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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103] <생의 이면>
게시물ID : readers_22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장수집가
추천 : 4
조회수 : 87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1/30 1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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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지도 않은 나는 왜 고립되었던가. (29쪽)

2) 삶. 곧 악몽. 눈 뜨고 꾸는. 그래서 더 끔찍한. (140쪽)

3) 삶은 얼마나 쓸쓸한가. 얼마나 참혹하게 슬픈가. (168쪽)

4)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 같은 것이 안타깝게도 내게는 없다. (19쪽)

5) 집을 갖지 못한 자의 구름 같은 떠돎에 자유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한낱 위안일 뿐이다. 
   나는 내가 이 세계의 변두리를 한없이 배회하기만 할 것이라는 불온한 예감에 일찌감치 사로잡혀 버렸다. (88쪽)

6) 그것은 커다란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비극으로 느끼지도 못했다. 
   내게 있어 삶은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고 모든 것이 심드렁했다.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신비롭거나 감격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53쪽)

7)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황폐함과 메마름. 그것은 나 자신만 빼고 다른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97쪽)

8) 나는 도대체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나의 감정은 전혀 반응할 줄 몰랐다. 
   무엇 하나 나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던 백치의 나날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진정으로 나의 현실을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아무것으로도 증명할 수가 없다. (54쪽)

9) 온통 비밀투성이고 규명되지 않은 수수께끼들과 모순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야 하는 용납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울분이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도대체 납득할 수가 없었다. 삶은 나에게 훨씬 전부터 혼란이었다. 해독 불가였다. (63쪽)
  
10) 열다섯 살부터 살아 낸 서울 생활은 끔찍하다. 떠오르는 것은 참혹한 가난과 그보다 배는 참혹한 외로움. 
    그리고 돌이키기 힘든 이 세상에 대한 가시 돋친 불만과 적의. 그런 것들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하기야 그 이전부터 삶은 화해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은 한 번도 가벼워 본 적이 없었다. (113쪽)

11) 가난과 외로움과 근거 없는 적대감의 나날. 그것들은 그 시절 내 삶의 목록이었다. 
    내 삶의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가진 것이 없었다. (117쪽)


12) 아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체벌의 정당한 까닭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또는 어렴풋하게 짐작만 한 채로 억울하게 당한다는 걸 어른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왜 맞는지 알지 못했다. (43쪽)

13) 충격이나 통증은 빈도와 반비례한다. 일상화된 충격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95쪽)

14) 악마는 인간일 것이다. 인간보다 더 악마다운 악마가 어디 있겠는가. (256쪽)

15) 아버지는 내 부끄러움의 뿌리이고, 내 치욕과 증오의 원천이다. (60쪽)

16) 어머니와의 재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방 울음을 토해 내며 
     자기 운명을 저주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몹시 불편했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97쪽)

17) 내가 원한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연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었다. 어머니는 최초이자 최후의 끈이었다. (203쪽)


18)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고 그래서 늘 행복하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것은 무언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려는 욕망이 많은 생각을 만든다. (116쪽)

19) 책 속에서 낙원을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현실에 눈감고 싶었을 뿐이었다. (22쪽)

20) 나는 그 자아의 방 깊숙한 곳으로 몸과 정신을 우겨넣는 길밖에 알지 못했다. (175쪽)

21) 자기 자신을 착오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나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의 단순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나 또한 수많은 나 가운데 하나의 나에 불과할 뿐이다. (156~157쪽)

22)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줄 상대. 이제까지 나는 그 상대를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늘 나의 일상은 불안하고 외롭고 헛헛했던 것이다. (181쪽)

23)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나는 가장 서툴다. 때문에 나는 빈번하게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유일한 나의 대안은 사람 곁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참혹하고 질긴 생래적인 외로움은 어쩔 것인가. (107~108쪽)

24) 내가 참으로 원했던 것은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동질의 원형질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동료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표적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누구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혼자서 거대한 하나의 적대적인 세계에 대항하는 일은 나를 탈진시켰다. 
     나는 언제나 지쳐 있었고, 사소한 일로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나는 내 자아의 지하방 속으로 자꾸만 숨어들었고 그곳의 어둠 속에서만 평화를 느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감이 매우 깊고 끈적끈적한 외로움에 시달리곤 했다.
     방 안의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을 때 불쑥 쳐들어온 그 외로움에서는 이상하게 성욕의 냄새가 났다. 
     감상이 아니라 육체가 외로움을 타고 있다고 느꼈을 때의 그 난감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육체적 외로움은 슬프고 욕스럽다. 
     그것은 성인의 외로움이었고, 그것이 내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끔찍했다. (126쪽)

25) 생각이 한쪽으로 몰리면 다른 출구들이 닫혀 버린다. 
     이게 아닌데, 이럴 필요가 없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있다. 
     그곳 말고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갈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내달린다. 
     그리하여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254쪽)

26) 항상 큰 욕망이 이긴다. 일의 결과는 어떤 욕망이 더 컸는가를 증거한다. (149쪽)

27) 결국 상처를 입고 말 불가능한 욕망의 언저리를 다시는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174쪽)

28) 깨달음이란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온다. 모든 깨달음이 괴로움을 동반하고 있는 이유이다. (215쪽)

29) 어떤 사람이 가장 비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사람이 가장 크게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 (253쪽)

30) 때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절망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252쪽)


31)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7쪽)

32)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며 걸어가는 자는 얼마나 숨이 가쁠 것인가. (142쪽)

33) 껍데기는 어떻게 말해도 껍데기일 뿐이다. 진실은 보다 내밀하고 한층 사적이다. (195쪽)

34) 어떤 때는 침묵이 말보다 사람을 더 가깝게 한다. 일체감은 말을 통로로 삼지 않는다. (201, 202쪽)

35) 사람은 현실에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 한다. 신화는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있다. (84쪽)

36)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그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뿐이다. (23쪽)

37) 기억되거나 말해진 사실은 결국 발췌된 사실일 뿐이다. 선택과 배제를 통해 '사실'이 구성된다. 
     거기에 굴절과 왜곡이 끼어든다. 그것이 작품이다. (189쪽)

38)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만 멈칫거리는 문장들은 나의 소극적인 의식의 투사이다. 
     나의 문장들처럼 나의 의식 또한 멈칫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게으름과는 다르다. (145쪽)

39) 사정이야 어쨌든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은 흘러야 하고 문장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 (146쪽)

40)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 미련과 집착이 나는 두렵다. 알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것이 나의 영혼을 운무처럼 둘러싸고 있다. (7쪽)
출처 이승우 장편소설, <생의 이면>, 문이당,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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