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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면전에서 나를 무시했을 때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게시물ID : psy_22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0
조회수 : 15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9/12/31 14:54:27
누군가가 면전에서 나를 무시했다고 치자.
예컨데, 부모가 "그것도 못하는 한심한 놈아" 라고 말했다거나
또는,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반말로 길을 물어봤다고 치자.
이경우, 제정신이라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며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분노"라는 감정은 자신에게 "부당한 손실"을 준 대상에게 향하는 감정이다.
즉, 화가 났다면 그것은 우선 타인으로부터의 부당한 행위가 있었고, 또한 그로 인한 자신에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손실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부당한 행위를 멈추게 하고 자신의 손실을 만회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화"라는 감정의 역할일듯)

예컨데 누군가가 1+1은 1이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이것은 부당한 행위라 할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러던가 말던가 무시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빌려간 사람이고,
2만원이 아니라 만원만 갚으면 된다고 우기는 경우다.
이 경우, 부당한 행위로 부터 자신에게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반면, 내기를 했을 경우, 2만원을 내고 만원밖에 못 건지더라도 상대방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만원이라는 명백한 손실은 일어났지만 이 과정에서는 부당한 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는, 화라는 감정에는 대상의 행위에 대한 부당함에 대한 인식과, 그 행위로 버터의 손실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로 돌아가서, 그럼 누군가가 면전에서 나를 무시했다면,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손실했길래 나는 그렇게 화를 내는가?
그 화는 앞서 만원을 잃었을때의 화보다 대개 훨씬 더 강렬하고 분명한 것으로 보아,
그 무엇은 만원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할 수 있다.
손실한 그 무엇은 무엇인가?

그 손실을 "기분이 불쾌해진 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기분이 불쾌해지는것, 또는 언짢아지는것 등은 모두 분노의 유의어 이기 때문이다.
무시당함으로 부터의 "기분이 불쾌해지는 손실"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함으로 부터의 어떤 부당한 손실 때문에 기분이 불쾌해 지는 것이다. 

그럼, "이 한심한 놈아"라는 한마디의 말을 들음으로써 나에게 발생되는 손실은 무엇인가?
그 손실은 "주도권"이라고 생각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고 비평할 권리에 대한 주도권" 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판단하고 비평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권한이다.
그것은 남이 강요해서도 않되고, 강요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남이 '너는 하찮고 못난 놈이야' 라 한다면
'아 그렇구나, 몰랐는데 난 형편없는 놈이었구나'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니가 뭔데 감히 나를 평가하고 비판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필요에 따라 그 주도권을 누군가에게 허락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 대단한 액션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를 평가 받고 검사받고 비평을 받겠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허락한 범위내에서) 자신의 윗사람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사표시이고
자신을 (허락한 범위내에서) 그 누군가의 아랫사람임을 인정하겠다는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존해야 하는 사람에게나 의존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가피 하게 스스로 그 선을 낮게 설정해서라도 자신을 비평할 주도권을 일부 허락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렇게 할지 말지, 어느정도 허락할지의 그 "선"을 결정하는 주도권은 엄연히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했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부당하게도' 허락도 없이 (또는 자신이 허락한 선을 임의로 넘어서)
자신을 "기대하는 것보다" 아랫사람으로 낮게 판단하고 (또는 간주하고) 함부러 대한다고 느꼈음을 의미한다.
나만이 주도할수 있는 고유권한인 자기 판단에 대한 주도권을 상대방이 동의도 없이 빼앗아서 휘두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대방에게 무시받음으로 인해, 나는 내 고유의 주도권에 손실을 입게 되었고 그 부당한 손실로 인해 나는 화가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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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무시받았다는 감정은 상대방과의 합의된 "선"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일면 상대적이다.
같은 행동이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시받았다고 느낄수도,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반말로 길을 물어보면 화가 나지만, 상사가 반말로 길을 물어보는 것은 화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와 상사간에 서로 자연스럽게 합의된 "선"안에서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존중해 주지 않더라도 합의된 그 '선'에 의해 화가 안 날수도 있다.
예컨데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에서, 김복남은 왠일인지 섬사람들에게 자신의 "선"을 거의 바닥까지 다 내 주었다.
부부로써의, 가족으로써의 기본적인 권리나 신체 보호권은 물론이고 성적 결정권 조차도 내 주었다.
그래서 온갖 횡포나 폭력, 경멸하는 말에도, 성폭력에도 화를 내지 않고 받아 들였다.
그러나 김복남은 자기 딸의 안위에 대한 주도권은 내 주지 않았는데
섬 사람들이 그것조차도 유린하면서 김복남을 건드린 바람에 사단이 난다.

