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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소설 - 커피 못 마시는 현섭씨
게시물ID : readers_150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꿈이예술인
추천 : 4
조회수 : 5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19 04:14:23
커피못마시는 현섭씨 
여전히 푹푹 찌는 여름이지만 여기 카페 안은 찬 공기가 가득하여 쾌적하다. 머리 질끈묶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지만 공부에 도저히 정을 붙이지 못하는 내게 2천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하루종일 앉아 있을 수 있는 이 카페가 더 적성에 맞았다.
그리고 이 곳에 오면 별난 현섭씨를 만날 수 있어 내 발길을 끊을 수가 없다.  항상 즐거운 말투로 인사를 하고, 작은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큰 체격에 두터운 손이 꽤 재미있는 조합이다.

그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구석자리에 가서 커피잔을 바라봤는데, 그 큰 몸을 끌고 작은 카페 구석자리에 가서 작은 커피잔를 바라보는 그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현섭씨는 정말 커피를 멋지게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다. Udt 중사를 하다 발목을 크게 다쳐 전역한 그는 매우 정상적으로 걸어다닐 수 있었고 매일같이 전역이 억울하다고 했다. 꽤 인정받는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특수부대에 있을 때는 몸 꽤나 좋은 남자였겠으나 지금은 그저 아저씨에 불과한 커다란 남성이지만, 그 투박한 손으로 내리는 커피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다.

작은 카페라서 손님도 별로 많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커피를 만드는 시간이 오래걸려서 손님이 많을 수 없는 건지 모르지만, 현섭씨는 꼭 영화 '가비' 에 나올 법한 전통적인 커피를 만들어낸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입이 고급이 아니라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파는 커피와 자판기 커피를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정도지만 그의 커피가 뭔가 남다른 것이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런 현섭씨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커피를 배웠고 무슨 계기로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인지. 현섭씨는 잇몸을 보이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자신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아니?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커피를 배워서 사람들에게 판다니 난 꽤 어리둥절했다. 현섭씨에게 조금 더 캐묻고 있던 내 옆에 그와 정말 이미지가 비슷한, 누가봐도 군인인 사람이 와서 현섭씨를 놀리는 듯한 말투로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섭씨가 근무하던 부대 앞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거기서 커피를 만들던 카페 사장이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섭씨와 그녀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니, 그녀가 현섭씨에게 커피를 가르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얼마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현섭씨가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없어요. 저 사람과 말을 나누고 친해지지 않으면 절대로 안된다는 무지하게 강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다가갔어요. 처음엔 조금 무서웠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군부대 앞에있는 카페라 노망난 군인들이 직접대기도 하고, 젊은 군인들이 연락처 얻어간게 한두번 아니라는 소문은 저도 익히 들어 알고있었고, 그 와중에 커다란 군인이 와서 말을 거니 꽤 놀라면서도 귀찮았을 거에요.
 근데 참 공감대가 안 생기더라고요. 저는 군인이고, 때로는 훈련한다고 3주는 땅을 못밟을 때도 있으니 해봐야 핸드폰을 가지고 놀거나 술을 마시는게 세상의 전부인데,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담고있었어요. 친해지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전 커피를 공부하기로 했어요. 돈도 아낄 겸 부대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커피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는데, 그 중에 제가 지금 만드는 커피에 대한 책이 있었어요. 
사실 만드는 법이 나온 책은 그 도서관에 그 책 한권이더군요. 전 그게 진짜 요즘 커피 만드는 법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그녀 옆에서 제 커피를 보여주려 하니 그녀는 그냥 기계 버튼 하나로 커피를 내려주더군요. 하하 참 얼마나 기가 차던지. 전 커피 공부한다고 진급시험도 두번이나 떨어졌어요. 머리통 달린 사람이면 다 붙는다는건데도요.
하지만 효과가 있었어요. 그녀가 제 데이트신청을 받아준거죠. 첫 데이트때 우린 영화를 보고 밥을 먹으며 무난한 시간을 보내고, 걷다보니 어느 카페에 앉게되었어요. 아, 근데 저는 커피를 못마시잖아요. 전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엄청나게 아파요. 여태까지 그녀가 주는 커피는 참고 마실 수 있었어요. 

근데 쓰러지기 까지 할줄은 몰랐죠. 머리아픈건 그냥 참고 그녀 앞에서 웃고 있으려고 했는데, 아메리카노를 너무 많이 마신탓이었는지 그녀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깨어났고 크게 문제는 없었만 그녀에겐 문제가 있었죠. 일단 많이 놀랐겠죠? 그녀의 인생에 커피는 전부였는데, 간신히 마음을 열게해준 제가 커피를 못마신다니, 별거 아닌 문제 같지만 꽤 우울해했어요. 여태까지 자신을 위해서 참으면서 커피를 마셨냐고, 커피 공부는 왜 했냐면서.
 전 당연히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던거고, 결국 그녀도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린 꽤 오래 사귀었어요. 서로 커피는 안마시는걸 조건으로요.  그렇게 2년 반쯤 지났나, 갑작스러운 동원령으로 급히 해군 함정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2주정도 있다가 땅을 밟았을 땐, 그녀가 땅에 없었어요. 망할 교통사고로, 그녀가 땅에 없었어요. 제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녀의 흔적조차 없더군요. 근데 그녀가 뭘 사오다가 사고를 당했냐면, 차 우리는 책이랑 찻잎들이에요. 훗날 그녀의 동생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저와 함께 마실 수 있는 향 좋은 차를 만들어보려고 공부를 시작했다더군요. 그렇게 미쳐서 학교도 때려치고 공부하던 커피를 놓고, 차를 공부했대요. 
저 때문에.  그래서 제가 그 카페에 있는 모든걸 가지고 와서 여기에 카페를 차린거에요. 제가 처음 그녀에게 만들어주었던 커피를 계속 만들면서..."  꽤 숙연했다. 

손님들도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카페는 조용했다.

 "하하! 그럼 기계로도 커피를 한번 내려볼까요!"  

현섭씨는 크게 외치며 뒤돌아 커피머신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현섭씨의 군인 동료로 보이는 그에게 머쓱한 웃음을 짓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작은 카페 구석자리에 커피한잔이 놓여있다. 그 커피에 그런 사연이 있는줄 알았다면 그렇게 즐거워 하지 말걸. 그의 커피가 느낌이 다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알바하다 떠올라서 휘갈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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