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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오거리의 까마귀들, 1. 태양을 위하여 - 3
게시물ID : pony_403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가필
추천 : 3
조회수 : 31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4/20 20:58:53

1. http://todayhumor.com/?pony_37654

2. http://todayhumor.com/?pony_37790

 

 

 

 

 

 

 마차는 오 층짜리 병원 앞에서 멈추었다. 병원 앞에는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얼마입니까?” 구 둘을 건너 삼십 분 조금 넘는 시간을 달렸으니 마부들의 계산법으로 이용료가 사십 비츠를 조금 넘긴다. 늙은 마부는 사십 비츠를 불렀다. 미하일은 잠시 생각하더니 일백 비츠짜리 지폐를 건네고는 잔돈도 받지 않고 내려 병원으로 들어갔다.
 잠시 멍청하게 눈만 껌벅이던 마부는 그가 사라진 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왕가동에 감히 들어선 이 누추한 어스 포니를 행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병원 문은 삐걱거리는 흔한 소리조차 내지 않고 붉은 융단은 바닥에 깔려 밟으면 폭신하다. 환자들은 혈색이 좋았고, 병원의 직원들도 용모 단정하며 친절하였다.
 쏘른의 아들, 유니콘 근위병 일리사이는 사 층에 지방에서 올라온 어스 포니 늙은이는 일 층에. 직원은 꽃다발을 든 미하일을 보고 뺨을 붉히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말해주었다. 어차피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것이라면, 사 층에 먼저 들렀다 내려와 나가면서 할아버질 뵙자. 그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한다.
 사 층 오른쪽 복도 끝의 방에서, 일리사이는 네 명이 지낼 수 있는 넓은 공간에 혼자 있었다. 말상대할 포니 하나 없으니 적잖이 적적하고 외로울 듯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일리사이는 추웠다. 건물 전체가 마법으로 데워지는 왕립 병원에서 일리사이는 밤이 올 때마다 추워 몸을 떨었다. 밤, 밤이 그에겐 너무 춥다. 유니콘이 페가수스를 버리고 어스 포니는 그러지 않은 밤처럼 둘이 빠진 강물처럼 춥다. 그날 무서운 눈빛을 보내던 부근위대장이 병실에 막 들어섰을 제, 일리사이는 들끓는 혐오에 그의 몸이 발끝부터 서서히 얼어붙음을 느꼈다.
 미하일은 말없이 빈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렇게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일리사이.”
 “예, 부대장님.”
 일리사이는 감히 상관과 눈을 마주하지 아니한다. 그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다음에 올 어떤 말이라도 그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나 잔뜩 들으면, 얻어맞기라도 하면 한기가 가실 듯하다. 하지만 미하일은 그러지 않았다.
 “몸은 어떤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다행이군. 일리사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말과 어울리지 않게 부대장의 눈엔 전에 본 노기(怒氣)가 여전히 서려 있다. 그는 그 눈빛이 차라리 편안하였다.
 “공주님께서, 자네에게 훈장을 주신다는군.”
 당황으로 말미암아 눈이 동그라니 크게 뜨여진다. 쉽지만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훈장이요?”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착오가…….”
 명예로운 포니에겐 훈장이 주어진다. 그는 비참해졌다. 더욱 춥다.
 아하, 그렇구나. 그 훈장은 공주님께서 나를 가르치시는 것이구나.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아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로구나, 아하.
 이번에는 미하일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식으로 시선을 피한다. 창밖에는 바람이 세게 불고 있는지 이따금씩 북풍이 창을 들이받는 소리가 났다.
 “자네의 공로는 내가 공주님께 잘 말씀드렸네.”
 일리사이는 얼빠진 얼굴로 “공로요? 공로라 하셨습니까?”
 “…….”
 정확히 말씀해 주시진 않으셨지만 아마, 퇴원하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수여식이 있을 거야. 미하일은 그쯤 말하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후로는 죽 조용하였으나 그의 발이 나가는 문턱을 밟자, 일리사이가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
 “전 그 훈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대장님.”
 이에 미하일은 뒤돌아 눈알을 몇 번 돌리고, 갈기를 긁적거리어, 미치겠단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노기는 없는 눈알이었다. 그에 일리사이는 더욱 용기를 얻어,
 “저에겐 엄벌이 내려져야 합니다. 부대장님, 부대장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일리사이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미하일의 눈은 슬프고 무력해 보인다.
 “그걸 정하는 건 자네나 내 생각이 아니야.” “그럼?” “캔틀롯 학회의 유니콘들이지.”
 일리사이는 들었던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알았나? 자네 아버진 유능한 장군이시지. 다들 자네가 그 뒤를 잇길 원하고 있어.” 미하일은 피로했다. “무사히, 잘 말이야.”
 목이 무겁다. “부대장님 생각도 그러하십니까?” 목멘 듯한 소리다. “이미 대답했지 않나.”
 일리사이는 미하일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목이 부러졌으면 그래서 죽었으면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스산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병실 안은 몹시 추웠다.

