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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신을 죽인 이유
게시물ID : phil_17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방위특급전사(가입:2019-05-21 방문:88)
추천 : 2
조회수 : 49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12/26 10: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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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니체에 대한 좋은 글이 있었습니다. 댓글로 남기려고 하였으나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바람에 작은 댓글창에 쓰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글을 새로 써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한번만 경험할 수 있으며, 죽음을 한번 맞이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가 됨을 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피할 수는 없죠. 최근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인간의 영생을 연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요원한 일이고 또한 잠재적인 영생이 이루어진다고 마냥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만도 없겠죠. 한번 뿐인 덧없는 인생에 대한 회피로 인간은 영원한 영혼을 꿈꾸고 영원한 영혼이 쉬는 피안의 세계를 꿈꿉니다. 그것이 아마도 초월적 절대종교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덧없는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이죠.

 

인간이 영원한 영혼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본능적인 자기 위안이 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공짜는 아닙니다. 영원의 세계를 꿈꾸면 당연히 현재의 생은 영원의 세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초월종교에서는 경건하고 쾌락이 없는 삶을 추구할 것을 강요합니다. 신이 좋아할 만한 인생을 살고 그 댓가로 최후의 심판에서 우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미래지향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행복한 내일을 위해 오늘은 경건하고 사회가 바라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죠. 그런데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 되어 또 다른 내일을 위하여 행복을 유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무한 반복 후에 결국 행복은 죽음 이후로 미뤄지게 됩니다. 참으로 교묘한 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은 이후에나 내가 살았던 삶에 대한 보상을 확인 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그러한 교환에 의심을 품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시험에 빠진것이니까요. 물론 무한한 절대자 신 외부에 악마가 있다는 논리적 모순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도 시험이니까요. 요약하면 지금의 모든 인생을 나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신이 좋아할 삶을 살아야 영원한 행복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초월종교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사상이 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모르는 문화권에서도 사랑을 했고, 자비나 연민, 동정은 존재했습니다. 어찌보면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철학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독교인이 야만인 혹은 원주민이라고 불리우는 문명적으로 뒤처진 인종에 대한 폭력은 성경에 의해 정당화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보기 어렵고 그렇다면 노예로 삼거나 함부로 죽여도 상관 없는 것이죠. 도덕적인 수준은 조두순보다 낮다고 볼만한 여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밀을 기독교 지성인들은 몰랐을까요? 최소한 스피노자, 몽테뉴, 루소 등은 알고 있었습니다. 절대적인 신 앞에서 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아야하는데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말이 될까요? 아마도 과학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땅한덩어리, 영지 하나 혹은 재산이나 명예를 걸고 기독교인을 살해하는 것은 어떻게 정당화 될까요? 아마도 정치인들이나 부루주아계층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것이 사기라는 사실을요.

 

니체는 지배계층의 공공연한 비밀, 종교을 이용한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사기사건을 폭로한 것입니다. 아마도 니체는 '신은 죽었다'가 아닌 '신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말로는 민중을 깨울 수 없었기에 다소 과격한 말로 쾌락없는 마약을 끊을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과격하여 사랑의 결정체인 종교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존재하지 않는 권위에서 찾는 허무함을 폭로하여 각자 인생의 의미를 각자가 찾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초년기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을 당시는 모르지만 쇼펜하우어를 비판하며 초인이 될 것을 촉구하는 순간 더 이상 허무주의자는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허무주의는 무엇일까요?

 

