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흰색, 파란색, 녹색. 그리고 오유의 색깔.
게시물ID : readers_22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w
추천 : 7
조회수 : 4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1/20 00:01:28
옵션
  • 창작글
  • 본인삭제금지
  역사책을 읽다 보면, 문득 옛날이야기가 현재 상황에 너무나도 잘 들어맞아 감탄할 때가 있다. 물론 우리가 알 수 없는 위대한 인물들이 수백 혹은 천 수백 년 후의 일을 과연 예견하고 행동을 했을까마는, 인생사 돌고 돌며 인과는 덧없이 흐른다는 속담을 답으로 하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1940년대에 오웰이 쓴 소설이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어찌 그리 잘 들어맞는지 도통 묘한 일이다.

  물론 동물농장은 실제의 역사를 소재로 사용했다. 마르크스를, 스탈린을, 트로츠키를. 혁명과 공포 정치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나폴레옹은 몇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퀼러는 도통 변하지 않았다. 선전꾼. 진실을 조작하는 선전꾼 스퀼러.

  그런데 지금은 오웰이 살던 시대가 아닌 탓인지, 신문에서만 떠들어대던 스퀼러는 어느새 TV에서 외치고 있었다. TV로는 성이 차질 않는지 책에서, 포탈에서, SNS에서, 외치고 또 외친다. 대개는 사실을 왜곡하고 악의적으로 편집한 조악한 주장이지만, 최소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매번 속는다. 대한민국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은 우리가 우리 민족을 예로부터 표현하듯 양 떼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순백의 성정을 나타내던 그 이름은, 어느새 나폴레옹에게, 스퀼러에게 끝없이 속는 이름이 되었다.

  거기에 작은 스퀼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그들은 흰색 옷을 입고 온갖 참람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명을 질러댔다. 심지어 일부는 행동으로 못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분을 모욕하고, 신성한 집회를 방해했다. 문득 흰색 옷에서 파란색 옷으로 갈아입은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스퀼러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녹색 옷을 입고 혹은 붉은색 옷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집요하게도 오늘의 유머로 몰려온다. 저들은 '오늘의 유머'의 색깔로 염색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점점 은밀하게. 치밀하게. 아마도 오웰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동물농장 2015년 판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으리라.



  '동물들은 이쪽 저쪽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누가 쥐와 닭인지 인간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출처 오웰의 글을 참 좋아합니다. 인생에서 소설 한 권만을 허용한다면, '1984'와 '돈 키호테' 중에서 고민할 듯 싶네요.

흐린 목요일 저녁, 퇴근길 서점에서 빈둥대다 문득 집어든, 오랜만의 동물농장. 오늘도 대충 무딘 칼을 꺼내듭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