 


 직원에게 들은 상세한 위치를 잊어 그가 일 층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참이다. 먼저 와 있던 그의 큰아버지가 그를 발견하고 인사하였다. 지근거리에 살면서도 서로 왕래하는 법이 없을 만큼 소원한 터라 거북스러웠지만, 일단은 그도 마주 답하였다.
 “큰 병은 아니라는구나.”
 학회에 논문을 몇 차례나 발표해 여러 학위를 딴, 그 아비의 자랑이 되는 어스 포니는 만날 포니가 있다며 병실의 위치를 알려주곤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미하일은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문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잠시 떠올려본다. 조부에 대한 그의 기억은 곧 추상같은 호통소리의 기억이었다. 주름 박힌 길쭉한 얼굴에 부릅뜬 눈으로, 노인은 항상 누군가를 꾸짖고 있었다. 이웃들이 실수를 하거나 손주들이 결례를 저질렀을 때면 여지없이 할아비는 큰소리를 내었다.
 모친의 옆에 바짝 붙어 시골로 온 미하일도 그 소리를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그렇기에 그는 조부의 말을 잘 따랐다. 말대답하지 말어라. 그림자 밟지 말어라. 다리 떨지 말어라…….
 그의 머리가 굳어갈 즈음에, 조부는 그런 말들을 하곤 으레 기침하였다. 그런 말들은 힘을 잃고 꾸짖음에서 가르침으로 변하였다. 족족 말대답을 해 상대방과 맞먹으려 대들거나 이기려드는 것은 굴욕감을 주는, 무례한 짓이다. 어른을 공경한다면 그림자도 피해 가는 성의를 보여라. 산만하게시리 다리를 떨면 남 집중하는 데에 방해된다. 그는 여전히 조부를 잘 따랐고 조부도 그를 사랑하였다.
 문을 연 미하일은 침대에 누운 네 명의 늙은이들 중에서 누가 그의 조부인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죽어가는 자들은 다 누군가. 그는 침대 난간에 붙어 환자의 신상을 기록하고 있는 카드를 보고서야 조부를 알아보았다.
 눈을 감고 있던 늙은이가 기척이 느껴지는 듯 눈을 천천히 뜬다.
 “미하일, 왔느냐?”
 몸을 일으키려다 힘이 부치는지 도로 눕는다. 느린 숨을 쉬는 늙은이는 그야말로 늙은이였다. 그가 알던 조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앞에 누워 있는 것은 다만 비 맞은 고목이었다. 그토록 정력적이고, 또 엄하던 어른이 어찌하여 세월이 흘러 흘러 이리도 허약해지었는고.
 그가 조부를 본다. 조부의 눈에도 그가 비춰진다. 죽어빠진 포니의 눈동자에 비친 미하일의 모습은 노인이 젊었을 적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
 “왔느냐.”
 조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편안한 모습을 보는 미하일도 다른 복잡한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할아비의 모습은 그러했다. 복잡하고, 치열하고, 우울한 삶의 흔적이 녹아 있었으나 피로가 드러나는 미하일의 얼굴과는 다르게 편안해 보인다. 미하일은 그것이 죽음이겠거니 생각한다.
 늙음과 병듦은 병원 곳곳에 똬리를 틀고 환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지침과 괴로움, 지루함 따위의 탈을 쓰고 있다. 환자들이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공허한 눈으로 그것들을 따라간다. 미하일은 그런 그들을―특히 조부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음울한 빛을 한 죽음이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음. 지극히 젊고 건강하며 정력적인 그에게는 아득하기만 한 단어이다. 마치 머나먼 이국의 언어 같은데, 대체 무슨 뜻의 말이기에 그의 조부를 이다지도 쇠잔하게 만들까. 몸져누운 조부의 늙은 모습은 미하일의 젊은 모습과 닮아 있었다. 미하일의 늙은 모습이 조부의 젊은 모습과 비슷할까. 미하일로선 알 수 없다.
 긴 세월을 순식간에 달려온 노인이 갑자기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눈을 홉뜨고 몸을 떨었다. 침상 옆의 탁자에 막 꽃다발을 내려놓던 손자가 그에 놀라 벌떡 일어나나 노인은
 “괜잔허다. 불이 난 듯 가슴이 땅기더니 이러니 좀 나서야.”
 노인은 다시 누웠다. 천장을 응시하며 느린 숨을 쉰다. 미하일은 그가 누워 멀뚱이는 것이 고목 같다고 재차 생각한다.
 미하일은 편히 앉지도 못하고 묘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다. 좀 전에 대충 상에다 올려놓은 꽃다발을 간단함 염력으로 정돈하는 그의 눈에는 약간의 연민이 차 있다. 이를 드러내 웃은 적 한 번 없는 조부.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에겐 그의 조부가 천장 너머의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실은 이미 혼은 올라가고 몸뚱아리의 파편만 여기에 남은 것이 아닐지. 이젠 육마저 하늘로 올라간 혼을 그리워하며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은 또 아닐지. 비록 껍데기일지라도 만약 허물어져버린다면 적이 슬프겠다고 미하일은 생각했다.
 노인은 그를 보지 않고―여전히 천장의 멋드러진 문양이나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어라. 난, 안 죽으니께.”
 이미 말라죽은 나무는 다시 죽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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