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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3.3 새 생명의 탄생, 차디찬 현실
게시물ID : readers_226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21
조회수 : 130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1/14 02: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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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지난 글, '새 생명의 탄생, 그 감동과 험난함' 에서는 출산이라는 긴 기다림과 준비, 그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보여지는 아기와 엄마의 만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긴박한 어려움의 과정도 보여드렸고요.


그만큼 새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어느 따듯한 봄날 일요일, 독감에 걸린 아기들로 응급실이 북새통이던 그 때, 책상 위에 허리 통증으로 내원한 여자 환자의 차트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다지 위급한 환자는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허리 통증이 있는 환자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체구가 크고 몸이 무거워 보이는 30대 여자 환자가 등을 보인 상태로 눕지 못하고 서서 침대 난간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환자분, 허리 아파서 오셨죠?

여기쯤 인가요? 여긴 어떻죠?


요추 부위와 양쪽 신장 부위를 두드려 가며 진찰하는 내내 환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일단 누워 보세요.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어요?”


보호자로 함께 오신 환자의 어머니가 대신 대답하길, 최근 몇 달간 생리를 하지 않다가 오늘 갑자기 생리를 하더니 등이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환자분은 우선 소변을 좀 받아 보고, 임신 반응 검사부터 해 볼게요!”


이렇게 말하며 환자를 돌아눕게 해 보니 환자의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었습니다. 대충 눈으로 보기에도 그 배는 출산에 임박한 만삭의 산모의 것…….


그런데 갑자기 환자가 아래로 무언가 내려오는 느낌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부터 생리를 안 한 거예요?

검사는 한 번도 안 받아 봤어요? 임신 중이신 것 같은데?


내진을 위해 커튼을 치고 진찰용 장갑에 소독약을 급히 바르면서 환자의 하의를 벗겼습니다.


“하아 하고 소리 내 보세요.”


내진 중인 저의 두 손가락 끝에 아기 머리카락이 만져지고 있었습니다. 양수는 이미 터져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 응급실에 흔치 않은 큰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챘습니다.


이 선생님, 여기 좀 도와줘!

분만 직전이야!


함께 근무하던 의료진을 불러 모으면서 급히 산부인과 응급실로 옮기는 것을 고민했지만, 초산이 아니라는 환자의 어머니 말씀을 듣고 여기서 아기를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산모의 경우는 산도 통과 과정이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산부인과까지 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소독할 거랑 태아 심박 모니터기, 신생아 베드 좀 누가 챙겨 줘요!”


급히 전화로 도움이 될 의료진을 찾던 이 선생님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산부인과 과장님이 마침 병원에 있어 내려오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아기 머리를 잡고 산모에게 배에 힘을 빼고 호흡을 천천히 크게 하도록 했습니다. 곧 산부인과 과장님이 응급실에 도착하여 장갑을 끼며 물었습니다.


“멀티예요?”


산모가 경산모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네. 두 번째 출산, 아기 주수는 모르고 산전 진찰 안 받은 상태입니다.”


아기 머리를 인계받은 산부인과 과장님은 준비된 소독가위로 산도 손상 방지를 위한 회음절개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렇게 응급실 도착 10분 만에 아기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출생의 순간 누구보다 축복받고 사랑받으며 태어나야 할 생명이었건만, 아기는 어수선하고 추운 응급실에서 미약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몸은 2킬로그램 남짓으로 작았고 피부색도 청색증 상태로 전신 상태는 나빠 보였습니다. 아기는 소독포에 싸여 산부인과 과장님과 분만실로 올라갔고, 곧 산모도 침대에 눕힌 그대로 분만실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그 날 날씨는 따듯한 봄날이었지만, 아이의 세상은 너무도 추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산모는 이혼한 상태였고 정신지체가 있어 임신 상태를 몰랐다고 합니다. 산모와 산모의 어머니는 아기를 키우지 않기로 결정하여 아기는 소아중환자실 치료 후 입양 기관을 통해 입양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로선 처음 경험한 이 응급 분만이 그 아기로선 태어나자마자 세상은 너무도 추운 곳임을 알게 한 것인 듯해 가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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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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