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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오지!!
게시물ID : readers_217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미큰이자근
추천 : 1
조회수 : 3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14 03: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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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슬렁대며 걷다보니 어느 새인가 남한산성 입구에 서 있었다. 집을 나서서 이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온 두 시간동안 내가 알아채지 못한 도착지를 앞에 두고 멀거니 서 있었다. 막걸리에 취하고 진한 추어탕에 얼큰해진 등산객들 사이에서 초점 없이 걷다가 가람막이 얼기설기 덮인 비닐하우스 두부 집 개 짖는 소리에 픽 웃음이 났다. 순한 개 두 마리가 예쁘니 두부먹고 가야겠다 억지 부리던 네가, 아직 거기 있었다.
 
  처음 너와 등산하던 날, 가타부타 말도 없이 5호선 끝까지 오라던 문자에 나는 네가 지나가듯 말한 지하철 여행을 하려나보다 싶어 가볍게 마천으로 향했다. 개찰구를 나오라는 연락에 어리둥절해도 왠지 신이 난 네 모습이 기분 좋아 즐거웠다. 그리고 길이 맞긴 한지 의심스러운 깔딱고개를 넘어 산 정상 서문에 도착했을 땐 신발과 바지끝단에서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너보다 잘 걷는 것처럼 보이길 바라서 하늘에 닿은 산꼭대기만 죽어라 보고 걸었던 통에 말할 힘도 없이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돈을 빼앗아 무인 아이스박스에서 막대 아이스크림 두 개를 골라 들고 오는 너는 그냥 너무 예뻤다.
  느긋하게 앉아 바람 쏘일 새도 없이 꾀죄죄한 나를 끌고 하산한 너는 여전히 신이 나서 저녁을 사 주겠다 시장으로 들어갔다. 재래시장을 걸어 붐비는 가게로 쑥 들어가 익숙하게 자리 잡고 곱창볶음에 소주하나를 시켰다. 나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너도, 옆 테이블 사람과 등이 맞닿는 곱창 집에 앉은 너도, 그날 처음 보았다. 우리 만난 지 일 년쯤 된 그날 나 사실 이런 거 좋아해.’ 내 안색을 살피며 웃는 너를 보며 내가 네 심장 끝에 닿은 듯한 행복감에 너를 사랑한다 연신 고백했고, 낡은 다세대 주택 반 지하 문 앞에서 처음으로 너를 들여보낸 뒤 네 마음이 아프도록 기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못난 얼굴 우그러뜨리며 눈물을 참았었다.
 
  초겨울 오후 4. 하산하는 몇몇 등산객들의 우려 섞인 만류를 뒤로하고 깔딱고개를 반쯤 올랐을 때 투둑투둑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졌다. 걸어온 흙길이 점점이 젖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오를 때보다 느릿하게 길을 내려 걸었다. 무성한 나무에 가려 듬성듬성 떨어지던 빗방울이 빗줄기가 되어 내리자 산은 온통 빗소리와 내 숨소리로만 가득 찼다. 위험한 상황이고 조심히 서둘러 하산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완전한 차단 속에서 목이 메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리로운 이별 뒤 몇 달이 지난 등산로 한 편에서 없는 너를 발견하고, 세상에 나뿐인 지금에서야 걱정과 수줍음이 뒤섞인 작은 미소의 너와 네 진심하나가 무척 소중했던 내가 이제 어디에도 없음에 눈물이 났다.
 
  내가 잊고 아마 너도 잊었을 그때의 발가벗은 우리를 빗물에 흘려 안녕히 보내고 나는 너와 제대로 이별을 했다.
출처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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