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병신백일장] 하루
게시물ID : readers_149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카.
추천 : 2
조회수 : 2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8/15 23:15:12
옵션
  • 본인삭제금지
사실 스팀보다 더한 건 책일지도 모릅니다.
매번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밌네요.
가볍게 적을 기회가 생겨서 좋습니다.

놀러오세요~

------------------

곧은 자세로 숨 막히는 일주일을 견뎌낸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포상이란 금요일로 바뀌어 있는 휴대폰 메인 화면뿐이다.

단순히 한 글자만 바뀐 저녁일 뿐인데 주변은 나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분주하게 흘러간다.

짝지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연인, 들뜬 표정으로 기차표를 연신 확인하는 주말 가정의 가장, 누군가와 연신 통화를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이름 모르는 이들.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이 없는 나를 없는 사람 치부하며 각자의 바쁜 삶을 구워내기 바쁘다. 구린 냄새를 느끼는 건 나밖에 없나. 주위를 둘러봐도 거울은 없었다.

몇 년 째 같은 불판을 난 걸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변한 건 없었다. 그저 싸구려 감상이 더욱 짙어진 것 외에는 말이다.

전에는 나도 저들과 같았겠지.

누군가가 어깨를 치고 가더니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손에 쥔 휴대폰은 놓지 않는다.

아니, 같지 않았어.

미안함이 기쁨으로 바뀌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쓰디쓴 동정을 받는 기분이다.

잠시 생각에 빠졌더니 발이 멈췄나 보다. 주변 사람들이 연신 힐끔 쳐다보며 제 갈 길을 가는데, 눈을 위 아래로 까는 게 보기 싫다.

이 몸도 이제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너도 나와 같은 주인 모시기 싫겠지. 몸뚱이도 가누지 못하는 구나. 나란 놈은.

놈이 눈을 부라리며 나에게 말한다.

넌 여전히 쓸모없는 놈이야.

그랬지. 부정할 수 없어. 한 때 누구보다 빛나던 너를 고장 낸 건 나였어. 미안해.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런 놈이다. 같은 지붕 아래 산지도 이십 오년이 훌쩍 넘었거늘, 조금의 정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기 바쁘다.

그래도 이해한다. 나 외의 사람을 만났다면, 일간 스포츠 신문에 네 모습이 나왔을 테지. 어쩌겠냐. 이게 운명이란 것일 텐데.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무릎으로 말한다. 하하. 알겠어.

나는 입을 닫고, 뒤집어진 길을 걸었다. 말 잘 들어야지. 안 그러면 집에 가지도 못하잖아.

몇 분이 지나자 괴물들이 나타나는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삼키며, 뱉어내는 괴물.

 

나도 월요일엔 다시 저 괴물에 삼켜져 이곳으로 배달 될 거다. 그래도 지금은 삼켜지는 고통보다는, 토해낼 때의 해방감을 기다린다.

얼마간의 시간이 또 지났다. 일 분이 고통스러웠던 어제는, 오늘로 변해 마법을 부린 듯 분 단위는 우습게 삼켜버렸다.

이 또한 괴물이다. , 이 괴물들이 싫다.

괴성이 들리며 인상 쓴 아저씨가 나를 보았다. 괴물을 다루는 이 솜씨 좋은 아저씨는, 눈을 내깔더니 나를 노려본다. 다리가 움직이며 자연스레 삼켜진다. 이건 놈이 부리는 마법 중 하나리라. 난 그렇게 믿는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막 삼켜진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위 아래로 훑어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알까. 무의식적인 평가가 사람을 얼마나 짓누르는 지 말이다.

그 평가에 질려 나는 독촉하다 고장 내고 말았다. 쓸모없는 놈이 되고, 쓰레기가 되어 목요일과 일요일만을 기다린다. 밤에 거리에 나가 서 있으니 데려갈 생각을 안했다.

아마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겠지. 나란 놈은.

그들이 보내는 경멸에, 나는 움츠리며 파고 들어가 괴물의 항문에 자리 잡았다. 누구보다 이 괴물에게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자리다.

잠시 후 나보다 먼저 토해질 사람들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미친, 정도껏 해야 할 거 아냐. 내 자리라고.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그런 놈들이 내 손가락 수를 넘었다. 방금 내린 놈의 짜증 섞인 눈이 눈으로 들어왔을 지언데, 가슴으로 파고든다.

