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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첫 차
게시물ID : readers_16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렇기에
추천 : 2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23 02:02:45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쯤 친구는 자연스럽게 클럽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나도 한동안 가고 싶었지만 짝이 없어 못갔던터라 오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이다지도 쉽게 채워줄 수 있음에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이내 술자리의 대화는 클럽과 음악, 그리고 그곳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버렸다.

 화장실 거울에 비쳐지는 내 모습을 보니 꼴이 형편없었다. 술기운에라도 클럽에는 들어가겠지만, 여자를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나를 피해 다니지는 않을까 걱정 되었다. 그런 상상을 하고나니 집에 일찍 들어가 잠이나 푹 자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그는 단적으로 말해 참 못생긴 사내였다. 키는 내 가슴팍 만하였고, 코는 낮은 대다 눈은 작고 그 빛이 선량하지 못했다. 그는 거울을 보며 뻣뻣해 보이는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연신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작은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술집에서 나온 우리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농담을 했다. "니가 그때 나 안 말렸으면 그 새낀 죽었어." 친구는 언제 있었던 일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옛 일을 으스대며 말했다. "그때 내가 말려서 니가 안죽은거야." 고작 이런 대화에 우리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소리로 웃어댔다. "여기서 내가 제일 잘생겼네." "그렇네. 나 다음으로."

 클럽 로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예쁜 여자도 더러 있었다. 그 중 한명을 눈치로 꼽아 친구에게 어떤지 물어봤다. 친구는 덤덤하게 별로라고 대답했다. 나는 굳이 친구에게 저 여자도 너를 별로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며 나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리고선 "예쁘긴 한데, 특별한 게 없잖아."라는 묘한 말을 하는것이다. 친구의 말대로라면, 바야흐로 여자는 아름다움을 너머 특별함까지 갖추어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특별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 해보기 위해 친구가 요전에 만나던 진주라는 계집애를 떠올려봤지만,좀 더 혼란스러질 뿐이었다.

 나는 어둠속에서 한 여자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목까지 오는 민소매 니트 티에 스키니 진, 그리고 단발머리. 차림새의 과감함으로 보아하니 아마 23살은 됬을터 였다. 나는 주변 남자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시선을 느꼈다. 이것은 일종의 사냥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누군가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홀연히 음악이 바뀌어 달콤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냥꾼들은 이 기회를 민감하게 포착하여 그녀 곁으로 움직였다. 나는 왠지 이 일에 동참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버스 첫 차는 꽤 북적북적했다. 나와 같은 밤을 보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이들은 모두 전날 밤에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으레 그것에 대해 실망했거나, 포기했거나, 피곤한 사람들뿐이다. 이들과 같은 버스에 앉아 집의 안락함을 떠올리고 있던 나는 스스로가 몹시 구차하게 느껴졌다.

 버스는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섰다. 나는 습기가 끼어 흐릿한 창문을 통해 어떤 연인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남자 쪽이 어제 술집 화장실에서 봤던 그 사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더 자세히 볼 요량으로 소매로 창을 문질렀다. 그의 옆에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한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지는 상상을 했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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