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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바라보는 시각
게시물ID : phil_174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존
추천 : 2
조회수 : 273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3/01/28 03: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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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원래 ASKY 였는데, 오유를 끊고 나니 연애에 결혼까지 했습니다.

 기왕 결혼가지 한거 ASKY 염려 없이 오랜만에 들어와 보네요.

 

 제 배경을 밝히자면, 할아버지 대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성직자가 3명인 천주교 집안의

 모태신앙 천주교인 입니다.

 나이는 어느덧 30대 후반에 들어섰는데, 배경에 비해서 사실 종교 활동을 거의 안하다시피 합니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알면 안되요 쉿)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천주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나름 개인적인 애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종교활동에는 인색해도 종교에 대한 역사와 의미,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사고를 하는 편이지요.

 

 저와 비슷한 연령대, 그리고 그 아래 연령대로 내려갈수록

 종교에 대해 관심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은 통계로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더욱 실감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최근 이런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지요.

 

 민감한 주제이기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비종교인이건, 종교인이건, 또 특정 종교인이건 간에

 제 생각과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 인지하고 있고 이견에 대해서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종교를 왜 믿는걸까.

 

 이런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제가 운전하던 중 조수석의 제 와이프가 자신의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을

 듣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와이프는 본래 종교인이 아니었고, 저와 결혼하면서 천주교인이 되기는 했지만

 종교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통화하는 그 친구도 마찬가지이죠.

 얼핏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가, 왜 종교를 믿을까에 대한 짤막한 추측이 하나 나왔습니다.

 

 "나이들어 심지가 약하면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있을 테고, 나이 먹고도 종교 안믿을 수 있을거고"

 

 아마 흔히 많은 분들이 추측할 법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런 시각은 종교를 동북아 문화 속 전통적인 기복 신앙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저런 해석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기복 신앙'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단어 그대로 그냥 '복을 비는 신앙' 이라고 이해하시면 되요.

 그럼 또 많은 분들이 반문 합니다.

 

"종교가 원래 복을 비는 거 아니야?"

 

 그만큼 우리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문화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신앙 매커니즘이란 얘기입니다.

 종교의 목적을 '복' 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대표적 종교, '불교'.

 기복 신앙이 맞나요?

 서양에서 시작되어 한국에 전파되어 이제는 가장 널리 퍼진 종교, '기독교(크리스트교)' 도 목적이 '복' 인가요?

 (용어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크리스트교'라고 명칭하겠습니다)

 

 불교의 목적이 복을 비는 것인가요?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깊게 연구하지는 않았어도

 누구나 불교에서 얘기하는 메시지를 조금만 생각해도 기복 신앙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복'이란 개인과 가족의 영달로 개념을 좁혀서 바라봅시다. 기복 신앙이 세계 평화를 바라는 신앙이 아니듯이요)

 크리스트교 역시 성경 내용을 보면 복이 목적인 종교가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의 많은 종교인들이 각자의 종교 시설에서 공통적으로 '복'을 빌고 있답니다.

'우리 자식, 수능을 잘 치르게 도와주세요' , '부모님 몸 건강하게 지내시도록 도와주세요' ...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원하는 가치잖아요.

 그렇지만 이 정도가 심하면 문제가 심해집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 믿음의 뿌리를 가진 신자라면, 사실 조금의 시련만 닥쳐도 종교를 원망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종교의 교리와 자신의 믿음에 큰 괴리감이 자리잡고 있어 '자신을 평가'하는데에서 종교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아무리 좋은 교리라도 이러한 신자는 생각과 행동에 영향이 가지 않아요)

 

 다시 생각해봐요. 아래와 같은 기도가 위의 기도가 무엇이 다른지요?

 '저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약간 종교적 기도라기 보다는 너무 세속적이지요? 그런데, 저 위의 기도들과 차이가 없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종교인이 이러한 표면적인 관점으로 종교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들은 종교를 의지의 대상으로 해석하여 종교인을 바라볼 때 '약한 사람' 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죠. (위의 통화 내용 처럼요)

 그리고 조금 더 과격하게 결론을 내는 사람은 '이성이 부족한' 사람 취급하며 깔보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자기는 자신을 믿을만큼 뛰어난 사람이지만 종교인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식이죠.

 

 그런 과격한 분들 중에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 역으로 까고 싶지만 뭐,

 이해를 못하는 분들을 무슨 수로 이깁니까.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저 역시 종교 생활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굳이 달려들어 설복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 '기복 신앙'이 아니면 종교는 무슨 가치가 있고,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 널리 퍼진 종교들이 관통하는 개념이 몇 가지 있는데,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평화' 의 목적을 추구하고, 그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큰 가치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그걸 종교 별로 어떠한 메시지로 전달하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요.

