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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게시판이 생성됐는데 제일 먼저 프로이트가 빠질 수 있나요
게시물ID : psy_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말벗
추천 : 9
조회수 : 4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23 18: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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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글
 
 
 
가볍게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일화를 준비했습니다.
프로이트 일화는 재미로 보세요 ^^
 
 
*** 제가 쓴 글이 아닌 펌글입니다.
출처에 기입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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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아버지인 야곱 프로이트의 전처 소생인 큰 아들 엠마누엘이 아들 요한을 낳은 뒤에 두 번째 부인인 어머니 아말리에 나타손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요한은 프로이트의 조카가 된다.
 
프로이트는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 위인 조카(요한)와 사이좋게 놀기도 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보니 곧잘 싸우기도 했다.
 
한 번은 둘이 서로 싸우다가 프로이트가 요한을 때릴 때 아버지가 나와 프로이트의 귀를 잡아당기며 엄하게 나무랐다.
 
프로이트는 자기의 적(?)인 요한이 보는 앞에서 꿇어앉는 모욕을 당하고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한 같은 것, 정말 보기 싫어! 미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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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프로이트는 자라서 건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6살 때 쯤 손가락을 베어 조금 피가 나자 이처럼 약한 존재인 자기 자신을 한없이 경멸했으며 때로는 이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토하면서까지 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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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대학에 입학한 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열등감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학 때 오랫동안 그의 지도 교수인 브뤼케의 조수가 되기를 바라고 열심히 일했으며 충분한 자격이 있었음에도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실격되고 말았다.
 
그는 뒤에 이렇게 썼다.
 
“나는 왜 나의 가계, 즉 유태인이라는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내 자신이 인종적인 치욕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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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프로이트는 미국 클라크 대학 총장이던 스탠리 홀의 초정을 받고 정신분석학의 공로에 대한 축하 강연을 하기 위해 융(Carl Gustav Jung)과 함께 미국에 건너갔다.
 
그는 워체스터에서 정신분석학 5강을 강의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갔을 때
 
“믿을 수 없는 백일몽이 실현된 것 같은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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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대학에서의 초청 강연에서 그는 흥분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최초로 정신분석에 대한 강연을 하기 위해 클라크 대학 강단의 연단 위에 올라갔을 때 나는 내 일생의 믿을 수 없는 꿈이 실현된 것과 같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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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가서 아버지 대신 [괴테 상]을 받기 위해 그곳 시청으로 갔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거행된 수상식에 그의 딸이 참석한 일에 대해
 
"명예로운 수상식에 참석"한 것은 "참으로 내 생애 최고의 때였던 것이다."
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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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구상하면서 환자들에게 들은 1000가지나 되는 꿈의 사례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그 자신의 생활의 내면적인 의미를 끌어내어 해부하기 위해서 주로 그 자신의 꿈을 이용했다.
 
그는 본래 자존심이 센 소극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 생활 속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공표하는데 대해서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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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1월 2일 마침내 그가 5년 여 동안 전 정력을 다 써버리는 등 심혈을 기우려 집필한 《꿈의 해석》이 출판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이 결국에 가서는 의학계에서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책에 대한 찬성 의견이 제기되기를 크나큰 기대감 속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기다림은 마침내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의 책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의 책에 대해 논평을 쓴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그 논평의 요지는 냉소적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은, 이전에는 정식으로 학문적 훈련을 받고 있었으나 현재는 그러한 능력을 잃어버린 어느 의학도에 의해서 쓰인 것이다."
.
그는 친구인 후리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제 고도에 있는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내가 한 연구는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동안은 무시당할 것 같고 나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무명의 존재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한층 더 분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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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알고 있는 다른 일화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출처 1차 출처 : 《프로이트의 심리학》 라켈 베이커 저. 이 경준 역. 학문과 사상사 간. 1983년 4판,《프로이트의 심리학 해설》 설 영환 역 선영사 간. 1985년 초판 중 일부분
2차 출처 : http://blog.naver.com/charmdae/10015063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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