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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상앙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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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ushian
추천 : 5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08/10 0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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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책 속에 파묻힌들 그 어떠하리
책게도 당신과 이 같이 얽혀서
논 이제 자유의 모미 아냐.






1. 상앙을 다시 생각한다

상앙은 사기 열전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의 말로를 처음 접했을 땐, 그저 그가 바보인 줄로만 알았다.

그는 법치 철학에 근거하여 군대, 세금, 법제도, 토지제도 등을 정비하였다. 그가 나무 옮기기에 상금을 건 일화는 매우 유명하며, 법제도를 비판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칭송하는 자들도 처벌한 것 또한 유명하다. 누구에게나 엄격한 법은 결국 자신의 지위마저 위태롭게 하여 몸을 망치게 되었으니 제 덫에 제가 걸린 격이라고 예전엔 생각하였다. 상앙 본인 같은 권력자는 하이패스(?)로 마을과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했더라면 그는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최근에 크게 바뀌었다. 그런 생각은 지극히 위정자들에게 유리한 편파적인 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을 만들었다. 같은 죄라도 누구는 큰 벌을, 누구는 작은 벌을 받는다는 납득하기 힘들다. 큰 죄에 작은 벌, 작은 죄에 큰 벌을 주는 것 또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또, 한 번 벌을 받았는데 해괴한 이유로 풀어주는 일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상앙의 치세에는 그러한 해괴망측한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고대사에 그다지 해박하지 않다. 단지 상앙에 관한 일이 워낙 인상깊었기에 쓰는 것이다.)

그는 감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교육이나 교화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토론은 할 줄 모르고 갈수록 친구가 줄어들고 적을 늘린 우를 범했으나, 그를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그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한 점이라 생각한다.

그의 노력은 시간이 많이 흘러 확실히 열매를 맺었다. 물론 그 열매가 어이없게 개박살이 나긴 하지만(...),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다.

공정한 법만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국강병을 모색하는 길 중 하나인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러니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 법을 만든 자 또한 화를 당할 각오를 하고 만든다면 분명 만들 수 있을 텐데 안 그러는 거 보면 상앙의 말로를 본받은 건 아닌가 싶다.

(절레절레)



2. 패소당한 선풍기

선풍기를 여러 명이서 쓰려면 회전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회전을 시키다보면 선풍기가 허공에 바람을 뿌려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는 형과 내가 선풍기를 쐬는데 형에게 바람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자 형이 하는 말이.. 아주 걸작이었다.

"이 선풍기가 나를 덥게 한다."

띠용...?

밑도 끝도 없는 책임전가에 정신이 일순 아득해졌으나 하나씩 논파를 하기 위해 심호흡을 두어 차례 하였다.

더운 것은 날씨 때문이고, 선풍기는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는 데 선풍기가 일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시스템상의 비효율을 걸고 넘어져서 자신을 덥게 한다고 떼쓰는 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형의 반론은 상당히 거셌다. 가족들의 돈으로 사들인 선풍기는 바람을 쐬게 해주는 역할을 기대한 것으로 말미암아 이 집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풍기를 과연 선풍기로서의 의무를 다한다고 볼 수 있을까? 즉, 전기만 공급된다면 얼마든지 24시간 수명이 다 될 때까지 처절하게 돌아가야 하는 기계로서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허를 찔렸다.

일일 사업주 겸 검사 겸 판사 겸 기득권 옹호자가 된 형은 선풍기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집안에 제기하였다. 이사를 갈 때에도 정리 폐기당하지 않은 주제에 이에 반발해 들고 와서 태업을 벌인 내용연수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선풍기에 대해 이대로 집안을 나가지 않으면 자신에게 더위를 선사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으로 선풍기에 절대 불리한 손배 산정 방식을 좔좔 나열하였다.



...솔직히 반쯤만 픽션인 글을 쓰고 있지만 좀 등신같아서 자괴감이 든다...


아무튼 선풍기가 자신을 덥게 한다는 떼쓰기로 시작된 이번 손해배상은 치열한 공방을 거듭한 끝에, 소제목대로 선풍기 측이 졌다. 재판부를 자처한 형은 선풍기 태업을 낳은 원인인 더위에 지구 온난화 책임이 일부 있는 점을 인정해 선풍기에 그 책임을 60% 비율로 묻는 결정을 내렸다. 집 건물이 청구한 손해 배상액에 대해선 선풍기에 100% 책임을 물었다.

왜 난데없이 집 건물이 손해 배상액 청구했냐고 묻지 말길. 집도 더위로 손해봤다면서 선풍기가 벽이나 화장실은 조금도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아몰랑을 시전하였다.

이미 재판 결과는 나왔지만, 이 판결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선풍기가 팬을 회전시켜 일으킨 바람은 전부 열을 식히는 데 사용된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손해 배상을 산정한 결과이다. 그러면 뭐하겠나. 재판부를 자처한 형이 저러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여름에 선풍기는 쉴 수 없게끔 되는 지옥이 펼쳐지게 되었다.

손해 배상은 결국 현실적으로 잠든 시간에도 선풍기를 틀며, 대신 기온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아침에는 꺼두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우리 형은 언제 또 이런 등신 같은 떼쓰기로 기득권을 흉내낼 지 알 수 없다.


형님, 저는 아무리 등신 같은 재판 결과가 나와도 가족사법부를 존중합니다!



3. 죽어있는 바퀴벌레

집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엔 반드시 존재하고, 박멸하고 싶지만 잘 안 되는 게 바퀴벌레다. 내 뜻대로 바퀴벌레를 움직일 수 있다면 세계정복도 꿈은 아니겠으나, 바퀴벌레 입장에선 그들이 이 집을 점령하고, 우리 가족들이 불청객일 것이다.

아주 가끔 저녁이 되면 한 마리씩 보이는 데 매우 날렵하고 혐오스럽게 움직여서 여간 살의가 느껴지는 게 아니다. 마치 우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래 지켜보는 것 같아..

그래도 사람이 바퀴벌레보다 몇.. 아무튼 엄청 강하기 때문에 잡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바퀴벌레가 실제로 집 구석에 구멍을 파두고 드나든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바퀴벌레도 생명인데..'란 이런 등신 같은 생각이 들 리가 없다. 모조리 박멸이다.

하지만 손해배상 판결로 연일 고생하는 선풍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려봤자 바람에 흩어질 거 같아 제대로 박멸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바퀴벌레 구멍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배를 발랑 까뒤집고 죽어있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는 게 아닌가. 몸집도 제법 큰 것이 꽤 오래 생존했을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죽어있다.

이걸로 모두 해결이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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