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팬픽] 붕대 中
게시물ID : pony_26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가필
추천 : 6
조회수 : 21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19 00:05:54

上. http://todayhumor.com/?pony_26548

 

 

中.
  또 언제 만났던가. 날짜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으오. 까페에서 당신을 보고 딱 일주일 지난 수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10일이었는지 17일이었는지 모르겠군. 하긴, 몰라도 되는 일이오.
  상이병(傷痍兵)이 상이병을 구타하다니, 동병상련이란 말도 있는데 웃기지 않소? 내겐 웃기지도 않소.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에 담장에 기대어 토악질했소. 위장을 통째로 내다버리니 한결 낫더군. 그 기묘한 청량감을 방해받자 화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나 당신인 걸 확인하자 그런 감정들은 눈 녹듯 혹은 씻은 듯 사라졌소. 당신 옆에 나와 달리 근사한 어떤 페가수스가 있지만 않았더라면 계속 좋았을 텐데 아쉽소.
  그 날개가 커다란 수말에게 당신의 마음이 있었기를 비오. 그렇지 않으면 그를 깔아뭉개고, 두드려 패고, 그러다 되레 얻어맞은 내가 너무 비참하잖소. ― 갑작스레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손 해도 어떻게 머리가 몇 개나 더 큰 포니를 그리 자빠뜨리고 후려쳤는지는 잘 모르겠소. 당신과 그 포니가 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역(力)의 원동이 되었나보오. 왜 그것이 내게 힘을 주는가. 아직까지 알지 못하오. 모르오, 도저히 알 수 없소.
  그는 날 간단히 쳐냈소. 아주 예전부터 그랬듯 반불구는 내치든 등치든 그냥 치든 참 치기 좋소. 구더기처럼 엎드리고 쥐새끼마냥 숨 쉬며 빙빙 헤매어 도는 별들의 무리를 보는 내게 그가 다가오는 것을 당신이 말려주었소. 만약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억센 발굽에 두개골이 으스러져 죽어 없어졌거나 최소한 반불구가 됐을 것이었소. 지금도 충분한 반불구이오만은 말이 그렇소.
  당신의 조카가 관용을 베푸오. 지극히 비참하게 만들어, 누런 가래침과 욕을 섞어 탁하게 버려두고 날아가는 것이 당신이 아는 관용과 일치할지는 몰라도 나의 관용과는 상동(相同)하오. 가죽을 벗기고 살을 뒤틀어 뼈를 바수어도,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오. 그게 당신에게 죽음만큼 고단한 일이 될지는 모르나, 나는 이미 그런 신세요…… 당신이 이 반편이를 동정컨대 그리 여겨주시오. 내 붕대를 보아서 그런 셈으로 남겨주오…….
  조카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웠소. 그의 뒤로는 무지개가 따르지 않았으나 곧 그럴 것만 같아 아쉬웠소. 다행스럽게도 당신은 겁에 질려 길바닥에 얼굴을 박아대는 미치광이를 보지 못한 체하고 가지 않았지. 당신이 조카가 아닌 나를 택했을 때는 모든 고통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듯해 기쁘었소. 와주시오, 떠나지 마시오, 내가 껴안으면 껴안는 대로 울면 우는 대로. 환희의 눈물이 위로 흐르오. 수려한 곡선을 그리며 용처럼 올라 폭포처럼 떨어져 아래에 무지개가 맺히오. 아름다워 고맙소. 혹은 고마워 아름답소.

 


