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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양해(諒解)
게시물ID : readers_16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렇기에
추천 : 1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30 03:45:56

  나를 한참이나 무섭게 노려보던 도현이는 걷기 시작했다. 저 앙다문 입술. 또 시작된 것이다. 이 걸음은 나에게 일종의 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도현이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도현이가 이런 식으로 화를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 상황에서 도현이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도현이는 정리되지 않은 날카로운 말들로 나에게 상처를 내려고 들것이다. 이건 오랜 연애, 아니 오랜 싸움을 통해 터득한 확실한 경험칙이었다.

 

  우리는 경상감영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이 동내 주변은 어디고 할 것 없이 할아버지 냄새가 났다. 도현이가 굳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동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화가에서 단지 길하나 건넜다는 이유로 모든 것들이 낡아 있었기 때문이다. 도현이는 빠른 걸음에 방해가 되는지 핸드백을 자주 추슬러 맸다. 저 핸드백은 아마 내가 1주년 선물로 사줬을 것이다. 나는 묵묵히 도현이를 뒤를 따라가며, 연애 중 내가 준 것과 받은 것에 대해 손익계산을 해봤다. 장사로 치면 폐업이다. 나는 조금 심술이 났다.

 

  한참을 걷던 도현이가 멈춰 선 곳은 공원 근처에 있는 버스정거장 이었다. 팔짱을 낀 도현이는 여전히 나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도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얼마 전에 내 동생이 버스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 해줬다. 동생이 싸구려 구두를 신고 버스를 탔어. 아니 먼저, 동생이 그 날 아침에 집에서 나가려는데 그 싸구려구두 굽이 빠진 거야. 그래서 강력 접착제로..."오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 도현이는 인사도 없이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한참이나 도현이를 떠올렸다. 왜 그리 화가난걸까? 우리는 분명 어제 치른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현이는 시험에서 전혀 예상 하지 못했던 문제를 만난 모양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건 너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해줬다. 도현이는 반박했다. 이것은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님이 그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이 시험 전에 수업을 통해서 배웠던 부분 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겉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간단한 문제여서 당황하지만 않았더라면 너도 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도현이를 위로했다.

 

  버스가 끊긴 시간이라 많은 택시가 도로를 드나들었다. 한 택시기사는 내 옆에 차를 세우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물어봤다. 나는 그가 어째서 그런 것을 내게 물어보는지 의아했다. 어쩌면 그에 눈에는 내가 먼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집 근처의 불 꺼진 편의점 옆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 걸음으로 허기가 느껴진 나는 그 곳에서 붕어빵 2천원 치를 샀다. 주인아주머니는 마지막 남은 것이라며 2마리를 더 챙겨 주셨다.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근처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집 앞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고양이는 쓰레기 봉지 사이에 숨어 나를 경계했다.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고양이가 가여워, 봉투에서 따뜻한 붕어빵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고양이는 살그머니 붕어빵으로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나는 흡족한 기분으로 고양이를 내려 봤다. 하지만 고양이는 붕어빵은 먹지도 않은 채, 나에게서 달아나버렸다.

 

  욕조의 따뜻한 물은 몸뿐만 아니라 얼어버린 내 마음도 녹게 만들었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에 쉽게 오해를 해. 그리고 이해하는 것은 서툴지만 늘 이해 받기를 원하고 말이야. 나는 나의 서툰 이해를 원망했다. 그리고 물속으로 머리를 푹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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