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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2.3 응급하지 않은 응급실 환자들
게시물ID : readers_225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26
조회수 : 17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07 03: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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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응급실이야기 연재중인 최석재 입니다
이번에는 많은 분들이 들어두셨을 실손보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싼 진료비를 감당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의료의 왜곡을 불러오는 수단이기도 하지요
이번 이야기는 가볍게 읽어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의 응급실이야기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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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1.1 심장에 온 감기
http://todayhumor.com/?readers_22425
응급실이야기 1.2 터질듯한 심박동, 타버릴 것 같은 내 심장
http://todayhumor.com/?readers_22431
응급실이야기 1.3 두통으로 와서 대동맥 박리를 진단받기 까지
http://todayhumor.com/?readers_22445
응급실이야기 1.4 응급상황, 남의 일이 아닙니다
http://todayhumor.com/?readers_22456
응급실이야기 1.5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
http://todayhumor.com/?readers_22465
응급실이야기 1.6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심폐소생술 팁
http://todayhumor.com/?readers_22480
응급실이야기 2.1 추운 겨울날, 고구마 장수 아저씨
http://todayhumor.com/?readers_22495
응급실이야기 2.2 출동 중 사고를 당한 구급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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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이 바뀌어 어쩌다 보니 토 일요일 주말 밤 근무를 연속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면 같이 놀자고 하는 아이들 성화에 잠 못 잘 게 뻔해 근무 사이 시간인 일요일 낮은 병원에서 잠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놀아줘야 아이들이 잠 좀 잡니다.


더운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이것저것 잘못 먹고 탈 난 장염 환자들이 많아 평소 주말 이상으로 붐빈 응급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말 연속 근무의 끝이 보이는 월요일 새벽. 당직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던 중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휴가가면 평소 안먹던 음식도 먹게되고...


정신을 차리고 나와보니 유치원 다닐 나이의 어린 소녀가 앉아있습니다. 아픈 기색은 없는데 엄마 말론 아이가 배가 아프다 해서 왔다고 하네요.


장음소리 들어보고 배 이곳 저곳 눌러보고 설사나 열이 있었는지 확인해봤지만 특별히 나빠보이는 소견은 없습니다. X-ray 이상 없으면 맹장염 가능성 주지 시키고 조금 지켜보게 해야겠다 마음먹고 언제부터 아팠는지 물으니 10분 전부터 아팠다고 합니다.


10분? 집이 아무리 가까워도 10분이면 아프다고 하자마자 온 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아침에 출근하려던 중 아이가 아프다 하니 일단 데려와봤다고 하는군요.


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이지만 아무리 아이가 아프다 해도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솔직히 이런 생각 들었습니다. 내색 안 하려 노력하면서 영상의학과로 가서 X-ray 찍고 오자고 안내했습니다.


잠시 후 사진을 찍고 온 소녀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직행, 화장실에서 밝은 얼굴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월요일 새벽, 한 아이와 엄마의 소동은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X-ray 도 변이 좀 찬 것 말곤 큰 이상 없네요. 엄마도 아이도 밝게 웃으며 인사해주어 저도 금방 맘이 풀렸습니다.


휴가 다녀오면 이것저것 맛있는 것 먹고 탈이 나죠.




잠시 들어가서 눈을 붙이려던 중 다시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이번엔 어린이집 다닐 나이의 남자  어린이입니다. 아파 보이지 않아 살짝 안심하면서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물으니 구토를 해서 왔다고 합니다. 앞의 소녀 환자처럼 복부 진찰을 하면서 언제부터 몇 번 구토를 했냐 물으니 바로 전에 한 번 구토를 했다고 합니다.


한 번? 아이가 한 번 구토를 하면 응급실로 데려오나요?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당황스러운 답변이었지만 매번 그렇듯 이럴 땐 내색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절대 엄마를 놀라게 해선 안돼!


엄마가 제 기색을 읽었는지 아이가 장염일까 봐 걱정돼서 데려왔다고 하는군요. 응급의학과 의사 입장에선 장염이면 큰 문제가 아니란 뜻인데 엄마는 장염이 더 무서우셨나 봅니다. 어쨌든 이번에도 포커페이스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열 없고 설사 없고 목도 괜찮고 복부 진찰도 나쁘지 않아 주사 없이, 먹는 진토제와 정장제로 증상 조절만 하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또한 항상 그렇듯 이럴 땐 엄마를 너무 안심시켜도 안됩니다. 맹장염 초기 가능성, 장 중첩증 초기 가능성 등을 주지 시키고 아이가 배가 아프다 하면 다시 방문할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를 안고 응급실 문을 나서던 엄마가 뒤돌아 다시 묻습니다.


아이가 장염은 아니란 말이죠?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응급의료진의 머릿속에서 장염의 의미와 다른 응급 질환의 위험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포기했습니다. 민감한 엄마에게 자세한 설명은 걱정거리만 한아름 안겨주는 꼴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구토 한 번만 하고 와서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장염으로 갈지 다른 쪽으로 갈지 아직은 모릅니다.
구토 한 번으론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료비  들어두셨나요? 바야흐로 보험의 시대라 할 만 합니다. 텔레비전 광고 둘 중 하나는 대출업 아니면 보험업종 광고로 채워지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요즘 보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많이들 가입하시는 것 같습니다.


보험의 순기능,  물론 있지요. 의료비 걱정에 차일피일 병원 방문을 미루다 병 키운 경험, 본인이나 가족에게서 한 번쯤 있지 않나요? 헌데 진료비로 들어간 비용을 다 돌려준다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다만 응급의학과 입장에서 보면 이 의료비 실손보험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여름,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감염병에 너무도 취약한 응급실 시스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무너진 의료 전달체계와 응급하지 않은 환자로 인한 긴 대기 시간이었는데 보험 시스템이 이 현상을 악화시키고 있거든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2015년 현재, 응급실은 규모와 인력, 시설에 따라 지역 응급의료기관, 지역 응급의료센터, 권역 응급의료센터, 기타 외상센터와 화상센터 등 특수 기능 응급센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기능이 나누어져 있다면 진료를 봐야 할 환자군도 적절하게 나누어져야 하겠죠? 그래서 나온 제도가  응급의료관리료 라는 응급실만의 특별한 추가 과금제도 입니다. 현재 지역 기관의 경우 18,000원대, 지역 센터는 47,000원대, 권역 센터는 54,000원대로 정해져 있고 응급증상인 경우 환자는 50%만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헌데 의료비 실손보험 가입자의 경우 이 비용까지 모두 돌려받을 수 있으니 응급의료관리료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자연히 환자 입장에선 아팠다 하면,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긴 시간 기다려야 하는 외래보단 응급실!
일과시간 손해 보기 보단 응급실!!
응급실 중에서도 일단 모든 진료가 다 가능한 대학병원 응급실!!!

그럼 예상하다시피 응급실 혼잡도는 더 올라가 진짜 응급 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받기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가 됩니다.


,          아파 보였거나        .  아파 보이지   안 좋은       .


하지만 응급실 이용 행태를 변화시켜 다수에게 손해를 끼치는 보험 시스템이라면 하루빨리 손을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응급실엔 아픈 사람이 있고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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