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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3.4 아동학대,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
게시물ID : readers_22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20
조회수 : 11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15 22: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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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수년 전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중환자실 주치의를 맡고 있던 중 다른 과의 흉관 삽관 의뢰를 받고 외과계 중환자실에 갔다가 놀랐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직 채 10kg 도 되어 보이지 않는 영아가 심하게 다쳐 기관 삽관 상태에 온갖 기구를 치렁치렁 달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다쳤기에 저렇게 어린아이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나 싶어 기록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 환아는 아동학대 피해자였는데, 부모가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욕실에서 집어던져 뇌출혈과 두개골 골절, 다발성 갈비뼈 골절, 그 외 여러 골절로 입원하여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처음 그 상황을 보고 느낀 감정은 분노였습니다. 도대체 그토록  어린아이가 우는 것 말고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질 말던가.'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응급실 진료 도중, 예전 아픈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환자를 진료하게 되어 기록을 남깁니다.  예닐곱 살 난  남자아이가 119 구급대를 통해 응급실로 내원했습니다. 환아는 엄마, 누나와 함께 머리 뒤쪽에 생긴 상처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엄마는 TV 리모컨을 던졌다가 실수로 아이 머리에 맞았다고 진술했지만 아이의 상처는 찔린 듯한 상처 두 개와 2cm 크기의 혈종이 있어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마침 따로 얘기할 게 있다는 119 대원의 말에 따르면, 이송 차량 탑승 당시에 엄마는 아이가 칼에 찔렸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진술이 바뀐 점과 상처 양상이 병원에서 얘기한 진술과 맞지 않는 점, 그리고 얼굴에도 작은 멍과 긁힌 상처가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미뤄 아동학대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조용히 당직실로 가서 경찰에 연락을 했습니다.


이후 엄마와 두 자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이상했습니다. 남루한 행색의 엄마는 환아의 누나와는 대화하고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면서도, 환아에게는 별로 산만한 행동이 보이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라며 윽박질렀습니다. 자세한 집안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다른 이유로 엄마가 환아를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잠시 후 경찰이 응급실에 도착했고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안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너희들 모두 고소하겠다며 난리가 났고 한참을 소란 피우다 경찰과 함께 조사를 위해 응급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후 경찰을 통해 아동복지센터에 연결되어 밤늦은 시간에 시설 담당자가 방문하기로 했고 그동안 아이는 응급실에서 임시로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응급실 뒤쪽에서 다른 직원들과 잘 놀았고 그러던 중 새벽에야 아빠가 도착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빠는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으로 결혼한 지 1년 반 된 새아빠였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 대처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빠와 아이가 대화하던 중 아동복지센터 관장과 담당자가 도착해 아이와의 자세한 면담이 이뤄졌고 아침에 임시보호를 위해 이동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밝고 건강하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커나가야 할 어린이가 일부 어른들의 잘못으로  고통받고 병원에서 치료받게 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집안일이라면 일단 남의 일로 받아들이고 깊숙이 개입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부부간 폭력이나 아동학대 피해자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선 보건복지부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이 어린이의 권익보호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건수는 점점 늘고 있지만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  그중 특히 의료인에 의한 신고는 아직 미미한 상태입니다. 법적 의무를 가지는 신고의무자인 의사로서의 신고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신고만 있다면 피해아동이 하루라도 빨리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초진 과정에서 세심한 관찰로 아동학대 피해자가 의심되는 경우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부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빨리 발견되고 적절히 보호되어 장애 없이 성장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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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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