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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
게시물ID : phil_173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방위특급전사(가입:2019-05-21 방문:88)
추천 : 2
조회수 : 29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1/01/20 1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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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는 항상 갈등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갈등의 원인은 너무다 다양하겠지만 집단과 집단 혹은 개인과 집단, 개인과 개인 간의 이권다툼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고, 명확한 원인이 없이 추상적인 감정의 대립으로 발생하는 갈등도 있을 것입니다. 명확한 원인이 있는 갈등은 타협 가능성도 추상적인 갈등에 비하여 높을 것이며, 갈등 자체로 인한 사회적 발전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갈등은 소모적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해결 가능성이 적어서 소모적이라는 것 뿐아니라 갈등 당사자의 감정적 소모도 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추상적인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너무나 다양한 원인들이 서로 얽히고 쌓여 한가지 콕 찝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갈등을 심화시키고, 혐오의 감정마저 일으키면서, 당사자의 감정적 소모를 더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피해의식을 꼽을 수는 있을 듯 합니다. 피해의식은 구체적인 피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인 피해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실제 피해가 있었다면 피해의식이 아니라는 것이죠. 구체적인 피해는 없지만 나는 혹은 우리는 피해를 입었다라고 마음 속으로만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생기기도 어렵겠죠.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잡고 앉아서 당사자를 짓누르고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저도 피해의식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밑에 '앎과 믿음'에 대한 글처럼 구체적인 피해에 대한 앎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인 피해가 있다는 믿음만 있는 상태일 수 있으니까요.
 
최근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이러한 불만을 들었습니다. "VRE 환자한테 반코마이신 썼다가 삭감당했네. 내성환자는 그냥 죽이라는거야?" VRE는 vancomicin resistance enterococci라고 반코마이신에 내성이 있는 세균을 말합니다. 물론 반코마이신에도 내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코마이신을 써야하는 환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심평원에서 삭감을 때릴 때는 청구 '절차'에 문제가 있어서 삭감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반코마이신 같이, 내성균에만 고민해서 써야하는 항생제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사용근거를 첨부해야 하는데 절차상 하자가 없으면 인용을 해줍니다. 보통 사용근거 첨부에서 뭔가 누락을 시켰기 때문에 삭감처리를 하는 것이지 심평원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혹은 VRE환자는 다 죽으라고 삭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근거에 대한 수정/보완을 하면 다시 고쳐 줍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마도 심평원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만을 만들고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잠시나마 잊은 것 같습니다. 나아가서는 의사라는 직군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는다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죠.
 
요양병원 환자, 혹은 응급실 환자를 더 상급병원에 전원해야 하는 경우 상당히 어려운 절차가 있습니다. 전원을 받아주는 병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아마도 전원을 받는 병원에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길바닥에서 환자가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절차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원을 받는 병원에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전원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폐단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판단한다면 적절한 해결책을 연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피해의식에만 빠져 있다면 '이게 다 정부에서 만든 거지같은 제도 때문'이라고 직관적이고 즉자적인 원인 진단을 내리고 당연하게도 합리적이지 못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입니다.
 
의료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남녀갈등, 인종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 등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항상 보건휴가를 주말에 껴서 써! 진짜 문제야!, 육아는 여자들만 하는게 말이돼? 군대는 놀다 오는거 아니야?, 착짱죽짱!, 꼰대! 등등 구체적인 피해에 대한 고찰 없이 특정 집단에 대한 피해의식이 혐오의 시작 혹은 강화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해의식은 문제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이성적인 진단과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 감정적인 혐오를 조장하여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당사자에게 견디기 힘든 번뇌를 일으켜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피해의식이 고착화 되고 심해지면 망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지 고통을 넘어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 마저 존재하는 것이죠.
 
피해의식이 교묘하고 무서운 것은 피해의식이 있는 것인지, 피해의식으로 사로잡혀서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피해의식이라고 말해줘 봐야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피해의식이 믿음의 단계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피해의식의 그러한 교묘한 부분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극복하기가 쉬워질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밑에 기향님이 쓰신 '앎과 믿음'이라는 짧은 글이 큰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 감성을 다스리는 것이죠.
더불어 석가세존의 일체개고의 가르침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본질은 고통이라 나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상대도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고통이 상대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시작부터 같이 한다는 사실.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탓을 하기 보다는 힘들더라도 고통을 직시하여 그 고통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가르침이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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