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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하는 글은 가치없는 글인가?
게시물ID : readers_16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ushian
추천 : 1
조회수 : 47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10/25 03:25:29
예전에 타이밍 안 좋게도 책게에 글을 하나 올렸더니, 시 대회가 열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묻혀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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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dayhumor.com/?readers_15606


누가 소설 추천해달라기에 제 소설 추천했다가 반대 먹은 적도 있습니다....(http://todayhumor.com/?readers_15613)
제 생각엔 반대 먹을 만한 댓글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글 묻히는 경험은 저만 하는 게 아니므로(...) 갑자기 궁금해지더군요.
주목받지 못하는 글은 과연 가치없는 글일까요?
그래서 지인에게 편지를 썼는데, 지금부터 나오는 글은 제 주관이 담긴 글입니다.



(중략) 주목받지 못하는 글은 가치없는 글인가? 당연히 궁금한 질문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님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어 어이없어 보이는 질문일 지도 모르겠네요. 저걸 글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꾸면 당연히 틀린 말이 됩니다. 소외당하는 사람일지라도 나름의 가치가 있고, 사회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을 소외에서 해방시키려고 하고, 그걸 흔히 '복지'라고 부르죠. 복지 수준에 따라 사회를 평가할 수도 있으니 되짚어보면 소외당하는 사람이 받는 대접이 일종의 '척도'이자 '평가기준'이 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는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람'이니까 다른 이야기가 되죠. 주목받지 못하는 게 '상품'이라면, 그것은 그것이 내재한 '사용가치'와는 관계없이 '교환가치'는 없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환가치'가 없으면 그 '상품'을 파는 상인은 손해를 보겠죠. 상인은 단호하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품은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런데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글'이거나 '만화'거나 '예술품'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요즘 이런 게 헷갈립니다. 글을 써도 누가 보는 게 아니고, 정보의 바다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투기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오히려 단 한 명이 보더라도 시험지는 채점자가 볼 테고, 크든 작든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적표가 나오면 저와 저희 가족의 기분을 고양시킬 수도, 반대로 낙담시킬 수도 있죠.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 님이 좋든 싫든 제 글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압니다. 님은 기본적으로 상식과 교양을 갖췄으니 이 편지가 제대로 도착한다면 님은 답장을 쓰려고 하겠죠. 그러니 이 편지는 인터넷에서 소리없이 묻힌 제 글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전에도 챗방에서 고흐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고흐는 사후에 주목을 받았죠. 그렇다면 죽기 전까지 자기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는 자부심이 들었을까요, 회의감을 품었을까요? 저라면 회의감이 들었을 것 같군요. 고흐의 죽음에 관해서 다소 논란이 있는 것 같지만, 대체로 자살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죽어서 누리는 명예는 대체 뭐가 좋은 걸까요.
 요즘에는 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공개하는 게 쉬워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늘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기에 주목받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단순명료하고 자극적이고 신랄하고 과격할수록 주목받기가 쉽다는 건 어그로꾼 세계(?)에선 잘 알려진 상식(?)일 겁니다. 늘 비슷한 자극은 피로감을 일으키기에 자극은 나날이 독창적으로, 과감해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정보에 노출된 우리는 정작 진정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지겹고 지루한 정보에서는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단편적인 이미지는 머릿속에 가득한데 체계적인 사상을 가진 자는 드물게 되는 까닭이죠. 물론 여전히 세계적인 철학자는 세계 각국에 존재합니다. 하버마스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클 샌델이나 지젝, 촘스키 등 나름 유명한 철학자들, 분명 있습니다. 있구 말구요. 국내에도 도올 선생이 계신 걸! 문제는, 일반인들 중에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즉흥적인 사고방식의 연쇄작용이 우리의 삶을 보다 나쁘게 만든다는 데 있죠. 이렇게 잘난 듯이 쓰는 저도 사실 꽤 즉흥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랍니다. 그래서 내가 잘 안 되는 건가...!