또한, 분노는 "통제하기는 어려운" 손실로 부터 나오기 때문에
자신이 능히 통제할수 있는 존재로부터의 무시받음에는 화가 아닌 다른 종류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반말로 길을 물어본 모르는 사람이 성인이라면, 자신의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복잡하고 비용은 비싼데 불확실하여 통제하기 어렵지만
반말로 길을 물어본 모르는 사람이 꼬마라면 분노보다는 짜증이나 황당함이 앞설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꼬맹이를 꾸짓거나 훈계함으로써 스스로 상황을 어렵지 않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도 부하에게 무시받았다는 감정을 느낄수 있다.
예컨데, 부하가 자신에게 자신을 "기대보다는"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을 느낄때 그러하다.
즉, 기본적으로 부하는 상사를 자신보다 높게 설정하고 윗사람으로 대하며 행동하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상사가 그것이 자신이 기대한 것 보다 낮다고 느낀다면, 상사는 무시받았다고 분노할 것이다.

무시가 분노로 연결되지만 분노가 모두 무시로 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누군가가 갑질로 피해를 입는 상황을 보면 내가 무시받은 것도 아닌데 분노할 수 있다. (세월호나 국정농단 촛불집회도 같은 맥락)
분노가 부당함과 자신에게의 어떤 손실로 부터 발생한다고 한다면 이 3자간의 갑질 상황은 나에게 어떤 손실을 안겨 주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손실은 자기생각에 대한 위협에 따른 불필요한 긴장비용과 신경비용이다.  
예컨데 사필귀정을 세상모델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사고하는 사람에게는
갑질은 없어야 하고, 일어나더라도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만 한다.
그래야지 가장 합목적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상이 실제로는 사기를 쳐야 이익을 보고, 정직하게 일하면 피해를 보는 세상이 된다면
이들의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기대는 위협받는 것이다.
갑질사건은 그런 자신이 기대하는 세상을 위협하는 것이며, 이런 위협에 따른 손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런 불필요한 위협에 긴장하고, 일이 잘못 처리되는 것은 아닌지 신경써야 하는 것 따위는 손실말이다.
 
무시행위는 두가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첫번째는 "너는 하찮은 존재다"라는 인식이고, 두번째는 "나는 너를 그렇게 취급하겠다"라는 표명이다.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하찮게 생각할수는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무시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은연중에 읽어버렸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무시당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무시는 상대방에 대한 그런 인식을 상대방에게 대놓고 규정하며, 그렇게 아래것 취급하겠다고 표명하며,
나아가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인데, 그런 선을 허락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것은 명백히 폭력이고 도발이다.
무시를 받았다면 가능하다면 화를 내서 상대방의 부당함을 응징해야 하는 이유이다.

서로간의 합의된 선을 서로가 정확히 이해하고 인식시킬 필요도 있다.
보편적인 선 안에서 행동했는데, 상대방이 선을 넘었다고 광분하면 그것도 피곤하고 황당하다.
예컨데 지하철에서 어쩌다가 서로 어깨가 살짝 부딪쳤는데, 또는 식당에서 사장과 손님간에 주문 혼선이 일어났는데,
상대방이 죽일듯이 화를 내며 적대감을 드러낸다면 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이것도 일종의 무시다.
아마도 보통의 다른 사람이라면 넘어갔을 일을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만 아래로 보고 함부로 감정 쓰레기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화를 대받아 쳐서 상대방에 합의된 선을 정확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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