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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1.1 심장에 온 감기
게시물ID : readers_224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289
조회수 : 8097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5/11/02 06:58:56

응급실이야기 쓰고 있는 최석재입니다


오유에 자주 놀러와 글 보면서 위안을 얻곤 한지가 오래 되었네요

특히 이런 새벽시간에 놀러오면 더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예전 수련의 시절, 환자 보면서 있었던 일을 블로그에 간단하게 적어놨었는데

이 글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로 엮어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의 실제상황과 의료진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동안 글을 보는데만 익숙했고 글 실력이 미숙해 직접 써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모자란 글들을 오유 책게에 공개하려 맘먹으니 떨리네요

하나씩 정리해서 올릴텐데 읽어봐주시고 많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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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1.1 심장에 온 감기


아침에 응급실로 출근하니 책상에 문서가 몇 장 놓여있습니다.



요즘은 개인 보험을 많이 들기 때문에 응급실에서도 문서 일이 좀 생기는 편인데 그 중 하나가 환자가 이전에 진료 받았던 진료확인서를 요청하는 서류발급 요청서 입니다. 환자 번호를 입력하고 차트를 확인하다보니, 한 환자의 차트에 눈이 멈춰졌습니다.


작년 가을, 쌀쌀한 날씨에 감기환자가 늘어갈 무렵... 한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 환자가 속이 불편하다며 응급실로 내원했습니다. 3일 전부터 감기증상이 있었는데 감기로 끝나지 않고 구역, 구토, 복통이 발생해 개인 의원을 방문해 위염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던 모양입니다. 헌데 증상이 계속되고 약간 숨찬 느낌도 있다며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땐 '혈압도 괜찮고 열도 없고, 뭐 특이한 건 없네.' 하면서 증상만 조절할까 생각했었습니다.


보통 20대의 건강한 사람이 이런 증상으로 오면 감기, 위염, 간염 등 심각하지 않은 질환을 의심하고 간단한 피검사를 고려하며 증상 조절할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날의 저도 그랬지만 단 하나, 환자가 숨이 찬 느낌이 있다는 말이 살짝 맘에 걸렸습니다.


그래, 그럼 기본적인 피검사 하면서 심전도를 하나 추가해서 검사하자
심전도에 큰 이상 없으면 그냥 간수치 확인해보고 이상 없으면 퇴원!



이런 계획을 머릿속에 세워놓고 수액과 피검사를 처방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응급구조사 선생님이 가져온 심전도는 별다른 소견 없이 약간 빠른 맥박만 확인되고 있었습니다.


음... 110회면 아주 빠른 건 아닌데,
환자는 힘들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맥박은 꽤 빠르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심장근육 효소수치 검사를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솔직히 검사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여자환자가 약간 숨찬 정도인데 뭐가 있으랴...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2시간 뒤 확인된 혈액검사 수치에는 예상치 못한 심장근육 효소수치의 상승이 확인 되었습니다


2시간여 뒤 나온 피 검사 결과가 이상했습니다. 심근효소 수치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던 것입니다. 흡사 심근경색이 발생한 지 며칠 지난 것 같은 정도의 수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가슴 아프단 얘기도 없고 환자 증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검사실에 물어보았습니다. 제대로 된 검사 수치 맞냐고... 돌아온 대답은 두 번 확인한 결과라는 겁니다. 그제야 전 이 환자가 그냥 단순 감기가 아니라 심근염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심근염. 심장 근육에 바이러스성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 여러 가지 감기 바이러스가 목으로 오면 목감기, 코로 오면 코감기 이지만 이 녀석들이 뇌, 척수 주위로 가면 뇌수막염이 되기도 하고 심장 근육으로 가면 심근염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단을 놓치면 치명적이고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이던 시절, 6세 여자아이가 감기 증상으로 치료받다가 숨차고 힘들어 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내원하다 차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심정지가 와서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멈춘 심장을 되돌릴 수 없었던 경험이 기억이 납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한순간에 아이를 잃은 아빠의 울음소리가 기억나 우울함이 가시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 날, 응급실을 방문한 젊은 여자 환자는 그 정도 상황이 되기 전에 진단이 되었습니다.

심장 근육이 갑자기 퍼져버릴 위험이 있어 중환자실에서 심장내과 전문의가 집중 관찰해야 하는 상황.

하필 그 날, 병원 심장내과 선생님이 학회를 간 날이라 대학병원에 의뢰를 하고 환자분께 설명을 했습니다.


환자분은 단순한 감기인줄 알고 오셨겠지만 검사 결과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심근염이라는 질환이 온 것 같은데, 잘 낫는 경우가 많지만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어서 대학병원으로 옮겨드릴 겁니다.
이동하는 동안 옆에 응급구조사가 같이 타고 가면서
무슨 일 생기지 않는지 봐 드리겠습니다.



차트를 확인해보니 마침 그날 함께 진료 봤던 간호사, 구조사가 함께 근무 중이군요. 얘기 나눠보니 다들 흔치 않은 특이한 경우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료회송서에 의하면 전원 간 병원에서 확인한 심장 초음파에서 상당한 양의 심낭삼출액(심장과 심낭 사이 공간에 물이나 염증이 차면서 생기는 액체)이 확인되어 응급 심낭천자술을 시행했다 하고 바이러스성 심근염, 심낭염 진단 하 입원치료를 잘 마쳤다고 적혀있었습니다. 환자도 저도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별거 있겠냐는 생각에 빠져 오판했더라면...


반 년 넘게 지난 얘기지만 환자분이 의뢰한 진료확인서를 쓰면서


다행히 잘 지내고 계신가 보구나... 그래서 이렇게 문서 신청도 하셨구나


하고 혼자 뿌듯한 기분에 빠져봅니다.

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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