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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일 년 동안의 추도
게시물ID : pony_83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t_Three
추천 : 3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7/13 19: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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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셀레스티아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눈을 떴습니다. 이제 곧 밤과 낮을 바꿔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녀는 낮과 밤을 바꾸는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납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갈기를 단정히 정리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녀들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방금 막 만들어 따뜻했죠.

 

조화의 원소로 만든 액세서리를 제하고는 평생 동안 몸치장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 시간만큼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길게 흘러내려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갈기를 단정히 틀어 올리고, 깔끔하게 세탁된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화려하고 위압감을 풍기던 그녀의 모습이 대번에 수수하게 바뀌었지요. 준비를 마친 그녀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필의 로열가드가 그녀에게 충성을 올려붙였죠.

 

“수고했어요. 이제 둘 다 돌아가서 쉬도록 하세요.” 셀레스티아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로열가드들은 다시 한 번 경례하고, 병장기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지요. 아직 새벽이니까요. 셀레스티아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등불을 들고 성실히 일하는 시녀 몇 몇이 그녀를 향해 인사했죠. 셀레스티아는 그녀들에게도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그녀는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시녀 한 필이 푸르스름한 마법으로 등불과, 하얀 꽃다발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죠. 아직 어렸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시녀장의 뒤를 이을 포니였습니다. 그녀는 셀레스티아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셀레스티아는 역시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줬죠.

 

“새벽부터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구나.”

 

세바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지요. “아… 아니에요.” 셀레스티아의 격려에 허둥대는 모습이 퍽 귀여워서, 셀레스티아는 또 한 번 웃었지요. 웃음을 그친 그녀는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했습니다. 금새 정숙한 분위기가 되었죠. 세바는 황급히 문을 열었어요. 문은 경첩이 마찰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열렸습니다. 방 내부는 캔틀롯 궁전에서도 가장 큰 대강당과 맞먹을 정도로 컸는데, 높이가 낮고 좌우로 넓게 펼쳐진 계단들이 천장에까지 닿을 듯 높이 늘어져있는게 마치 극장같았습니다.

 

내부는 조명이 낮게 깔려있어서 은은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은은한 밝기의 불빛은 계단에 한 칸 걸러 한 칸씩 나열된 사진, 혹은 그림들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모두 포니들의 사진, 혹은 그림이었죠. 세바는 처음 보는 광경, 방 안의 풍경, 그리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셀레스티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셀레스티아는 의식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매일 이 방에 들어왔건만,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죠. 아마 나날이, 다달이, 그리고 매 해 늘어가는 방 안의 사진과 그림의 수 때문일 겁니다. 정신을 차린 세바는 조용히 문을 닫고 하얀 꽃다발을 셀레스티아에게 건네고자 했죠. 세바가 들어올린 꽃다발을 감싼 푸르스름한 빛이 셀레스티아를 현실로 이끌어 내렸습니다.

 

‘이 꽃들을 감싸는 빛깔이 바뀐 것도 몇 번일까.’ 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스름한 빛이 아니라 주홍빛이었죠. 30여 년 전엔 녹색 빛이었습니다. 그 전엔 분홍색, 그 전엔 노란색, 그 전엔 보라색… 셀 수도 없이 바뀌었네요. 앞으로도 그럴 테죠.

 

셀레스티아는 꽃다발 틈에서 꽃 한송이를 물고선 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세바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고개를 숙인 채 꽃다발과 함께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죠. 조금 높게 올라갔다 싶을 때 쯤 셀레스티아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춘 곳은 양 갈래로 갈기를 땋은 보랏빛 암컷 포니의 그림 앞이었죠. 포니의 얼굴 밑에는 세련된 글씨로 Carp라 적혀있었습니다. 그 옛날 목탄으로 투박하게 그려진 그림 위에 보랏빛 염료만 덧칠되어 있었을 뿐이라 엉성해보였지요. 셀레스티아는 그림 앞에 헌화하고 말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아니, 오랜만이야, 카프. 다시 볼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 같네.”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습니다. 카프는 숙녀답지 않게 불평도 많고 말도 험했지만, 활발하고 살가운 포니였죠. 게다가 농담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셀레스티아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질 정도였습니다.

 

‘안녕, 셀레스티아. 키 큰 건 여전하네. 원래 늙으면 나처럼 키가 줄어들어야 맞는 거 아냐? 게다가 주름도 없고, 뭐야, 완전 사기꾼이잖아. 백 살은 먹었을 할망구가 말야.’

‘후후, 여전하네요. 저는 아직 팔팔하답니다. 백 살이라도 알리콘이니까요.’

‘아, 정말, 나랑 이야기할 땐 먼저 그 소름 돋는 존댓말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 얼마나 소름 돋냐면, 내 자글자글한 얼굴 주름이 다 펴질정도로 소름이 돋는다니까?’

‘아하하, 그럴까?’

‘그래, 그게 백 배 나으니까 말야. 아아, 나도 알리콘으로 태어날걸. 그럼 이 빌어먹을 주름 같은 거 걱정도 안하고,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 나랑 같이 수천 년을 보내야 할 텐데?’