 ㅇㅂ는 그래서 자기들이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대중을 피로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정보를 양산하는 데 성공한 편입니다. 그들 개개인도 일반인의 윤리관을 가뿐히 깨뜨리는 추악한 사건으로 관심도 많이 받게 되었죠. ...혹시 거기도 버러지 있습니까? 그럼 이 편지는 몰래 읽으시길 권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관심받고 싶어합니다. 그런 욕구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죠. 누구나 생존, 번식, 행복을 향한 욕구가 있습니다. 관심도 그 중 한 가지에 불과하구요. 단지 목표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비판해야죠. 그런데 이런 비판과는 무관하게도 그들의 글에도 나름의... 분석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그간 억눌러왔던 추악한 면모들을 그들은 억누르지 않고 마구 발산해버립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들이 매도하는 대상은 확실히 일반인들은 건들지 못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그런 대상을 자주 '성역'이라 표현하는데, 자기네들은 '세상에 성역이란 없다'고 하죠. 문제는 그런 '성역'(?)들이 대중의 도덕심과 윤리관에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은 결단코 발생하지 않아야겠지만, 만에 하나 그들의 선동이 성공한다면 그 때는 이 나라의 도덕, 양심, 윤리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사태가 될 겁니다. 다행히 그들은 체계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기 때문에 대중을 설득하기보다는 겁박하는 꼴이 됨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대중을 설득할 생각은 별로 없고, 대중을 피로하게 만들고, 경악스런 가십거리로, 역겨운 구설수로 대중의 이목을 붙잡습니다.
 저는 요즘 사람 치고는(?) 글을 길게 쓰는 편입니다. 요즘은 좀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데 생각만큼 잘 되진 않는군요. 저는 말도 느린 편이고, 하는 말도 장황한 편입니다만, 친구들과 있을 땐 주로 듣는 쪽입니다. 할 얘기가 있을 때 말이 길어진다고 볼 수 있겠군요. 마치 이 편지처럼요. 저는 오프라인에서도, 특히 명절 때 집안 어르신들과 정치 얘기를 할 때 듣기만 하진 않습니다. 저는 확실히 타인을 아군으로 삼기 위해 타인을 설득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럴 땐 제 전공인 경제학이 큰 도움이 됩니다. 학교에선 대체로 입 다물고 지내지만(사실 입을 열면 지나치게 수다스러우므로...) 오프라인에선 주목받을 만한 말을 합니다. 자극적인 말로? 아뇨, 저는 어르신들의 관심사가 경제보다 돈과 부동산임을 알고, 돈과 부동산 얘기는 필연적으로 경제랑 연계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사실 경제학 원론만 읽어도 알 만한 얘기지만, 어르신들은 골치 아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습니다. 지쳐있기도 하지만, 일상에 치여 살면 '여가 시간'이 정말 없게 되죠. 결국 논리적인 얘기를 간략히 말할 수만 있다면, 설득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상대가 말이 통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저는 운이 좋은 편인지 제 주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경청할 줄 아는 사람들이죠. 이상하게도 오프라인에서처럼 온라인에서도 굴면 그게 잘 안 통하더군요. 말과 글은 그 특징이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내용이 같으면 반응도 좀 비슷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헷갈리게 됩니다. 분명 가치 있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글로 옮기면 가치가 없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앞서 정보의 바다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기분이 든다고 적었는데, 쓰레기 같은 글과 같은 혹은 비슷한 말을 주변에 많이 떠들어댔거든요. 그럼 저는 타인이 듣기 원치 않는데도 억지로 소음 공해를 일으키고 선동 행위를 하게 된 걸까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에이,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내가 인기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 탓이야!'라는 생각도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의미 있는 말을 했고, 나름 타당하니 별다른 반론이 없는 것일 터... 그리 생각이 들다가도 혹시 내가 나의 주장에 대한 반대 근거는 모두 묵살해버린 것은 아닐까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누가 열성적으로 떠드는 데 거기에 대고 "그건 좀 아닌데."라고 반론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죠. 더욱이 어르신들은 자신의 주의주장을 겉으로 잘 안 드러내는 경향이, 경청을 잘 하는 것과 비례해서 강해집니다. ㅇㅂㅇ 연합 사람들이 특이..하기도 한 것이지만, 경청을 잘 안 하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경험에 근거해서 생각합니다.