 

 우선 과거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크리스트교나 불교 심지어 지구촌을 화약고로 만드는 이슬람 모두 '기복 신앙'이 아닌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죠. (이슬람 교리가 전쟁하라곤 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놈들이 ㄸ라이인거지)

 윤리 기준이란 건 결국 그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 체계를 의미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방어 기제로서 마치 생존 본능과 같은 역할을 한 셈이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세세히 들여다보면 종교에 의한 폐해도 많았죠. 하지만 종교가 없었으면 지속적으로 사회를 지탱할 뼈대가 없기에

 대대로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문명이 단순히 이성과 기술로 이루어져 왔다고 믿으신다면, 현대 남아있는 문명 중에

 그를 증명할 수 있는 케이스를 알려주세요. 제가 아는 한 인류 문명 중에 종교가 역할이 없던 적이 없어서요)

 

 네, 역사적인 관점을 보는 이유는 바로 '종교'라는 개념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역할이 컸던 것은 맞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뚜렷한 이성과 지식 체계가 정립된 현대 이후에는 종교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겠는가.'

 

 자문 자답 같지만, 저도 일부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점점 더 많은 지식이 쌓였고 이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전파할 수 있게 됬습니다. 그러다 보니 존재 이유를 의심할만큼 종교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지요.

 

 하지만 종교를 역사적으로 해석하면 맞는 말인데,

 철학적으로 다가가면 무색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나, 개미나 벌처럼 극단적인 군락 체제는 아닙니다.

 자유 의지의 문제인데요,

 '모두'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개념은 사회적 관점에서 옳은 말이나, '인류'의 생존 관점에서는 틀린 말입니다.

 

 다윈의 적자 생존, 대표적인 진화론이지요.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상 대부분의 생물은 '다양성'이 생존 전략입니다.

 개미와 벌은 '군락'의 다양성이 전략이지만, 인간은 개체의 다양성이 전략입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가치는 바로 그 '다양성' 입니다.

 그 '다양성'은 사회라고 하는 집단 체제에는 방해가 되면서도, 사회 집단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그런데 '종교는 사회 체제를 이루는 뼈대'라고 했으면서 갑자기 웬 다양성이냐구요?

 이런 의문을 가지셨으면 이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결론에 거의 다다르신 겁니다.

 

 네 맞아요, 다양성과 종교는 사실 상극입니다.

 다양성을 방해하는 것이 사회체제의 뼈대인 종교구요, 종교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다양성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 많은 철학자들이 종교를 비판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 옳다고 믿는 저 역시 종교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두 교황' 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 있었어요.

 오래된 종교로서 시대의 변화에 괴리되어 있는 것만 같은 천주교의 새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모로

 과감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새 교황님이 추구하는 변화에 대해 저는 극호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과거 금기시 되어왔던 여러가지에 대해 포용하는 의견을 내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성애'를 죄악시 하지 않는 포용적 태도,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삶이 고귀하다면 (천국에 갈)자격이 있다라는 발언 등 (더 강경하게 표현하자면, '교인'이라도 삶이 교리에 맞지 않는다면 반대가 된다는 이야기) -

 

 '두 교황'은 보수적 원칙에 충실한 이전 교황 '베네딕트'와 천주교가 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새 교황 (베네딕트가 교황자리를 물려줘버린) '프란치스코' 의 갈등과 토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비천주교인이라도 꼭 볼만한 영화입니다. 잔잔하면서도 깊이 생각해볼만한 대화입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에 적극 동감하면서 원칙주의자인 베네딕트 교황의 고집에 참 답답함을 느꼈는데요.

 저도 반대하는 동성애, 성직자의 혼인 문제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 '그건 좀...' 이란 생각을 하는 순간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류 객체 하나하나의 다양성, 자율성을 인정하고 보장하기 위해 모든 판단 기준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요.

 

 자못 긴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 '다양성'을 추구할 경우, 사회 보편적 '윤리 의식'의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다양성'은 인류의 생물적 생존 전략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요, 생존 전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격'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자격'이란 물론 인류 문명에서 비롯된 하나의 고루한 이미지이죠.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더 큰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토대라는 것도 맞습니다. 

 단순 생존이 아닌 그 위에 더 높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 없이 고찰하고 존재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시대가 변해도 등대처럼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종교'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저에게는 '신'이 정말로 존재하냐 아니냐는 전혀 토론할 주제가 아니게 됩니다.

 신이 있냐 없냐, 성경이 진짜냐 소설이냐, 어디 사막에서 전혀 다른 성경이 발견됬다 등등.

 이게 의미가 없습니다. 제 신앙이란 건 '나'를 유지해주는 것이지 그것이 팩트냐 아니냐는 상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돌고 돌아, 가장 처음의 질문에 대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이렇게 축약될 수 있습니다.

 

 '왜 종교를 믿는거야?'

 '나를 사람이란 걸 잊지 않게 해주니까.'

 

 정말 쓸데 없이 글이 길었습니다.

 그런데요, 위의 설명 없이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재주가 제게는 없기 때문이에요.

 

 비록 종교활동은 안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는 구성원으로서 종교는 제게 등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종교는 이러한 인류의 가치를 간직해왔고, 어떤 파도에도 답을 찾기 위한 닻이 있다는 것에

 저는 묘한 안정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의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약한 사람이 믿는 것이고,

 종교를 심지의 기준으로 잡으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저는 보통 종교를 평가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종교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뭔가 내면의 복잡한 이야기를 풀으려다보니 정말 두서 없는 글이 되었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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