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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작은 포니
게시물ID : pony_925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rror
추천 : 2
조회수 : 49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7/03/26 11: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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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법이 깃든 푸른 털을 지닌 포니는 낡은 마차 안에서 등불을 키고 책을 펴 읽습니다. 눈이 침침해 아픕니다. 타들어간 심지를 갈다 말고 기름도 많이 못 넣어서인가 봅니다. 뿔에 먼지가 내려앉습니다. 아마 청소를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뭘한것도 별로 없는데 서럽습니다. 모두가 밉고 다 슬프기만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 흐느끼던 작은 포니는 파란 갈기를 들어 쓸어넘깁니다. 나부끼는 털들이 자연스레 빠지지 않고 매말라 거칩니다. 작지 않은 포니는 잠시 쉬기로 합니다. 목이 아프고 살갖이 쓰립니다. 눈에 병이 들 것같이 어지럽습니다. 귀가 뜨겁습니다. 아주 아프진 않습니다. 그러나 기댈 곳이 없어 더 힘듭니다. "날 챙길 존재는 나 뿐이야. 신경 써 줄 다른 포니 따윈 전혀 필요 없어…." 눈을 깜빡이는 포니는 졸리지도 힘겹지도 않은 것처럼 몇번이고 되뇌입니다.

어떻든 몸이 아픕니다. 다 자란 포니는 마차가 좁다고 느낍니다. 튼튼한 다리로 땅을 딛고서 달리고 싶습니다. 흔들리지도 소리나지도 않는 바닥을 짓누르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루지 못할 것 같은 희망사항을 떠올리며 힘이 풀린 포니는 목을 풀고 머리를 듭니다. 오늘따라 얇고 탁한 창에 비친 햇볕이 눈부십니다. 여린 포니는 잠에 듭니다. 어느새 고개가 기울어, 몇차례나 읽었는지도 모를만큼 누덕누덕 기운 책 위에 침이 고입니다. 석탄재로 쓰인 글씨가 이리저리 흐릿하게 번집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뜹니다. 값싼 잉크에 불이 옮겨붙습니다. 마법을 끄적이다 부러진 깃털도 망토도 옛날에 열심히 공부하며 받았던 포상도 검게 타서 떨어집니다. 웃는 포니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좋은 꿈을 꾸나 봅니다. 아마 따스한 집 안에서 마법문제를 푸는 꿈일지도 모르죠. 어쨌든 행복해 보입니다. 눈망울에 물이 고여 짙은 눈썹을 적시고 바닥을 두드립니다. 우는 포니는 망토를 부여잡고 끌어안습니다. 눈가에는 이미 말라붙은 잿가루가 달라붙었습니다.
내리는 비가 찹니다. 잿먼지에 뒤덮힌 포니는 비를 맞습니다. 꿈 안쪽에서도 비가 옵니다. 어린 포니는 기쁘게 비를 맞으며 뛰어다닙니다. 귀여운 포니는 칭찬을 듣습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행복해 심지어 환희를 느끼기까지 합니다.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어미가 품을 내어 꽉 끌어안아 줍니다. 그립습니다. 똑똑한 포니는 왜 그리운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예날"처럼 행복합니다! 전혀 멀지 않습니다. 마음껏 어리광부리고 단 것을 잔뜩 먹어도 책임은 없습니다. 모든 게 다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가볍습니다. 바람탄 새처럼 빨리 움직이고 웃던 말광량이 아가씨는 문뜩 배가 고픕니다. 어지럽고 숨을 쉬기 어려워 체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답답합니다. 뜨겁습니다. 수증기가 시야를 덮칩니다. 끓는 물이 매끈한 나무바닥을 집어삼킵니다. 망아지는 깜짝 놀라 비명지릅니다. 깡깡 까작 하고 튼튼한 바퀴축이 아작나는 소리가 들리자 오랫동안 함께 세월을 맞았던 마차가 벽을 붙잡지 못하며 잠이 반쯤 깨어 주둥이를 벌린 포니를 토해냅니다.

잠이 살짝 덜 깬 포니는 네 다리를 쭉 펴고 일어납니다. 튕겨나가 구르다가 다치기라도 했는지 몇몇 관절이 화끈합니다. 멀찍이 기우뚱 기우뚱 나아가는 마차를 보니 아예 뼈가 엇나갔을까봐 걱정이 들기까지 합니다. 이미 반쯤 탄 망토 안에 넣어뒀던 값비싼 수정줄기엔 금이 가 향수통이 담긴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떨어냅니다. 혼자 맡은 향내가 참 어이없게도 쓰디씁니다. 아깝고 짜증이 나 그냥 버리려다 망토에 다시 매달듯 넣습니다.

물기처럼 축축한 게 이빨을 타고 흐릅니다. 다친 포니는 일어난 땅에 검은 피를 뱉고 쳐서 덮습니다. 이를 꽉 물고 고개를 흔들어 머리에 묻은 핏덩이를 떨어내자 학생 망토가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간 붉은 망토는 웬만큼 마법을 써서 잡기에도 빠릅니다. 흘러가는 시간만큼 돌이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쉽고 허탈합니다.

피흘리는 포니는 식어 차가운 땅 위에 앉습니다. 아직 채 다 못 뜬 해가 눈 아프게 밝고 난리입니다. 헐벗고 가진 게 없는 포니가 이끌리듯 뒤로 넘어집니다. 아야! 꼬리뼈가 뭔가에 눌려 아픕니다. 엎은 상태에서 자세를 잡아 눕자 어디선가 금화끼리 긁히는 소리가 납니다. 귀를 쫑긋 세워 듣자 바로 뒤입니다. 뒷다리에 밟혀 땅 안 깊이 솟아난 흙탕물에 젖어 물든 천자락이 드러납니다.
달리 볼 것 없이 발굽을 문질러 땅을 파서 끄집어 냅니다. 흙이 묻었어도 많은 금화를 품에 안으니 황홀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쌩뚱맞게 큼지막한 에메랄드가 마치 날 주워가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맑은 빛을 내며 투명히 반짝입니다. 바로 옆에선 흙 묻은 금화자루가 하나 더 파묻힌 채 누군가 꺼내어 써 주기를 기다립니다. 행복한 암말은 숨이 멎을 듯이 눈을 뜨며 활짝 웃습니다. 털가죽에 흙이 묻어나든 말든 지금 당장 이보다 더 기쁜 일을 찾긴 어려울 겁니다.
트릭시는 매마른 몸에 묶인 두 자루를 서로 매듭지어 안장처럼 쓰며 큰 길을 따라 평화로이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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