  까페에선 친구를 만나고 길거리에선 조카와 만나고. 내가 알기로 당신은 외지의 포니인데, 친구를 만나러 와 조카를 만난 것이오 아니면 조카를 만나러 와 친구를 만난 것이오? 사소한 것이라도 내겐 중하오. 대답해주지 않아도 되오. 둘 중 무엇이더라도 내겐 중하오.
  난 모르고 있었소. 그날 까페에서처럼 늘 빈자리가 있어 합석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지만 아니었소. 당신에겐 친구도 있고 조카도 있소.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자 전에는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올라와 나를 괴롭히오. 그저 거리에서 몇 번 만난 날 잊을 거란 생각과 언제 불현듯 날아서 갈 것이란 생각이 특히나 그렇소.
  당신이 훌쩍 날아서 가면 무지개가 남겠지. 나는 그 무지개의 뒤꽁무니를 배웅하고 싶소. 밝은 빛이 내 온몸에 돋은 털을 깨끗이 닦아주었으면 하오…… 뺨을 후려치지 않고선 버틸 수 없어 그리했소. 한심하게끔 왜 난 늘 떠날 생각만 하나. 전생에 방랑벽이 있었는지 후생에 있을지. 전엔 빗발치는 폿소리가 귀에서 떠나갔으면 하더니 이번에는 당신이 떠날 거란 생각만 떠오르오. 부질없는 망상이었으면 나도 좋겠소.
  헛생각이오? 대답을 해보시오. 왜 말이 없소. 거리에는 그리운 암말이 어디에도 없소. 17일인지 24일인진 모르겠지만 오늘도 수요일인데 왜 보이지 않소. 보시오. 새 가방이오. 붕대도 갈았소. 헌 싸구려 야전용 붕대를 벗기가 무섭게 가방에서 꺼내어 보송보송한 새 붕대를 감았단 말이오. 두텁게 둘둘 말아서 전보다도 더 날개가 보이지 않소. 윤곽조차 희미하오. 난 무지개라도 따를 준비가 다 되었는데 어디 있으오.
  까만 눈구름은 하늘만 덮었소. 아니군. 이 도시가 원체 새카매서 구름과 같이 있어도 구분이 안 되었소. 그만큼 어두우면 사무치는 외로움이 내 혼백을 갉아먹으오.
  멀찍이 당신을 봤소. 지나는 포니들이 일렁거려도 내 눈에는 선명하오. 기다리구려, 곧 가겠소. 이 간단한 말조차도 전하지 못하니 얼간이가 아니면 누가 얼간이요. 가지 말고 기다리시오. 곧 가오. 반벙어리가 소리를 낼 리가 없지. 목청은 내가 알던 그대로요. 붕대를 아무리 감아도 나은 것이 없소.
  옆구리가 쓰리오. 붕대가 감긴 곳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아프나.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탓이오. 몸의 속에서 뜨뜻하게 피가 흐르니 아프오. 전쟁터에서 다른 전우들이 그랬듯 피가 식고 굳어 상처를 모르면 좋겠소만 그건 소망일뿐이고 지금은 아프오, 끊임없는 고통은 붕대로도 못 감소.
  나를 찌른 이는 나의 가방을 들고 있소. 그를 노려보오. 소대장과 중대장의 얼굴과 닮았는데, 당신 친구의 얼굴이기도 하고 당신 조카의 얼굴이기도 해서 자꾸만 헷갈렸소. 나의 가방이던 것은 얼마 전까지 진열장의 가방이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강도의 가방이오. 칼로 가져갔으니 칼의 가방이오, 모두가 보고도 피하니 모두의 가방이오. 누구의 가방이든 확실한 건 나의 가방은 나의 가방이 아니라는 것이오.
  서럽지만 이것이 나를 서럽게 만드는 것은 아니오. 그저, 붕대가 잘려나갔다는 것이 서럽소. 붉게 젖은 헝겊은 허물처럼 스르륵 풀어져 오물 위로 쌓이고 흉한 날개가 다시 보이오. 역겨워서 견디기 힘드오. 옆구리에 길게 난 자국에서 끊임없이 뭔가 나오는데 날개는 그와 무관한 듯하오. 쪼그라들고 비틀어진 덩어리가 거추장스럽소. 붕대, 붕대는 어디 있나. 어서 기억이 났으면 하오.
  붕대는 가방에 있소. 가방은 남에게 있소. 그 추잡한 도둑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소. 지나는 포니를 잡고 물으면 알까. 아마 모른다고 할 것이오. 가방이 남의 것이니 붕대도 내 것이 아니오. 깨끗한 붕대는 너무 멀어져서 찾을 수도 없소 이젠.
 

 

 

 

 

 

 

 

 

 

 

 

 

 

 

 

 

 

 

 

 

 

 

 

 

 

 

 

 

3080자.

저도 거 웹소설 공모전에 참여하려 장편을 준비하고 있는데, 적잖이 힘드네요. 힘들어서 몇 시간 동안 괴롭게 만든 플롯 같은 것이 없는 이 소설을 씁니다.

이 소설의 정체가 무엇이냐. 알 수 없다. 상편에서는 그나마 나았는데 이게 대체 뭔지.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