몸이 서늘해지며 몸을 움츠린다. 피해를 본 건 나인데, 왜 내가 이렇게 해야 하.

의문은 들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하나, 내 맘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일도 그렇고, 사소한 지금도 그렇다.

여러 번 열렸다 닫히며 드디어 내가 해방될 순서가 왔다. 이때만큼은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으리라.

어때? 내 행복이 부럽나?

시릴 듯한 공기가 나를 반기며, 부정을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꼴사납던 놈들도, 나를 보던 그 눈들도.

이 편안함이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 안는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익숙한 내 방이 보인다. 하나, 둘 세어보니 달라진 건 없었다. 아쉽도록 쓸쓸한 풍경이 이렇게나 반가웠던가.

그간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무엇을 기대했던 거냐 난.

그들과 같지 않다며 부정하며,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했던 건가. 입이 쓰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목에 넘어갈 것들은 없었다. 온통 백색으로 가득 찬 것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갑갑한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연다. 열어보니, 한 연인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둘 다 웃으며 거리를 걷는 게 속이 쓰리다. 갑갑함이 더해진다.

우웅. 우웅.

조심스럽게 자극하는 허벅지 위 시계는 오랜만에 본인의 임무를 자각한 건지 격하게 운다. 못 올라갈 나무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건가.

조용한 방은 자그마한 소리만으로도 사람을 놀라게 한다.

흠칫 몸을 떨며 급하게 주머니에서 꺼낸다. 그러다 땅에 한 번 떨어뜨리니 그 짧은 시간에 끊어지지 않을까 초조함마저 든다.

급하게 줍느라 어깨에 무리가 갔는가보다. 제대로 된 자극을 평생 동안 받아본 적 없는 터라 이 정도 쯤은 익숙하지만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마에 줄이 그어진다. 어두운 방안에 적막함이 사라지고, 켜지 않았던 형광등을 대신해 스마트폰이 방안을 밝힌다.

***-**82-125*

저장된 번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으로 보건데 보나마나 그런 쪽이리라.

목 안을 깨끗이 하고 엄지를 오른쪽으로 옮긴다. 기대감을 품는 건 미친 짓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슬쩍 몸이 떨리는 게 요상하리만치 즐겁다.

어눌한 한국말로 방안이 가득 채워진다. 살아 숨 쉬는 나보다 죽은 이것이 존재감이 더 큰 것만 같다.

인터넷은 쓰질 않고, 전화 바꿀 생각도 없으며, 훔쳐질 자식도 당연히 없다. 내 개인정보는 당신들이 가지고 있을 게 아닌가. 빼내갈 것도 없는 건 모르는 모양인 것 같으니 이참에 참고로 알아두시고,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마이소.

일주일에 어쩌면 이렇게 정확히 꼬박꼬박 전화 거는 건 부모 자식 간에도 힘들지 않을까. 괜스레 꼬인 맘 한 번 더 꼬아보며 많은 문장을 토해낸다.

다시 불이 꺼진 조용한 방을 스윽 둘러보며 약간의 유희를 끝낸다. 너도나도 사는데 약간의 즐거움은 있다하더니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

세탁한지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마저 나는 이불에 몸을 뉘이고 나니 어두컴컴한 천장이 더욱 커다랗게 보인다. 비어있는 책장 쪽에 있는 문양은 왠지 누군가를 닮은 것 같고, 거지의 뱃속 같은 옷장위의 문양은 조금씩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누워 있다 보면 곧 방이 살아 숨 쉬는 게 느껴지겠지. 그러다 무서워 며칠 동안 밥 한 번 준적 없는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천장이 널 집어 삼키기 전에 얼른 꺼내야해.

베개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외친다. 충실히 따르며 아무렇게 던져놨던 것을 더듬더듬 찾아낸다.

다시금 환해지고, 안도감에 젖어 베개는 두 팔을 벌려 내 머리를 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고생했어.

오늘도 이렇게 끝난다.

다시 눈을 뜰 땐 부디 모든 것이 끝나기를.

 

위선이 가득한 하늘은 내 바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난 다시 눈을 뜬다

반복이 멈춘 짧은 날. 다시 굴러가기 전 쉬어가는 그날. 사실 난 그 하루가 몸서리치도록 무섭다.


-------------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