 버러지도 오프라인에선 분명 정치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청중의 성향과 맞물리면 자신이 옳은 얘기를 말하고 있다는 오류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물론 크나큰 착각이죠. 그런데 그 착각, 저라고 하지 말란 법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착각하지 않으려면 경청하는 습관은 필수입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글은 가치없는 글인가? 여기까지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저로선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사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시험 공부 때문에 피곤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탓도 있고... 밤이 깊은 탓도 있고...
 주목받는 말이나 글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듯, 주목받지 못하는 말이나 글이 가치없는 건 아닐 겁니다. 때가 되면 가치 있는 말과 글이 거듭 회자되기도 하고, 주목받은 말과 글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혹은 한 순간에 잊히기도 하겠죠. 유명세나 명예는 시류의 영향을 많이 받거니와, 개인이 마음먹고 행동한다고 해서 예측한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닐 겁니다. 누구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누구는 유명세를 감당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사실 저도 유명해지고 싶긴 하지만,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해지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또, 유명해진다고 해서 누군가 스토커처럼 저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소름돋을 거 같군요... 정면에서 오는 거라면야 괜찮을 듯싶습니다만.
 경제학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답니다. 그 중 네 명의 경제학자를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우선 프리드리히 리스트.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창했던 독일의 경제학자입니다. 동시대의 학자가 하필이면 아담 스미스여서 큰 주목을 못 받았는데, 그는 숲에 들어가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네요. 그의 학설은 훗날 최악의 정치가인 히틀러가 이용해먹습니다. 끝까지.. 죽어서도 불우한 사람이죠. 두 번째로 칼 마르크스. 그는 유럽 각지에서 명성을 쌓아갔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그의 절친인 엥겔스가 마지막까지 그를 돌봐주고 책 출판을 도왔죠. 오히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것은 존 스튜어트 밀입니다. 마르크스는 밀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발표했다는데, 정작 밀은 마르크스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가 몰랐을 거라고 합니다. 마르크스의 학설은 많은 비판을 받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들이 그의 학설에 대해 연구하며, 일반인들도 마르크스를 밀보다 더 많이 들어본 경제학자로 꼽을 겁니다. 세 번째로 소스타인 베블런. 이 사람은 괴짜로도 유명한데, 수 년 간 집안일 거들지도 않고 빈둥거리다가 대학에 취직하고 책 한 권 쓰자 벼락스타가 된 학자입니다. 사실상 제도주의 학파의 시초죠. '유한계급론'은 두 번쯤 읽어볼 만한 글입니다. 네 번째로 칼 폴라니. 그의 집안은 타인을 위해 벌어들인 돈을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고, 피터 드러커라는 경영학자는 칼 폴라니를 매우 높이 평가했으나 살아 생전에 유명세를 얻지 못 하고, 2008년이 되어서야 그 이름이 서서히 거론되는 학자입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거대한 전환'이 있습니다.
 이들 네 경제학자의 공통점이라면, 도무 남들은 감히 흉내내기 힘든 독창적인 사상을 글로 썼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무명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죠. 베블런은 예외로 보이시겠지만, 제 기억에 그는 정말 긴 시간을 빈둥거리며(?) 살아야 했고 첫 저서를 낸 것이 아마 마흔 중반..이었을 겁니다.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거치는 것은 허다하며, 설령 결과물을 내놓아도 늘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란 보장은 없죠. (후략)



뒤에 내용이 더 있긴 한데 개인적인 얘기라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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