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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필자입니다.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나눔도 함께...)
게시물ID : readers_224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309동1201호
추천 : 17
조회수 : 1753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5/11/01 15: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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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가을부터 오늘의유머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지방시)를 연재해 온 309동1201호입니다. 오늘의유머 구성원들께는 항상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첫 독자들이십니다. 덕분에 저는 한 발 더 내딛을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겨 주셨던 여러 댓글들이 종종 그대로 떠올라 삶의 격려가 되곤 했습니다. 진심으로 각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방시가 11월에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2.jpg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725695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출판을 의뢰해 준 편집자는 20대의 젊은 선생님인데, 역시 '오유'에서 제 글을 눈여겨보았다고 하셨어요. (표지가 무척 강렬합니다. 저는 예쁘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 오유라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것이, 저에게는 무척 좋은 선택이었어요.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오유인들께 5권을 나눔하고 싶어요. 이런 것을 해 보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러운데요,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중 제가 무작위로 선정하겠습니다. (뭔가 실례가 아닌지 싶고... 죄송합니다.) 2권은 제가 오래 기억하는 닉네임 두 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너는바람꽃'과 '남친보다치킨' 두 분은 제 글을 처음부터 오래 응원해 주셨습니다. 많은 격려를 얻었기에 보답하려 합니다. 두 분은 리플과 함께 이메일을 달아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 아래에는 책의 에필로그를 첨부합니다.
 
연재하는 동안 ‘지방시’ 맞으시죠,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혹시 지방시 필자가 맞다면 어느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대개의 경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전국에는 몇만 명의 지방시가 있고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 홀로 박복한 청춘을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뿐 아니라 우리 사회 그 어디에도 지방시는 있다. 이것은 ‘헬조선’이나 ‘갑질’이라는 신조어의 탄생과도 무관하지 않다. 나 역시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춘일 뿐이다. 그래서 누가 지방시인지 가려내 무대 위로 끌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이 어떤 변화를 추동할 수 없는 까닭이다. 나는 계속 평범한 지방대 시간강사로서, 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계속 연구하고, 강의하며, 아카데미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방시를 쓰는 동안, 어떤 자격론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지방대 출신이면 그만한 처우에 만족하고 강의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는 것이다. 지방대 출신임을 고백한 순간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다. ‘지잡대’는 이미 지방대를 대신하는 새로운 용어로 자리 잡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방대는 좌절과 자기 검열, 무력감의 재생산이 일상화 된 공간이다. 그만큼 우리는 임의의 선을 긋고 그 아래를 모두 ‘잉여’나 ‘루저’로 규정해 내는 데 이미 익숙하다. 나는 굳이 출신 대학의 명칭이나 수준을 직접 명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물론 신분이 노출될까, 하는 나의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우회적으로라도 어느 수준의 대학임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곧 하위 범주의 모든 대학을 나 스스로 “지잡 아래의 지잡”으로 두는 것이 된다. 그러한 틀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명문’과 ‘지잡’의 분류를 넘어, 우리 사회는 자본, 세대, 지역 등으로 자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밀려난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루저로 규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밑으로 새로운 선을 긋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갑과 을로, 다시 병으로, 정으로, 무한히 수직적으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의 ‘갑질’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자격을 정할 자격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내가 지방시를 쓰며 가장 많이 사용한 두 개의 단어는 아마도 ‘스스로’와 ‘성찰’일 것이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그렇다. 글을 퇴고하다 보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너무 높아 몇 개를 임의로 지워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다.
 
‘스스로’와 ‘성찰’, 이 두 단어를 곁에 두게 된 것은 학생들 덕분이다. 나는 그저 흔한 인문학 교양 수업 하나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들의 인문학에는 늘 감명 받는다. 학생들은 내가 약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와는 다른 시각의 훌륭한 인문학을 생산해 냈다. 그래서 강의실은 교수 혼자 가르치는 공간이 아닌, 서로가 가르치고 배우는 집단지성의 실험실이 된다. 교학상장,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성장한다는 말을 언제나 실감한다. 학생들은 언제나 나에게 ‘갑’이 되고, ‘지도 교수’이자 ‘구원자’가 된다. 강의실은 갑도 을도 없는, 위계가 없는 공간, 말하자면 ‘갑갑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나와 제자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우리를 포위한 시대의 분류법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길 소망한다.
 
삶의 가치 판단을 할 자격은, 그리고 자격을 정할 자격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다. 행복을 정할 자격 역시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제멋대로 평가할 수 없고, 그것은 이미 모두가 혐오해 마지않는 ‘갑질’이 될 뿐이다. 누군가는 내게 ‘교수’가 되기 위해 ‘지방시’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 아닌가 묻는다. 그러니 본인이 그러한 삶을 선택했다고도 말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 운 좋게 교수가 되면 모든 삶을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잠시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나의 하루하루를 갉아먹었고, 나의 현재를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격하해버렸다. 간신히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오로지 교수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다만 강의실에서든 연구실에서든 노동자로 존재하기 위해 모두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정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격을 정하는 데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내가 지방대 출신의 강사가 아니었더라면,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현실과 그 구성원의 삶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나는 평범하거나, 혹은 그 이하의 인간이다. 투고한 논문들의 인용지수가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다.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훌륭한 논문을 쓰는 좋은 대학의 연구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연구를 어떻게 했지, 하고 감탄하거나 나는 언제쯤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고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실에 앉아 읽고, 쓰고, 다시 읽고, 쓴다. 나는 성골, 엘리트, 천재, 그런 뛰어난 인간은 못 되지마는 지금까지 버티어냈다. 평범한 연구자로서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스스로 당당하다면 그것으로 내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자격을 증명해나가려 한다.
 
지방시 이전과 이후의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이 사회의 무수한 지방시 중 하나일 뿐이다. 많은 ‘선’들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며, 이전보다 조금 더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려 한다. 그리고 강의실에서만큼은 그러한 선들을 잘라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그렇게 ‘갑’이 된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 모든 타인을 갑으로 존중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며, 그러한 사유로서 시대와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면 모두의 의식에 내면화된 어떤 ‘괴물’이 균열을 보일 때, 함께 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 연구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후속 세대가 좀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그리고 모든 청춘이 더 이상 아픔이나 노력을 강요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지방시로 묵묵히 아픔을 감내하고 있을 모든 청춘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 모두에게 부디 건투를, 그리고 나에게도 부디, 건투를 빈다. 그리고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으니까, 모두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이처럼 아팠음을 모두 기억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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