‘어… 그건 사양할게. 보나마나 나한테 이런 거 저런 거 시킬 거 아냐. 난 이제… 그냥 쉬고 싶을 뿐이니까.’

‘어머나… 아쉬워라.’

‘아, 진짜. 야, 울지 마. 아 울지 말라고, 좀!’

정말로 아쉬웠죠. 그런 친구를 보낸다는 건요. 그러니 눈물을 멈출 수가 있었겠어요?

 

셀레스티아는 황급히 추억 속에서 눈을 떴습니다. 더 이상 그녀를 추억했다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그녀가 다음으로 향한 건 군마 페가수스들의 그림이었습니다. 셀레스티아는 그 그림들 앞에도 하나 하나 헌화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셀레스티아가 공주로 추앙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번, 그리핀들에게 도전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 된 일이라 이젠 역사책에서도 ‘이런 이름의 전쟁이 있었다.’정도로 서술되는 전쟁이었죠. 기록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그리핀들은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군요. 오세이지는 그 당시 셀레스티아를 보좌하던 페가수스 기사 단장이었지요. 전쟁을 돕기 위해 크리스탈 포니들이 출정했지만, 그들의 지원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었습니다.

 

많은 전쟁 전문가가 설왕설래했습니다. 결론짓자면 궁전에서 버티는 건 승산이 없는 전투임을 길게 늘여서 설명했지요. 차라리 궁전을 버리고, 크리스탈 포니와 합류하는 편이 낫다고요. 오세이지는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기사단원들에게 딱 한마디 했습니다. ‘가자.’

 

십 육기의 페가수스들이 함성도, 비명도 지르지 않고 그리핀과 싸우고 지상을 향해 추락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던 라크가 가장 먼저 죽었습니다. 크로우는 그리핀에게 눈을 잃은 레이븐을 지키며 싸우다 결국 추락했지요. 롱빌과 킹 피셔도 화살 통이 다 할 때까지 활질을 해대다 결국 창을 집어 들고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슬러의 날개가 꺾였을 때, 마침내 크리스탈 포니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리핀들은 물러갔지요.

 

셀레스티아는 눈을 떴습니다. “고마워요.”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셀레스티아와 세바는 계속해서 사진과 그림 사이를 걸었습니다. 대여섯 번의 헌화와 추억, 그리고 인사가 이어졌지요. “고마워요.” “편히 쉬어요.” “반가워요.” 대상도 다양했습니다. 박식해 보이는 학자, 그냥 평범한 아줌마, 어여쁜 가희… 얼마나 지났을까요, 해를 띄울 시간에 늦지는 않을지 세바가 초조해할 때 쯤 마침내 셀레스티아는 헌화를 마쳤습니다.

 

셀레스티아는 방을 몇 걸음 걸어나와서, 다시 뒤로 돌아 방문을 바라봤습니다. 굉장히 높이 솟아있었죠. 그녀가 살아온 세월 만큼요. 셀레스티아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세바, 맞지? 도와줘서 고맙구나.”

 

세바는 황급히 대꾸했어요. “아…! 아니에요! 당연히 할 일인걸요!” 셀레스티아가 빙그레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곤 몸을 돌려 방문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지요. 세바도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바가 셀레스티아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공주님은, 매일 이렇게… 헌화를 하시는 건가요?”

 

셀레스티아는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세바를 바라봤죠. 세바는 또 당황해서 허둥지둥했습니다. “아니, 저, 그게…” 셀레스티아는 이번엔 폭소했지요.

 

“그래, 그렇단다… 매일 난 내 안의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 그들을 추도한단다. 과거에 이날 죽은 나의 친구들을 위해.”

 

여러분도 가족이나 친구가 죽은 날짜정도는 기억하시겠죠. 셀레스티아에겐 일 년 전체가 다 그런 날이었어요.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였습니다.

 

“있잖니? 나는 천 년을 넘게 살았단다. 나는 많은 포니를 친구로, 스승으로, 제자로, 신하로 삼았단다… 그들은 모두 죽고, 나는 살았지… 아아, 바람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건만, 변하지 않은 건 나뿐이구나…”

 

세바는 그녀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치만 뭐라고 말하고 싶은 지 알 수 없어서 입만 엉거주춤하게 벌린 채 그녀를 바라봤지요. 어느새 둘은 셀레스티아의 방 앞에 도착했습니다. 셀레스티아는 평상시의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죠.

 

“어머나, 내가 어린 아이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자, 세바, 오늘은 이만 가서 쉬도록 하렴. 내일도 잘 부탁하마.” 세바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셀레스티아의 방 문이 닫혔습니다.

 

셀레스티아는 틀어 올린 머리를 풀고, 옷을 벗었습니다. 이제는 태양을 띄울 시간이 되었습니다. 태양이 뜨면 모든 포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겠지요. 그러면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질 겁니다. 혹은 이어진 인연이 더욱 깊어지겠지요. 그녀는 자신의 애재자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그녀의 친구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사진 앞에 헌화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자아, 여러분, 이퀘스트리아에 또 다시 아침 해가 밝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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