허무주의의 반대적인 의미는 절대주의 혹은 독단이 될것입니다. 서양 근세 철학을 양분했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각각의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통하여 절대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극단으로 가게 되면 절대주의, 독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경험주의는 경험으로만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얻는 지식은 그 예외가 드러나는 순간 지식이 아닌 것이 되는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죠. 칸트라는 영민한 철학자가 두가지를 적절히 다른 차원에서 조합하여 관념론을 만들지만 결국 관념론 또한 이 세상과는 유리된 형이상학의 절정에 불과했습니다. 니체가 거부한 것은 종교를 포함한 형이상학에 포획된 인간의 한계를 설정하는 절대적 독단성에 녹아있는 허무주의를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초인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니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을 사막의 낙타에 비유합니다. 낙타처럼 수동적인 삶을 버리고 사자의 삶을 살라고 하죠. 사자에게는 아무도 사자가 싫어하는 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회와 종교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짐을 지지 말고 투쟁적으로 나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사자의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초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궁극적인 초인은 어린아이의 삶입니다. 사자의 삶을 지나서 수동적이거나 투쟁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면서 즐거운 삶인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바로 초인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하다가 실증이 나면 그냥 안하면 됩니다. 아무런 금기도 초자아의 영향도 없이 이드와 자아를 찾아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죠. 이것이 가능하려면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긍정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또 다른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삶이 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지금을 즐길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아마도 니체가 말한 궁극의 초인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대승선불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중국의 임제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이 좋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미래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현재지향적인 삶을 말하기 위해서는 바로 절대적인 종교와 형이상학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니체가 생각했던 초인의 모델은 몽테뉴나 세네카와 같은 죽음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여 주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결코 마르크스와 같은 혁명가가 아닌 사회에 들어가서 세네카와 같이 사회지도층이 되고 몽테뉴처럼 시장이 되어 세상을 리드하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기득권을 혁파해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수동성과 불만을 없애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 행복을 영위할 것을 바란것이죠. 여기서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한가지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죠. 오늘 지금 이 순간 남에게 굽신거리고 굴욕적인 일을 자처한다고하면 보통 그 일은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서 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지금 뿐 아니라 영원이 반복적으로 올 것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것이죠. 내일 받을 월급을 위하여, 잠시 후에 손님이 가고난 후 동료들과 맥주한잔 하며 뒷담화할 생각으로 이 순간을 참고 넘기는 것이 버릇이 되다 보면 그런 상황이 또 오면 또 굴욕을 감당할 것이고, 그러한 순간은 이 삶이 끝나고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면 과연 그렇게 살것이냐고 묻는 것이죠. 다분히 현재지향적인 삶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말합니다. 지금의 삶이 똑같이 다시 반복되더라도 아무런 후회없는 삶을 살라고요.

 

니체는 또한 도덕의 계보학에서 '선악을 넘어서'기를 촉구합니다. 이 부분에서 니체의 사상이 폭력적이라고 오해할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의 개념은 소성거사 원효의 의견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효는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말합니다.
-예전 매우 현명했던 사람이 아들에게 훈계했다. "스스로 조심해서 선을 행하지 않으려고 해야한다." 그러자 아들이 반문했다. "그러면 반드시 악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선마저도 행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물며 악을 행해서야 되겠느냐"고-
니체나 원효가 바라본 선악(good & evil)은 사회의 억압을 상징합니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주체가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성립하는 것이 아닌 정신분석학적인 초자아에 해당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른 가르침이 내면화 한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린사람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한다', '여자는 어릴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젊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한다', '하루에 세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야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선과 악의 개념이 몸에 체득화 되어 있는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악이 아닌 무엇에 따라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것은 바로 좋고 나쁨일 것입니다. 본인이 좋은것을 행하는 것이 사회가 하라는 것을 하는 것보다 더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마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하고자 하더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금기라면 도전해 볼 수 있겠죠. 니체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남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사회적인 선악보다는 개인의 호불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니체 특유의 강한 어조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악을 넘어서라는 개념에서 스피노자의 짙은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코나투스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는 마주침(코나투스 증진)이라면 더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나에게 슬픔을 주는 마주침(코나투스 감소)이라면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가 쇼펜하우어에게는 '생에 대한 의지(will to life)', 니체에게는 '힘에 대한 의지(will to power)'로 표상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자에게 위해를 끼치라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나에게 좋은 마주침을 선호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단 한명의 철학자를 꼽으라면 니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양철학하면 가장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을 만든 플라톤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고, 서양철학에서 빠지지 않는 정류장 같으며 철학의 대상을 외부에서 주체내면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한 칸트를 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던 철학에서 별빛에 옆에 있는 친구, 연인의 얼굴을 비춰보는 철학으로 전환시킨 니체야말로 하늘의 철학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철학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 아닌가 합니다. 니체가 없었다면 후설, 사르트르, 푸코도 존재의 자유에 대해 연구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니체의 철학은 사변을 넘어선 실천적인 철학입니다.

 

개인적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전화도 안하고 소홀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니체가 비판한 형이상학적 관점 혹은 부모님의 영혼의 관점에서 본다면 항상 변함이 없을테니 오늘 안부전화를 안하고 내일로 미루고 또 미뤘겠죠. 하지만 니체가 말한 것처럼 영원한 본질은 없고 현재지향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자주 전화를 드리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떠나서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부채의식마저도 없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니체의 철학은 폭력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존재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철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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