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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절벽
게시물ID : readers_213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카피
추천 : 2
조회수 : 21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16 11:02:43

“이년 오늘 내손에 죽어봐라. 네 년을 죽여야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혜영은 악을 품고 달려오는 준혁이 겁이나 뒷걸음을 쳤다. 그런데 그녀의 등 뒤에는 절벽이 하품을 하고 있지 않은가?

혜영의 발은 허공에 머물렀다. 악이라고 소리칠 겨를 도 없이 혜영의 몸은 절벽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준혁의 입장에서는 금상첨화였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준혁이 같은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여간한 악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목숨을 개처럼 뺏는 악인도 있지만, 도저히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준혁 같은 위인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혜영을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진즉이다. 절벽위에서 그녀를 밀어버릴 찬스는 도처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계속 움츠러들었다.

지금 보면 준혁이 밀지 않고 혜영이 혼자 발을 헛디딘 것은 준혁에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만일 준혁이 밀었다면 혜영의 옷이나 피부에 증거가 남았을테니 말이다. 또는 준혁의 손으로 혜영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준혁은 속으로 ‘아하, 떨어졌다. 스스로 아니 저절로 떨어졌다. 내손으로 밀지 않아도 되었다.’ 라고 안도했다.

준혁의 정신상태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안심하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아무리 싫어했던 혜영이라도 이렇게 안도하는 자신이 두렵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치미를 떼로 앞으로 연희와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혁은 여러 가지 염려가 되어, 절벽가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혜영이가 빠진 곳을 내려다 보았다.

혜영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다가 준혁의 발밑 바위 모서리를 부여 잡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위를 부여잡고 허공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었다. 혜영은 죽을 힘을 다해 기어오르려고 바둥거렸다.

“준혁 씨! 준혁 씨!”

그녀는 부르짖었다. 지옥에서 살아돌아오는 시체를 보는 것 마냥 준혁은 저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리고는 모진말을 골랐다.

“너 같은 년은 그렇게 죽어버리는 것이 마땅해. 이제 몇 분만 있으면 손에 힘이 빠지면서 물고기 밥이 되겠지!”

“준혁 씨! 준혁 씨!”

혜영은 다시 준혁을 불렀다.

“살려 줘요. 사람 살려 줘요. 제발 잘못했어요. 손에 힘이 빠지고 있어요.”

이렇게 하소연 하다가 혜영은 악을 바락 썼다.

“그래, 정말 나를 죽일 작정이냐? 내가 죽는다고 너는 살아남을 것 같아? 살인죄를 범하고도 그 어린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그 발악이 길지 않았다.

“준혁씨 제발! 이제 손에 힘이 다 빠졌어. 살려만 주면 은혜는 잊지 않을께요. 제발 살려줘요!”

그런 혜영을 보니 준혁의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악에 바친 말을 퍼부었지만 아까부터 준혁의 마음은 흔들렸다.

특히 ‘살인죄를 범하고도 그 어린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한마디는 그의 가슴 깊이 박혔다. 사실이 그랬다. 이렇게 살인을 방관하는 죄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직접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연희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는 사이 혜영은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다만 피를 토하듯 단말마의 외마디를 외칠 뿐이었다.

준혁은 차마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다.

준혁은 절벽을 내려다보며, 손을 늘여 혜영의 손을 쥐었다.

죽이려고 할 때는 펼쳐지지 않던 팔이 살리려는데는 잘 펼쳐졌다.

한명을 살리려고 한명을 살려고 애를 썻다. 혜영을 간신히 끌어올려서 마침내 절벽위에 겨드랑이를 올려 놓았다.

이것이 준혁에게 비극이 될지 희극이 될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며 절벽위에 섰을 때, 어느 쪽이 죽이려하는 쪽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준혁의 얼굴은 비지땀이 흐르고 죽은 사람마냥 해쓱해졌고 온몸이 사시떨뜻이 떨고 있었다.

혜영이는 전신의 피가 모조리 얼굴로 올라온 것 마냥 터질듯 새빨갛게 물들였다.

한참을 둘은 서로 노려보았다. 선채로 밤을 새우려는 듯 보였다.

혜영 쪽에서 먼저 쓸쓸히 코웃음을 치며,

“으휴~ 죽는 줄 알았잖아. 그렇다고 너 같은 것을 겁낼 것 같아?”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 격이었다.

희안한 것이 사람 마음일까 죽이자는 마음을 먹었다가 살려놓았더니 악을 퍼붓는 혜영이를 보니 정말로 죽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아니 진정으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악독한 마음을 굳히기라도 하는 듯 준혁은

“그래? 그럼 두고 봐, 다음에는 꼭 죽여 버릴 테니.”

이 말의 진정을 느꼈는지 혜영도 이렇게 대답했다.

“알았어! 이제 너와 만나지 않으면 되잖아. 잘 먹고 잘 살아라!”

그 말을 듣고 준혁은 못내 반가웠다.

“그래 제발 그렇게 해주라.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지 말고, 자! 여기 얼마 되지 않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준다. 돈 받고 내일 아침 꺼져주라.”

하며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주었다.

“마지막 인사 치고는 너무 적은데.... 뭐 우선은...”

하면서 돈의 액수에 불만을 느끼는 눈치였다.

“아무튼, 우리의 미래를 오늘 밤 천천히 생각해 볼게.”

이렇게 말하고 혜영은 가벼렸다.

준혁은 결과적으로 오늘 밤 일이 이렇게 끝이 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허나 연희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스러운 준혁이었다.

이렇게 혜영이 살아있는 마당에 연희와 부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고 연희의 의사를 묻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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