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